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지나 인월. 백설탕 가루 같은 눈이 뿌리다 말다 했다. 전날 내린 눈 덕분에 능선과 계곡의 굴곡이 한결 또렷한 지리산 자락에 어둠이 더 먼저 다가들고 있었다. 실상사는 그 그윽한 지리산 노고단 가는 길의 한쪽, 해탈교 너머 있었다.

주지 스님은 ‘실상 화엄 학림’이라 쓰인 요사채에 계신다고 했다. 승려들의 공부방이 쪼르르 네댓개 붙어 있는 잔소리없이 단순한 집이었다. 방문 밑이 바로 댓돌이었다. 퇴가 없어 방문이 열리자 그가 바로 마당으로 나섰다. 땅거미 속의 그는 한줌이었다.

‘별업’과 ‘공업’이라?

50킬로에 166센티. 웨스트, 바스트까지는 묻지 못했다. 적어도 키 대비 체중만 보아도 날씬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늘 한 53킬로 되었는데 지난번 단식후 50킬로까지 회복되고는 영 안 돌아갑니다.” 아무튼 그는 기름기 없이 마르고 돋보기를 쓰나 벗으나 눈이 맑아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즐거웠다. 도법과 도법을 둘러싼 분위기랄까가 거두절미한, 군더더기 없는 것이었단 말이다.

기도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삼 년이 다 가도록 하는 천일 기도라는데 발원이 무엇입니까?

“좌우 대립으로 지리산에서 희생된 분들을 위해 뭔가 하자, 그러다가 지난해 2월 16일부터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백일은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큰 종교는 다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백일 되던 날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근데 저는 그 기도를 그냥 계속하고 있는 거지요. 천일을 기약하고 시작했으니까. 바깥 일은 다 정리했습니다.”

저어, 속인들이 말하는 기돗발이라는 거 있잖습니까? 기돗발은 잘 받고 있는지요?'

“허허, 기돗발이라시는데, 저희들의 기도는 목 마르면 물을 찾고, 배고프면 밥 찾는 것 같은 겁니다. 기돗발이라는 게 신비한 영험하고 연관되는 거라면 저는 모르겠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존재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기도니까 그런 것이 개재될 틈이 있기 어렵다고 봐야죠. 다만, 이 기도가 올바른 진실일 때는 거룩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해야 하니까 기돗발 상관없이 그냥 하는 겁니다.”

스님에게도 착잡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뉴욕 사건을 보고 무슨 생각 하셨습니까? 무역 센터 쓰러진 거 말입니다.

“제가 테레비 잘 안 봅니다. 아침 뉴스, 9시 뉴스도 잠깐 볼 때도 있고 안 보는 날이 더 많고. 이렇게 사니까 그 사건도 이튿날 늦게 알았습니다. 누가 큰일이 났다고 그래서 뭔 일인가 그랬어요. 그날부터 테레비 좀 봤지요. 미국이 오만방자하게 나가더니 저렇게 당하는구나, 그렇지만 이럴 수가 있나, 그랬어요.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역시 힘의 논리, 공격과 방어의 논리로는 우리 삶이 제대로 다루어질 수 없고 지켜질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2의 화살’을 피해 가려면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모든 존재는 상대적인 의존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우주 만유에 대한 불교의 근본적인 세계관)으로 저런 불행한 떼죽음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습니까? 좌우 대립으로 초래된 지리산의 떼죽음 같은 것도 포함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별업(別業)과 공업(公業)이라고 하지요. 간단히 말하면 별업은 개인적인 책임, 공업은 사회적인 공동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북 분단의 문제 같은 것, 이 민족 공통의 책임이니까 공업이라고 해야겠지요. 무역 센터에서 일시에 수천 명이 죽어나간 것을 두고, 그 시각에 거기 있었던 사람들, 그 당사자의 직접적인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미국이라는 나라, 국민의 사고방식이나 기질의 책임이라고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프간 전쟁에 대한 미국민의 지지 같은 것도 결국은 공업을 짓는 것입니다”

공업에 대한 별업의 관계를 좀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개별적인 선의나 자비심, 불교식으로 말해서 내 한 몸 잘 닦아서 부처 되는 것으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럼?

“그물이 있다고 합시다. 나란 그물코가 있고 너란 그물코가 있겠지요. 나란 그물코를 잡아당겨도 그물 전체가 딸려 올라오고 너란 그물코를 당겨도 그물 전체가 딸려 올라오게 됩니다. 너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있는 것이지요. 사실 개별 나만 어떻게 잘 해서 나만 어떻게 잘 되고가 아니잖습니까.”

개별 나의 존재가 무력하단 말로 들립니다. 개별 나는 결국 뭘 하든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로도 들리고요.

“아니오, 나의 존재와 역할이 쓸모 없다는 얘기로 들으시면 안 됩니다. 잘 들어보세요. 연기론에서 가장 오해를 많이 하는 것이 업설입니다. 인과응보라는 것 말입니다. 지었으니까 받는다인데,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처님은 기계론적인, 숙명론적인 인과론을 부정하셨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불교는 조건에 따라, 내 노력에 따라 업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어요. 법구경에 보면 부처님이 ‘제2의 화살을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그 말입니다. 닦고 닦아 비난·불행의 제2의 화살을 피해 가는 길이 있고, 그러면 팥 심은 데 팥 안 날 수도 있는 겁니다.”

도법의 ‘설법’은 결코 신비주의적인 어휘 속에 오리무중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정연한 논리로 스스로의 의중을 꿰뚫어가고 있었지만, 어렵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진리’라 그러면 부처의 가르침인 ‘연기’의 진리로 알면 되는 것까지는 짐작으로 때려잡았으나 ‘연기’의 천변만화하고 무궁무진한 세계를 천박한 지식으로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도법은 우리 사회가 매사 공업을 짓고 쌓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을 크게 염려하는 승려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늘 한국 불교의 현실을 개혁하자는 쪽에 서 있기도 하다.

그는 1949년에 제주에서 태어났다. 열여덟에 금산사로 출가하여 해인사 강원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그 뒤 열몇 해 동안 전국의 선원에서 수행하였다. 금산사의 부주지로 있던 1990년에는 개혁 승가 운동의 기치를 들어 선우도량이라는 승려 단체를 만들었다. 그의 이름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1998년의 종단 사태(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계기로 하여 벌어진 승려들의 폭력 대립) 때였다. 해부를 해놓은 듯이 모든 문제가 노정되어 있던 시점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에 일년 동안 있으며 종단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각층의 의견을 청취하여 그 해결에 진력하였다.

배를 만지면 척추가 만져지는 단식을 하며

그러고 나서 지난해에는 지리산 골골에서 이데올로기 때문에 죽임을 당해 구천을 떠도는 한 많은 넋들을 위로하고자 범종교적인 위령제를 주도하였거니와, 소위 해인사 대불 건립 사건과 연관하여 이 사태의 핵심이었던 실상사의 승려 수경과 함께 그의 이름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렸다.

“성철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해인사 경내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 대불을 세우겠다는 해인사 승려들을 격렬하게 비판함으로써 해인사 대 실상사의 대립으로까지 번진 이 사건은 도법이 수경과 실상사의 승려들을 이끌고 ‘수행자들의 발로 참회(일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아 잘못을 뉘우친다는 뜻)와 거듭남을 위한 21일 단식 기도’에 들어감으로써 진정되었다. 53킬로그램이 50킬로그램으로 더 가벼워진 것이 이때였다.

그는 단식에 들어 『불교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고백하기를 “배를 만지면 척추가 만져지는 단식을 하면서도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폭력의 뿌리와 종단의 병폐인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전 존재를 바치지 못하는 나약하고 게으른 제 자신을 눈물로 되새김질했습니다”라고 했다. 대항적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 종교의 가르침대로 제 몸을 고행 속에 던져 평화를 건지려 했기 때문에 그의 단식은 한국 불교계의 탁한 기운을 귀찮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여론 조사에서 성철, 원효, 서옹에 이어 그가 ‘존경하는 스님’에 꼽힌 연유가 다 이런 데에 있다 하겠다.

끝끝내 말로 해야 서로 산다

불교계뿐 아니라 지난 수십년 우리는 거대한 폭력에 복속되거나 맞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국가라는 게 폭력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공업을 피하려면 우리가 어째야겠습니까? 우리 모두 스님처럼 고행이나 ‘발로 참회’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무턱대고 참지 않고 아닌 것을 아니라 그러는 것도 업을 짓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참여 연대 정도가 아닙니다. 부처님 생시의 인도는 브라만교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바로 그 브라만의 핵심인 아트만, 자아라는 걸 부정하고 무아(無我)를 주장했어요. 혁명적이었지요. 부처님의 기준은 둘이었습니다. 내가 깨달은 것과 일치하느냐, 만인에게 유익하냐, 이것이 만사를 재는 기준이었습니다. 그것에 벗어나는 것은 모두 부인하고 비판했어요. 다만, 그 방법이 분노하거나 폭력적이지가 않았다는 겁니다. 지난 시대의 민주화운동을 포함해서, 거대한 폭력에 대항하다 보면 부득이 폭력이 현실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부처님 식의 방법은 너무나 느리고 기다려야 하니까 그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말로 하고 평화적으로 해야 서로 삽니다.”

그러고 보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말씀들이 청산유수이셨어요. 그 수사의 세련됨으로 말하자면 성자이지만 정열적인 웅변가이고 시인이셨어요.

“99퍼센트 말로 하자, 이것이 부처님 뜻입니다. 언어를 중요시했어요. 초월적인 이적 같은 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이 아닙니다. 언어가 가진 속성을 제대로 알고 늘 사실에 근거해서 써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 쓸데없는 논쟁들이 일어난다고 경계하셨어요.”

예컨대 정치가들이 야합하면서 그럴듯하게 쓰는 말이 ‘대승적’이라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 말장난은?

“진실과 진리에 근거하여 누구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하자는 것이 대승적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이게 답이 되는 겁니까?”

인드라망과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

스님은 실상사 소유 전답을 내놓아 그야말로 대승적 활동에 쓰이게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육, 농촌, 환경 같은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는 시도에 이 땅이 쓰인다지요? 발심의 동기가 있었습니까?

“도시 생활이라고는 종단사태 때 두 차례, 10개월과, 2개월 합쳐서 딱 일 년 했습니다. 그 나머지 다 촌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제가 촌을 좀 압니다. 또 불교의 아름다운 전통이 사찰은 사부대중 공동체였다는 겁니다. 그것을 살리자는 뜻도 있었고, 피폐해 가는 농촌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시대적 요구도 있고 해서 우선 실상사 땅에 농장 공동체를 만들려 했습니다. 그러나 수행하는 처지에다 주지가 되고 보니 제 손으로 처들고 할 수가 없었어요. 마침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실습할 땅이 없다길래 그 땅에 귀농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대안 학교도 작게 하나 시작하고, 유기농 농장 공동체도 다시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걸 묶어서 우리가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라고 합니다.”

인드라망(網)에 대한 그의 설명은 특별한 열의가 있었다. 불교의 신인 제석천이 머무는 궁전에 장엄되어 있는 구슬로 이루어진 그물을 인드라망이라 일컬으며, 그 그물의 구슬이 서로를 투영하여 어우러져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형용이 부처의 연기법을 상징한다고 했다. 만유가 저 홀로 있지 않고 서로 첩첩이 겹치고 얽히어 존재한다는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의 진리가 인드라망에 담긴 만큼 공동체의 이름을 그리 정했다는 말이다.

스님께서는 환경운동에 깊이 관심을 두고 계시지요?

“글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환경운동도 그렇고, 시민운동이 다 서양에서 왔고 거기 세계관과 철학을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결국은 경제 논리로 세상을 보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 바탕 위에서 좀 잘해 보자, 이건데 그렇게 나가면 또 다른 모순과 헤매임에 빠질 위험이 있지요. 내 노력으로 산다는 무지한 생각에서 벗어나 바람, 비, 물, 햇볕의 신세를 지고 사는 존재라는 겸허한 생각을 확산하는 쪽으로 운동이면 운동, 설득이면 설득이 이루어져야겠지요. 인드라망에서 우리는 공존, 협력, 나눔의 실천 철학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도법의 말이 비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사는 것에 쫓기는 지겨움의 반발로 “인드라망의 아리따운 의미를 미처 떠올릴 틈도 없이 앞도 첩첩 뒤도 첩첩 막아서는 현실은 어쩝니까”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샐 뻔했다. 그때 도법이 밀어놓은 것이 외국제 과일 젤리가 반쯤 든 커다란 플라스틱병이었다.

그 참 잘 된 일이었다.

“스님, 이거 다 세계의 공존공생을 위한다는 세계화의 선물입니다. 지리산 골짜기 실상사 선방에 외국제 과자!” 그는 대책없이 진지한 성직자는 아니었다. “그래요? 나는 몰랐네. 우리는 갖다 주면 주나보다 그러고 그냥 먹으니까.” 그러더니 싱글벙글 웃으면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거, 이거 다 인드라망입니다. 죽으나 사나 공존!” 했다.

불교도 알고 시대도 읽고

“그러나 말입니다.”

그가 다시 시작했다.

“세계화 뭐 그런 공존은 패거리 공존이지요. 미국은 미국끼리, 일본은 일본끼리의 공존, 개별 종교는 개별 종교끼리의 공존. 자기 울타리 밖과는 공존 아니고 싸움이고. 말은 똑같은 말이지만 내용적으로 전혀 다른 것입니다. 원효 스님이 그랬어요. ‘굳은 땅도 새싹이 나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돕는다.’ 만사가 협력 관계라는 거지요. 상황 논리로서의 공존 아니고, 진리의 개념으로 공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말 안 됩니다.”

혹시 부처님이 동식물하고 공존하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부처님을 따르던 비구들이 도적을 만났어요. 도적이 아무리 털어봐도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화가 나서 그 비구들을 풀로 묶어두었답니다. 그런데 이 비구들이 풀이 상할까봐 풀지 못하고 가만 있었어요. 나중에 부처님에게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냐니까 긍정적으로 여긴다고 하셨답니다. 그런 일화를 포함해서, 그 밖에도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하셨습니다.”

“불교의 불살생계에서 의문이 있습니다. 쇠고기 한점 먹는 것과 잔멸치 여러 마리를 먹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불살생계를 중히 어기는 겁니까? ”빙그레 웃었다. 드디어 인드라망에서 벗어나 좀 느슨해져서는 “우리가 많이 받는 질문인데…” 했다.

“불살생계는 무조건 죽이지 말라가 아닙니다. 삶에 불가피하면 죽일 수밖에 없는 거라는 전제가 깔렸어요. 그리고 ‘의도’가 중요합니다. 살의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소를 죽이는 것과 개구리를 죽이는 행위가 의도에서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소를 죽이려면 애를 많이 써야 하니까, 계를 좀 무겁게 어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걸프전, 아프간전에서 미공군이 전쟁터와는 천리, 만리 떨어진 데서 지시에 따라 단추 하나 눌러서, 실제로 살의 같은 거 생길 틈도 없이 사람들 몰살하는 거는 불살생계에서 어떻게 설명될까요? 현대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벌거벗은 살의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나 그보다는 매끈한 무기로 죽이는 쪽이 피 근처에도 안 가고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점점 얼굴이 심각해졌다. 기실 가벼운 화제는 아니었다.

“그 참…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러니까 불교도 알고, 시대도 알아야 중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지식과 기술이 넘치면 넘치는 만큼 인간이 자기 근본 문제를 성찰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 새 지식과 기술을 알지 못하고는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전할 수 없고… 그러나 저는 안 하기로 했습니다. 컴퓨터도 모르고 운전도 모르고…냅둬 버려요, 너는 너대로 가고 나는 나대로 간다, 따라가자니까 너무 정신 없어서 냅둬요.”

툴툴거리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아마 “냅두고”도 예컨대, 미군 병사들이 살의없이 아프간 산하와 민중에 퍼부은 포화의 원인과 결과를 포함하여, 삼라만상의 본질을 관통하는 연기의 진리를 멈춤없이 명철하게 명상할 듯했다. 적어도 내 눈에 그는 그런 좋은 선지식으로 보였다.

실상사의 겨울 밤은 춥고 검었다. 향이 입안을 채우고 넘쳐 식도를 타고 흐를 만큼 진한 고수무침을 집중공략하며 그와 함께 늦저녁 공양을 냠냠 맛나게 했다.

어둠 속에 날씬한 그가 한발 앞서 걸었다. 배웅길이었다.

“스님, 그 쉐타 예쁜데 누가 떠줬어요? 여신도지요?”

“여신도 아니면 누가 떠줘.”

별일도 많지, 이런 승려가 있었더란 말이지. 실상사 걸음은 잘한 것이었다.

설호정
2002/01/01 00:00 200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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