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돈으로 중기협 예산 "펑펑"


마석 가구단지 내 한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외국인노동자 조엘(29세·가명). 그는 불법체류자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가 불법체류자였던 것은 아니다. 지난 97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그는 산업연수생 신분이었다. 일하던 공장을 뛰쳐나와 스스로 불법체류자 신분을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그를 불법체류자로 만든 것은 불합리한 외국인산업연수생제도(이하 산업연수생제도)라 할 수 있다.

산업연수생제도는 구조적으로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첫째,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 되는 비싼 송출수수료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수생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빚을 내서 이 돈을 마련한다. 일단 한국에 들어오기만 하면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공장에 불법으로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8만 명으로 제한된 연수생 입국인원도 문제다. 현실적으로 국내 중소기업에 필요한 인력은 20여 만 명. 연수생을 배정받지 못하는 3D업종 업체들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불법체류자를 고용한다.

산업연수생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제도의 시행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가 도맡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4년 정부가 산업연수생제도를 도입하면서 중기협에 연수업무를 맡겼다. 알다시피 중기협은 중소기업의 권익을 옹호하는 비영리기관이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는 중기협에 연수생제도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왜 중기협이 산업연수생문제의 핵심일까. 네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중기협에 귀속된 계약이행보증금 104억

‘계약이행보증금’이란 연수생이 사업장을 이탈하는 일을 막기 위해 중기협에 맡기는 돈이다. 1인당 36만 원(300$) 정도. 연수생이 이탈한 경우 이 보증금은 중기협 통장으로 들어간다. 이를테면 이탈자가 많아질수록 중기협의 수입이 늘어나는 셈. 2001년 8월 현재 이탈 연수생은 3만4061명. 중기협에 귀속된 계약이행보증금만 해도 104억 원에 이른다.<표1>

민주당 조성준 의원은 계약이행보증금은 이미 중기협의 재정수입원으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하고 “중기협이 관리비 명목으로 징수하는 돈만으로도 관리업무는 충실히 할 수 있고, 연수생 이탈방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약이행보증금제도는 그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연수생제도오 관련, 연수실무업체가 받는 수수료 내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표2>

미지급된 강제적금은 누구 책임인가

인도네시아 노동자 리붓. 그는 96년 한국에 왔다. 리붓이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는 동안 부은 적금은 120만 원 정도. 연수업체를 이탈한 후 계속 직장을 구하지 못한 리붓은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후관리업체를 찾아가 적금을 돌려 달라고 했지만 사후관리업체에서는 이탈한 연수생에게는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리붓이 이 적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99년까지 중기협은 연수생들에게 기본급의 50% 이상을 은행에 넣도록 강요했다. 이 강제적금이 문제가 되자 지난해 1월부터 중기협은 정기적금 가입을 연수생 자율에 맡긴 상태이다.

한편 지난 99년까지 연수생들이 찾아가지 못한 적금만도 38억 원에 이른다. 이 돈은 은행금고 안에서 잠자고 있거나 이미 사후관리업체의 주머니로 들어간지 오래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안성근 국장은 “강제적금제도를 실시했던 중기협이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한다”면서 중기협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다.

중기협은 연수생들이 직접 은행에 가서 적금을 찾으면 되는데 왜 안 찾아가는지 모르겠단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사후관리업체나 연수업체에서 연수생들의 이탈을 걱정해 입국하자마자 여권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수생들은 적금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안 국장은 “중기협이 사후관리업체와 연수업체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강제적금제도를 처음 만들었던 중기협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연수생들의 적금을 착취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힐난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 특별회계는 눈먼돈?

2001년도 국정감사. 중기협은 올해도 어김없이 블랙홀이었다. 이번에 특히 문제가 된 것은 2000년 ‘외국인 산업연수생 특별회계’ 결산서이다. ‘외국인 산업연수생 특별회계’란 외국인 연수와 관련된 수입과 지출을 다른 수익과 분리해 운용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모든 수입이 연수생 교육과 관리인건비 그리고 연수제도에 관한 조사 및 연구목적으로만 쓰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결산과 관련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바로 ‘차량운반구입명세서’. 이 명세서에 따르면 중기협은 2000년도에 명목상에도 나와 있지 않은 지출을 했다. 지출 내역은 8400만 원짜리 에쿠스VL 450. 이뿐 아니다. 중기협은 지난 94년 이후 총 3억4900만 원을 들여 총 22대의 차량을 구입했다. 중기협 전체 차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이다. 중기협이 구입한 차량은 소나타II 4대, 그랜저 1대, 액센트 7대, 뉴액센트 5대, EF 소나타 1대, 에쿠스VL 450 1대 등이다.

중기협 연수총괄부 장경익 부장에 따르면, 에쿠스는 중기협 전임 회장이 사용하려고 구입한 것이라며 “중기협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회장이 쓸 차량을 산업연수생 특별회계에서 지출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임차보증금명세서’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기협이 임차보증금으로 지출한 돈은 3억6700만 원. 이 중 2억7900만 원은 사무실 보증금 명목으로 썼다. 그렇다면 나머지 예산 8800만 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 중기협은 이 돈으로 콘도미니엄 회원권을 구입했다.

중기협은 연수생 복지 용도로 쓸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 콘도미니엄을 이용한 외국인 산업연수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중기협의 특별회계자금 전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외국인 산업연수생 특별회계에서 58억 원을 전용해 직원들의 퇴직금 중간정산에 지출했다. 올 8월 국정감사에서 이미 밝혀진 사실인데도 중기협은 천하태평이다. 중기협 연수총괄부 장경익 부장은 58억 원을 연수생 예산에서 빌린 것이 아니라 연수생 적립금 160억 원에서 빌린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빨리 채무상환계획을 내라고 하니 앞으로 대책을 마련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승수 공인회계사(변호사)는 산업연수생 특별회계는 중기협의 일반 관리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산업연수생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면서 “이런 방식으로 외국인 연수생 특별회계를 운영해온 중기협은 실무적, 도덕적 책임을 지고 관련자를 징계하고 특별회계에서 전용한 돈을 당장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왜 정부가 산업연수생 특별회계를 이렇게 운용하는 중기협에게 산업연수생제도를 맡기는지 모르겠다”며 중기협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기협이 비리사건에 계속 연루되는 이유

중기협이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를 전담하고 난 후 중기협을 둘러싼 송출비리, 뇌물수수 등의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가 왜 중기협의 연수협력단을 비리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는지 94년 이후 언론보도내용을 통해 알아보자.

94년 중기협 연수협력단장 등 간부 2명이 인력수입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고 형사처벌되었다. 96년 외국인 산업연수생 송출업체 선정비리 보도(『한겨레』)와 관련해 파문이 확산되자 급기야 통상산업부와 중소기업청이 외국인 연수협력단 특별감사와 행정지도를 실시했다. 97년 7월 9일자 『문화일보』에 따르면 통상산업부와 중기협 간부 4명 등 10명이 인력송출업체로부터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2000년에는 중기협 회장이 직접 퇴직금 청구소송을 낸 필리핀 인력회사에 협박성 공문을 보내 물의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급기야 올해 2월 박상희 전 중기협 회장이 2000만 원 상당의 호피 1점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어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현재도 중기협의 한 간부가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10년째 외국인노동상담소 ‘샬롬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호 신부는 “현재의 산업연수생제도는 당연히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중기협이 연수업체 선정부터 연수생 관리, 사후관리업체 지정까지 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기협이 산업연수생제도에서 손을 떼지 않는 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신부의 주장에 대한 중기협 연수총괄부 장경익 부장의 반론은 이렇다.

“노동부나 법무부가 해도 뇌물수수나 비리 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생길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중기협에게 산업연수생제도를 운영하라고 맡겼습니다. 왜 다른 데서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그리고 자꾸 이권이 개입되는 곳이라고 말하는데 중기협 예산이 4000억 원이 넘습니다. 외국인 산업연수제도와 관련된 예산은 고작 100억 정도예요. 이권이 개입될 정도로 큰 규모가 아닙니다.”

산업연수생제도가 실시된 지 7년.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합법적으로 외국인력을 들여올 수 있도록 ‘고용허가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물론 중기협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정부도 지금까지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고용허가제’ 도입을 미뤄왔다. 이런 상황에서 불법체류자 조엘 씨가 묻는다.

“우리는 한국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터무니없이 비싼 수수료를 내고 들어와야 합니까? 집으로 보낼 생활비도 모자라는데 왜 원하지 않는 적금을 내야 합니까? 저는 하루에 12시간 동안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한국에 냈습니다. 한국은 누구를 위해 그 돈을 썼습니까?”

중기협과 정부는 조엘 씨의 질문에 어떤 답변을 할 수 있는가. 정부가 합리적 판단을 할 때다.

박정선영(참여사회 기자)
2002/12/01 00:00 2002/12/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554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