광장을 꿈꾸는 과학
2000/2000년 02월 :
2000/02/01 00:00
지난해 말, 세계무역기구(WTO)의 뉴라운드 회의가 열리던 시애틀은 한바탕 큰 홍역을 치렀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NGO 회원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농산물 수출국 그룹들의 회의 참석을 원천봉쇄하고 갖가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격렬한 시위를 벌여 시애틀 전체를 마비시키다시피했다. 최루탄 가루로 뒤덮인 거리와 경찰에 끌려가는 시위대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득 80년대의 서울거리 풍경을 연상했을 것이다.
과학의 시장화에 반기 들다
1999년이 저물던 시기에 벌어진 시애틀 사건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과학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뉴라운드는 농산물의 자유로운 교역을 막는 모든 장벽을 허물기 위한 시도였고, 그 성가신 장벽 중 하나가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이었다. 얼마전에 있었던 유전자 조작 두부 소동을 일으킨 GMO 콩도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이다. 그동안 엄청난 돈을 들여 개발한 유전자 조작기술로 생산한 농산물의 자유로운 시장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 기술로 꼽히는 생물공학 전체의 시장을 다지려는 야물찬 시도인 셈이다. ‘여기서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논리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것은 바로 “시장을 꿈꾸는 과학”의 모습이다.
사실 과학이 그 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장을 꿈꾸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시애틀 사건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애틀 사건은 과학기술 자체를 협상테이블로 들고 나올 만큼 노골적인 꿈꾸기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추이를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시애틀 사건에서 짚어야 할 중요한 또 하나의 측면은 바로 “광장을 꿈꾸는 과학”의 가능성이다. 그 자리에 모인 단체와 시민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구호를 외쳐댔지만, 자본에 의한 인간의 지배에 저항한다는 점에서는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얄궂게도 과학이 뉴라운드의 실질적인 아젠다(의제)로 등장하는 순간, 시민들도 과학을 광장으로 끌어낸 것이다.
피폐해진 ‘광장’복원 노력을
지금까지 과학은 광장과는 상극이었다. 근대과학의 의붓어미쯤 되는 연금술에서 시작해서 오늘날 인간복제를 꿈꾸는 리처드 시드 박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대중과 차단된 은밀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과학은 항상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간주되었고, 무지한 대중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항상 그 뒤편에서 과학은 끝없이 시장을 꿈꾸었다. 최인훈의 『광장(廣場)』에서 광장은 날로 피폐화되는 무엇이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무엇이든 뜯어가 자신들의 은신처를 살찌우려 한다. 그리고 점차 광장에 나오기를 꺼린다.
전세계의 언론에서 한바탕 북새통을 이룬 밀레니엄 특집의 주요 내용은 너나 할 것 없이 과학기술 일색이었다. 20××년에는 무엇이 발명되고, 20××년에는 인류의 꿈이었던 ○○신기술이 나오고…. 그러나 아쉽게도 피폐해진 광장을 복원시킬 수 있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새로움은 시장의 과학에서 벗어나 광장의 과학을 모색하는 노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우리 모두가 골방에서 소중한 것들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면서 시작될 것이다.
과학의 시장화에 반기 들다
1999년이 저물던 시기에 벌어진 시애틀 사건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과학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뉴라운드는 농산물의 자유로운 교역을 막는 모든 장벽을 허물기 위한 시도였고, 그 성가신 장벽 중 하나가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이었다. 얼마전에 있었던 유전자 조작 두부 소동을 일으킨 GMO 콩도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이다. 그동안 엄청난 돈을 들여 개발한 유전자 조작기술로 생산한 농산물의 자유로운 시장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 기술로 꼽히는 생물공학 전체의 시장을 다지려는 야물찬 시도인 셈이다. ‘여기서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논리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것은 바로 “시장을 꿈꾸는 과학”의 모습이다.
사실 과학이 그 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장을 꿈꾸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시애틀 사건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애틀 사건은 과학기술 자체를 협상테이블로 들고 나올 만큼 노골적인 꿈꾸기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추이를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시애틀 사건에서 짚어야 할 중요한 또 하나의 측면은 바로 “광장을 꿈꾸는 과학”의 가능성이다. 그 자리에 모인 단체와 시민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구호를 외쳐댔지만, 자본에 의한 인간의 지배에 저항한다는 점에서는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얄궂게도 과학이 뉴라운드의 실질적인 아젠다(의제)로 등장하는 순간, 시민들도 과학을 광장으로 끌어낸 것이다.
피폐해진 ‘광장’복원 노력을
지금까지 과학은 광장과는 상극이었다. 근대과학의 의붓어미쯤 되는 연금술에서 시작해서 오늘날 인간복제를 꿈꾸는 리처드 시드 박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대중과 차단된 은밀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과학은 항상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간주되었고, 무지한 대중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항상 그 뒤편에서 과학은 끝없이 시장을 꿈꾸었다. 최인훈의 『광장(廣場)』에서 광장은 날로 피폐화되는 무엇이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무엇이든 뜯어가 자신들의 은신처를 살찌우려 한다. 그리고 점차 광장에 나오기를 꺼린다.
전세계의 언론에서 한바탕 북새통을 이룬 밀레니엄 특집의 주요 내용은 너나 할 것 없이 과학기술 일색이었다. 20××년에는 무엇이 발명되고, 20××년에는 인류의 꿈이었던 ○○신기술이 나오고…. 그러나 아쉽게도 피폐해진 광장을 복원시킬 수 있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새로움은 시장의 과학에서 벗어나 광장의 과학을 모색하는 노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우리 모두가 골방에서 소중한 것들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면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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