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다. 무슨 이야기든. 그래도 시작은 시작이다. 이야기의 시작이 1월과 겹쳐 있으니 시작의 의미는 더 무거워지지만. 그래서 커피 한 잔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아시다시피 참여연대 구내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두 군데다. 장소가 주는 약간의 편안함은 있지만, 아래층의 커피는 예의 그 국적불명의 숭늉이어서 싫다.

여덟 개의 계단을 올라 층계참에서 두 개의 동전으로 해결한다. 적당히 따뜻한 종이컵을 왼손에 쥐고 옥상을 향해 있는 나머지 여덟 개의 계단을 밟는다. 위에서 세번째 층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아래서 네번째 칸에 발을 던진다. 그 단골 지정석에 앉아 이미 식어가는 커피를 맛본다. 커피와 크림과 설탕이 섞인 액체는 그야말로 달콤쌉쌀하다. 그 맛이 생각을 자극한다. 달콤한 뇌물과 쌉쌀한 불처벌이 범벅된 사회, 계단커피숍에 앉아 부패를 홀짝거린다.

돈이 자본주의 세상의 일정한 목적이자 가치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 돈은 부정부패의 근원이다. 따라서 이미 출발점에서부터 자본주의는 모순이라는 철학적 사변을 늘어놓자는 건 아니다. 돈을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조건 아래서 주고받는 돈의 흐름을 법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도 민주주의 원칙의 요구 때문이다. 그래서 만사는 결코 간단하지 못한 법이다.

부패를 추방하고자 하는 의욕이 반드시 도덕적 이유만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요청은 개인의 도덕성 너머에 있는 기능성 때문이다. 부정한 돈이 움직여 일으키는 부패는 현대인이 바라는 사회구조에 고통스러울 정도의 역기능을 하지 않는가.

다양성과 다원성이 넘쳐나 복잡성으로밖에 표현할 길 없는 현대사회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한낱 평범한 개인의 희망이란 합리성과 예측가능성, 게다가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균형성 정도일 게다. 개인이 무엇을 결정할 때 우선 기댈 수 있는 기준은 공동체의 규칙이다. 하지만 부패라고 부르는 행위는 이미 그 규칙을 어기고 있다. 예측가능성이란 삶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전제다. 그렇지만 합리적인 규칙의 지배 없이는 예측불가능성만 횡행하여 앞날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소수자와 약자에게 기회를 보장하고 분배의 사회성을 실현하려면, 언제든 규칙의 톱니바퀴를 순식간에 무디게 만들어버리는 부패의 마모력을 무력화해야 한다.

지난해를 마지막까지 장식했던 사건도 마찬가지다. 참기 어려운 부패의 존재는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충분하다. 부패에 얽힌 사슬은 항상 끊어지게 마련이어서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원인이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밝혀진 사실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불처벌의 의미 속에는, 수사에 관여한 사람은 알되 우리는 모르는 사실까지 포함되어 있다.

계단에 앉아 처음 생각한 것이 이것이다. 금년에도 부패가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지켜본다. 그리고 그 운명이 어떤 방식으로 종결되는지 계속 감시한다. 계단은 위로 오르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천국에 닿아 있는 환상의 계단이 아닌 바에야, 내려갈 때도 어차피 층층대를 밟아야 한다. 시민운동이 항상 하늘을 찌르듯 환호만 올리며 남다른 성과를 점수표에 가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부패를 제대로 추방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계속 이런 활동을 통해 감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달콤쌉쌀한 커피 두번째 잔을 위해, 사무국 앞의 돼지저금통으로 간다.

차병직
2002/01/01 00:00 200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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