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끼리 지키는 의리가 무슨 의리입니까"
첫 이미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저 기자가 가진 선입견부터 고백을 해야겠다. 36년간의 공직생활, 정년퇴임에서 보여준 훈장 거부 사건, 90년 감사관 내부비리 고발…. 몇 가지 단서로만 비추어봐도 근엄한, 대의명분에 충실한, 대쪽 이미지만 머리에 그리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웬걸, 직접 뵙고 나니 그리 친근하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쉬이 옛날로, 현재로 넘나들면서 얘기를 주고받자니 취재라기보다는 이문옥 전 감사관과 나이를 허물고 세상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최근의 장기근속 공무원에게 주는 녹조근정훈장을 거부한 사실 외에도 이문옥 감사관은 90년 그 엄혹한 시절에도 감사관 내부비리를 고발하면서 국내에 파문을 던졌다. 96년 5월 11일 한겨레신문에 1면 톱기사로 그의 양심선언이 기사화되었다. 비리폭로 직후 형법 제127조외 직무상 비밀누설죄가 적용되어 구속, 파면되었다.

“그 당시 정부가 재벌그룹들의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을 하고, 국세청의 과실 실태조사에 착수했죠. 그래서 상당부분 과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등 감사가 진척되다가 갑자기 감사가 중단되고 말았어요. 재벌들의 로비에 밀려 정부의 기관이 마비된 거죠. 국민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부비리를 폭로한 것입니다.”

폭로하기 전에 가족들의 반응이 어땠는지가 궁금했다.

“가족들에게는 일체 비밀이었죠. 앞으로 갈 길이 뻔한데 어느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겠어요.”

그러나 가족들은 이문옥 감사관이 파면된 후, 6년의 법정투쟁을 하는 동안 힘이 되어주었다. 아내와 빠듯하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즈음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평소 성실하게 학교생활 잘하던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학교에 가서 뜻밖에도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무직이라고 표기해놓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아들이 자랑스러웠죠. 무직이라고 써놓은 녀석은 전교에서 우리 아들밖에 없었어요.”

6년 동안의 법정투쟁 끝에 96년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아 감사교육원 교수로 복직했다. 법정소송 중에도 경실련 경제부정고발센터 대표, 내부고발자보호법 제정운동 등 쉬지않고 이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일했다. 또 92년, 95년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다.

“내가 자리욕심이 있어서 국회의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좋은 뜻으로 서달라고 하니 서줄 수밖에. 개인적으로 보자면 소송 중이었고 그럴 겨를이 없을 때죠.”

99년 12월 30일에 정년퇴임한 지금 그의 직함은 양심선언회(전 나라사랑 양심선언자 모임) 회장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보호법이란 것이 생소하다. 의리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란 배신자처럼 낙인찍히고, 실제로 양심의 호루라기를 분 사람들이 제대로 보호될 장치가 없다. 거기에 대해 그는 “도둑놈끼리 지키는 의리가 무슨 의리냐?”고 반문했다.

“제가 파면되었을 때 알게 모르게 국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쌀을 남몰래 배달시켜주기도 하고, 성금을 모아주기도 하고. 그런 국민들을 생각했을 때 이 나라에 온전한 부패방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훈장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정부는 애초 약속했던 부패방지법을 지키고 있지 않지만, 저는 훈장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녹조근정훈장 수상을 거부한 명료한 답변이었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2000/02/01 00:00 2000/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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