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희망을 찾는다
2002/2002년 01월 :
2002/01/01 00:00
한강이 서울을 지나며 만들어 놓은 커다란 섬, 여의도. 지금 이곳은 세종로와 함께 이 나라의 정치적 중심지이다. 국회가 있는 곳이지 않은가? 이론상으로 국회는 근대사회의 핵심 중의 핵심 기구이다. 그것은 근대사회의 기본원리인 만민평등과 주권재민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설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가 딱 들어맞는 경우는 물론 드물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 국회는 물론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한때는 ‘인간 거수기’들이 집단적으로 설치되어 있던 곳, 이제는 ‘식물국회’니 ‘방탄국회’니 하는 요상한 조어들을 양산하는 곳, 이곳이 우리 국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희망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나 희망은 비극을 낳는 법. 희망이 없다면, 비극도 없다. 이 점에서 우리 국회는 ‘비극 전용극장’이다. 결코 멋있다고 할 수 없는 그 건물 자체가 우리 국회의 이런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은 늘 바쁘면서도 제대로 이루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는 우리의 이상한 국회에 딱 들어맞는 이상한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꼭대기의 둥근 지붕이다. 원래 설계에는 없었으나 의원들이 ‘그래도 돔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우기는 바람에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박정희(다카키 마사오)가 지배하던 저 암담한 ‘겨울공화국’ 시대의 희극적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민의의 수렴을 상징하는 뜻으로 세웠다는 기둥들도 이상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의사당의 본체는 분명히 밋밋한 상자형 건물인데, 이 스물 네 개의 거대한 기둥들을 세우기 위해 그 지붕을 넓혀 놓은 것이다. 기능과 무관한 조잡한 상징주의가 건물을 망쳐놓은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는지, 아니 살고 있는지를 이 건물은 잘 보여준다.
‘겨울공화국’의 희극적 상징, 국회의사당
국회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해태상이다. 광화문 앞의 그것과 달리 이곳의 해태상은 한결 투박하고, 또 어정쩡하게 일어서 있는 모습이다. 이 우스운 모양의 해태상을 지나면, 훨씬 더 우스운 모양의 청동 조각상들을 만나게 된다. ‘평화와 번영의 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 앞에는 작은 안내석이 서 있다. 기증자가 누구인가를 알리는 안내석이다. ‘기증 한진그룹 회장 조중훈, 1978. 9. 20.’이라고 새겨져 있다. 수천억 원의 탈세 혐의로 몇 해 전에 구속되기도 했던 그 사람이다.
의사당으로 오르는 계단 양옆에도 청동 조각상들이 서 있다. ‘애국 애족의 군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청동 조각상들은 세금으로 만들어 세운 것인지 기증자를 알리는 안내석이 없다. 정문에서 의사당에 이르는 큰길에 서 있는 이 조형물들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한결같이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이고, 둘은 모두 작가를 밝히지 않아서 ‘무명씨’의 작품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고, 셋은 시민들이 다가가 만지거나 올라타서는 절대 안 되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아직 너무 먼 우리 국회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조형물들이 아닐 수 없다.
계단을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서울의 난맥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 쪽을 보더라도 우리의 시선은 결국 마구잡이로 들어선 아파트들로 막히고 만다. 뒤로 돌아가면 사정은 조금 나아진다. 그곳에서는 한강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모그에 가려 강 저편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은 역시 서울의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강가의 큼지막한 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쓰레기산, 바로 난지도이다. 그 옆으로 한창 마무리 공사중인 월드컵 경기장이 보인다. 다시 그 옆으로는 또 아파트들이 보인다. 이른바 ‘상암 새천년 신도시 구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구상을 둘러싼 논란은 또다시 장밋빛 개발논리에 밀려난 상태이다.
정문 앞의 도로는 대방동으로 이어지는 여의교에 이르기까지 곧게 뻗어 있다. 이 길은 여의도 공원을 경계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국회 쪽은 고도제한으로 국회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설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대체로 안정된 모습이다.
그러나 길가의 건물들은 대부분 그저 시멘트 상자들일 뿐이어서 이곳이 갖는 공간적 상징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국회 앞이라면, 뭔가 그럴듯한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볼거리와 쉴 곳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닮은꼴의 못난이 건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을 뿐이다. 넓은 녹지 분리대가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될 뿐, 정말 너무도 볼품없는 거리이다.
아스팔트 사막에서 시민휴식공간으로
여의도 공원은 여의도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하나의 희망이다. 잘 알다시피 이곳은 본래 ‘5·16 광장’으로 불렸던 곳이다. 박정희는 이곳에서 군사력을 과시하곤 했다. 그 뒤에 이곳은 서울시 최대의 집회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규모 종교집회가 열리기도 하고, 또 대규모 정치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국회가 바로 앞에 있는 곳이니, 이곳보다 더 좋은 집회 장소는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거대한 아스팔트 사막이었다. 이 사막은 박정희의 진두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서울의 근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이곳을 자연이 살아 있는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파괴적 근대화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중요한 공간적 시도였다.
그러나 이곳을 공원으로 만드는 사업에 아무런 반대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봄에 이 사업이 시작되자 이 사업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공사장 둘레에 수십 개의 현수막을 둘러치기도 했다. 자전거와 롤러 스케이트를 빌려주는 업자들은 자연공원이 삶의 근거를 앗아갈 것을 걱정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적은 현수막을 둘러쳤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자유총연맹에서 둘러친 현수막이었다. 자유총연맹은 ‘역사적인 5·16혁명’의 상징을 없애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현수막을 둘러쳤던 것이다.
그야말로 이 ‘저항의 몸짓’은 이곳이 박정희로부터 비롯된 군사독재의 상징적 공간이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가르쳐주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를 거스르려는 몸짓이 역설적으로 역사를 가르쳐주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주위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곳에 공원이 들어서면 불량 청소년들이나 노숙자들의 근거지가 되어 생활환경이 나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집회의 장소였던만큼, 이곳을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집회의 장소를 없애기 위한 조치라는 비난도 있었다.
이처럼 여러가지 반대의 목소리와 몸짓이 있었지만, 아스팔트 사막은 결국 커다란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롤러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젖기도 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 가운데 있는 넓은 마당은 주로 공놀이를 즐기는 10대들의 차지이지만, 한가하게 산책을 즐기는 노인네와 어린이도 많이 볼 수 있다. 군사독재의 상징공간이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아름답게 탈바꿈한 것이다.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기는 하지만, 서울은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았고, 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여의도 공원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우선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공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 아무리 싫어하는 음악이더라도 듣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서울시에서는 공원에는 꼭 음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음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또 시민들이 다니는 길이나 뛰어 노는 마당은 모두 포장이 되어 있다. 도무지 흙을 밟아 볼 수 없는 것이다. 흙조차도 이곳에서는 저 국회 마당의 조형물처럼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가운데의 넓은 아스팔트 마당에 거대한 태극기가 걸려 있다. 마치 이 일상의 휴식공간이 국가의 ‘시혜’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런 식의 강요된 애국주의는 국가가 하라는 대로 따르라는 독재적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이런 공원에 국기는 필요없다. 이런 공원을 많이 만들고 이 나라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면, 시민들은 자연히 이 나라를 사랑할 것이고, 이민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여의도 공원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었던 것은 세종대왕 상이다. 위압적일 정도로 큰 태극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이 상을 만날 수 있다. 세종대왕은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 계신다. 그 바로 앞은 영등포와 마포를 잇는, 여의도에서 가장 넓은 도로이다. 밤낮 없이 쌩쌩 달리는 수많은 차량들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 세종대왕이 앉아 계신 것이다. 태극기가 있는 자리의 맞은편이 훨씬 더 좋은 자리인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썰렁하고 살풍경한 곳에 세종대왕 상을 앉혀놓았을까? 그 둘레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보여주는 부조물들이 놓여 있다.
테라코타로 구워 만든 이 부조물들은 이미 이렇게 저렇게 상해서 부서지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세종대왕 상 자체이다. 국회 마당의 그 조형물들처럼 비례를 무시한 이상한 모습에, 얼굴은 도무지 우리에게 익숙한 그 분의 모습이 아니다. 표준 영정을 무시하고 작가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표준 영정보다 젊을 때의 얼굴을 빚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리며 비례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세종대왕 상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백남준 비디오 예술작품과 여의도 생태공원
세종대왕을 뒤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이른바 ‘증권타운’의 북쪽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여의도는 이 나라의 정치적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중심지이기도 하다. 거대한 첨단 고층건물들로 이루어진 ‘증권타운’이 있고, ‘증권거래소’가 그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증권타운’은 여덟 채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 채의 건물들이 큰 길가에 늘어서 있고, 그 안쪽으로 또 네 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근처 회사원들이 한숨 돌릴 수 있는 좋은 자리로 애용된다. 이 휴식공간의 남쪽 입구에는 멋진 조형물이 있다. 보랏빛을 주조로 한 다소 현란한 빛의 커다란 물고기 상인데, 우리의 거리에서는 보기드물게 볼 만한 조형물이다.
북쪽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SK 건물의 일층에서는 백남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개선장군’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텔레비전 개선문 안으로 들어선 흰 말을 탄 텔레비전 장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죽은 상태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은 조형물 자체보다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 움직그림이 더 중요하다. 다른 조형물과 달리 백남준의 작품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살아 있을 때는 화면을 통해 움직그림을 볼 수 있을 때이고, 죽어 있을 때는 화면을 통해 움직그림을 볼 수 없을 때이다. 그런데 지금 ‘개선장군’은 움직그림을 볼 수 없는 상태이 다. 백남준의 ‘개선장군’은 SK건물 일층에서 꼿꼿이 선 채로 죽은 것이다. 내 기억에 ‘개선장군’이 죽은 것은 IMF사태가 터진 직후였다. 1997년 초겨울의 어느 날, 점심 식사를 하고나서 이곳을 찾았더니 ‘개선장군’의 모든 화면이 꺼져 있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전기를 아끼려고 그런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전기를 아끼려고 작품을 고철로 만든 셈이다.
‘증권타운’을 지나 다시 국회에서 여의교로 이어지는 큰길로 나선다. 사거리 건너에는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당구를 치기도 하던 오래된 상가가 있었다. 언뜻 보니 깨끗하게 화장을 한 모습이다. 깨끗해진 모습에 눈길이 끌려 다시 보니 간판들이 모두 정비되어 일정한 크기에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다. 아주 신선한, 그리고 서울에서는 꼭 필요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지나가니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이다. 롯데에서 짓는 것인데, 사장을 크게 찍은 홍보사진에는 ‘호텔을 짓는다고 생각들 하시오’ 따위의 선전문구들이 요란하게 쓰여 있다. 무려 45층짜리 최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다. 길 건너편의 아파트에는 항의의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다. 저곳도 이런 식으로 재개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축하의 현수막이 대신 붙으리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이 썰렁한 길을 지나 윤중로에 이르게 되면 터키와의 인연을 담고 있는 작은 공원을 만나게 된다. 이 예쁜 공원의 옆에는 대우건설이 짓고 있는 ‘대우 트럼프월드’라는 이름의 초고층 최고급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이 소란스런 장소를 지나 윤중로를 건너면 거기에 여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샛강 습지가 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서는 이 땅을 주차장과 운동장으로 이용하면서 대부분 파괴해 버렸다. 그러나 서울시는 샛강 습지를 파괴하는 한편, 그 옆에 ‘여의도 생태공원’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갈대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저녁을 맞는 겨울새들의 삑삑거리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바람은 차지만 참으로 상쾌한 기분이다.
이곳은 여의도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희망의 자리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쉽게 깨우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차량의 불빛과 소음을 막을 수 있도록 샛강에 잇닿은 도로에 나무 방음벽을 설치하기를. 그렇게 된다면, 새들은 이곳에서 더욱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더욱 큰 안정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다른 곳처럼 여의도도 무척 삭막한 곳이다. 초고층 최고급 아파트를 목표로 추진되는 재개발 바람은 이곳을 더욱 삭막한 곳으로 만들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한켠에는 희망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군사쿠데타의 상징이던 아스팔트 사막이 시민의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갈대와 새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생태공원을 만든 것에서 우리는 서울의 희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봇대가 없어서 가로수들이 본성대로 마음껏 자랄 수 있는 것에서도 우리는 같은 희망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서울을 좀더 쾌적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서울을 좀더 쾌적한 곳으로 만들려는 희망
그러나 여의도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아니다. 이곳은 서울에서도 가장 비싼 동네이다. 단지 돈이 없어서 이런 희망을 맛볼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경제적 능력이 없더라도 누구나 쾌적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여의도의 희망이 진정한 서울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많을 것이다.
생태공원의 갈대 숲 위에서 몇 마리의 오리 떼가 부지런히 날갯 짓을 하고 있다. 날갯 짓은 저마다 따로 하지만 오리들은 언제고 함께 살 것이다.
그렇다고 희망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나 희망은 비극을 낳는 법. 희망이 없다면, 비극도 없다. 이 점에서 우리 국회는 ‘비극 전용극장’이다. 결코 멋있다고 할 수 없는 그 건물 자체가 우리 국회의 이런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은 늘 바쁘면서도 제대로 이루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는 우리의 이상한 국회에 딱 들어맞는 이상한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꼭대기의 둥근 지붕이다. 원래 설계에는 없었으나 의원들이 ‘그래도 돔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우기는 바람에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박정희(다카키 마사오)가 지배하던 저 암담한 ‘겨울공화국’ 시대의 희극적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민의의 수렴을 상징하는 뜻으로 세웠다는 기둥들도 이상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의사당의 본체는 분명히 밋밋한 상자형 건물인데, 이 스물 네 개의 거대한 기둥들을 세우기 위해 그 지붕을 넓혀 놓은 것이다. 기능과 무관한 조잡한 상징주의가 건물을 망쳐놓은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는지, 아니 살고 있는지를 이 건물은 잘 보여준다.
‘겨울공화국’의 희극적 상징, 국회의사당
국회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해태상이다. 광화문 앞의 그것과 달리 이곳의 해태상은 한결 투박하고, 또 어정쩡하게 일어서 있는 모습이다. 이 우스운 모양의 해태상을 지나면, 훨씬 더 우스운 모양의 청동 조각상들을 만나게 된다. ‘평화와 번영의 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 앞에는 작은 안내석이 서 있다. 기증자가 누구인가를 알리는 안내석이다. ‘기증 한진그룹 회장 조중훈, 1978. 9. 20.’이라고 새겨져 있다. 수천억 원의 탈세 혐의로 몇 해 전에 구속되기도 했던 그 사람이다.
의사당으로 오르는 계단 양옆에도 청동 조각상들이 서 있다. ‘애국 애족의 군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청동 조각상들은 세금으로 만들어 세운 것인지 기증자를 알리는 안내석이 없다. 정문에서 의사당에 이르는 큰길에 서 있는 이 조형물들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한결같이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이고, 둘은 모두 작가를 밝히지 않아서 ‘무명씨’의 작품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고, 셋은 시민들이 다가가 만지거나 올라타서는 절대 안 되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아직 너무 먼 우리 국회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조형물들이 아닐 수 없다.
계단을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서울의 난맥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 쪽을 보더라도 우리의 시선은 결국 마구잡이로 들어선 아파트들로 막히고 만다. 뒤로 돌아가면 사정은 조금 나아진다. 그곳에서는 한강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모그에 가려 강 저편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은 역시 서울의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강가의 큼지막한 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쓰레기산, 바로 난지도이다. 그 옆으로 한창 마무리 공사중인 월드컵 경기장이 보인다. 다시 그 옆으로는 또 아파트들이 보인다. 이른바 ‘상암 새천년 신도시 구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구상을 둘러싼 논란은 또다시 장밋빛 개발논리에 밀려난 상태이다.
정문 앞의 도로는 대방동으로 이어지는 여의교에 이르기까지 곧게 뻗어 있다. 이 길은 여의도 공원을 경계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국회 쪽은 고도제한으로 국회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설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대체로 안정된 모습이다.
그러나 길가의 건물들은 대부분 그저 시멘트 상자들일 뿐이어서 이곳이 갖는 공간적 상징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국회 앞이라면, 뭔가 그럴듯한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볼거리와 쉴 곳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닮은꼴의 못난이 건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을 뿐이다. 넓은 녹지 분리대가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될 뿐, 정말 너무도 볼품없는 거리이다.
아스팔트 사막에서 시민휴식공간으로
여의도 공원은 여의도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하나의 희망이다. 잘 알다시피 이곳은 본래 ‘5·16 광장’으로 불렸던 곳이다. 박정희는 이곳에서 군사력을 과시하곤 했다. 그 뒤에 이곳은 서울시 최대의 집회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규모 종교집회가 열리기도 하고, 또 대규모 정치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국회가 바로 앞에 있는 곳이니, 이곳보다 더 좋은 집회 장소는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거대한 아스팔트 사막이었다. 이 사막은 박정희의 진두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서울의 근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이곳을 자연이 살아 있는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파괴적 근대화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중요한 공간적 시도였다.
그러나 이곳을 공원으로 만드는 사업에 아무런 반대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봄에 이 사업이 시작되자 이 사업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공사장 둘레에 수십 개의 현수막을 둘러치기도 했다. 자전거와 롤러 스케이트를 빌려주는 업자들은 자연공원이 삶의 근거를 앗아갈 것을 걱정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적은 현수막을 둘러쳤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자유총연맹에서 둘러친 현수막이었다. 자유총연맹은 ‘역사적인 5·16혁명’의 상징을 없애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현수막을 둘러쳤던 것이다.
그야말로 이 ‘저항의 몸짓’은 이곳이 박정희로부터 비롯된 군사독재의 상징적 공간이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가르쳐주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를 거스르려는 몸짓이 역설적으로 역사를 가르쳐주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주위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곳에 공원이 들어서면 불량 청소년들이나 노숙자들의 근거지가 되어 생활환경이 나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집회의 장소였던만큼, 이곳을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집회의 장소를 없애기 위한 조치라는 비난도 있었다.
이처럼 여러가지 반대의 목소리와 몸짓이 있었지만, 아스팔트 사막은 결국 커다란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롤러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젖기도 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 가운데 있는 넓은 마당은 주로 공놀이를 즐기는 10대들의 차지이지만, 한가하게 산책을 즐기는 노인네와 어린이도 많이 볼 수 있다. 군사독재의 상징공간이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아름답게 탈바꿈한 것이다.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기는 하지만, 서울은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았고, 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여의도 공원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우선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공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 아무리 싫어하는 음악이더라도 듣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서울시에서는 공원에는 꼭 음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음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또 시민들이 다니는 길이나 뛰어 노는 마당은 모두 포장이 되어 있다. 도무지 흙을 밟아 볼 수 없는 것이다. 흙조차도 이곳에서는 저 국회 마당의 조형물처럼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가운데의 넓은 아스팔트 마당에 거대한 태극기가 걸려 있다. 마치 이 일상의 휴식공간이 국가의 ‘시혜’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런 식의 강요된 애국주의는 국가가 하라는 대로 따르라는 독재적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이런 공원에 국기는 필요없다. 이런 공원을 많이 만들고 이 나라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면, 시민들은 자연히 이 나라를 사랑할 것이고, 이민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여의도 공원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었던 것은 세종대왕 상이다. 위압적일 정도로 큰 태극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이 상을 만날 수 있다. 세종대왕은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 계신다. 그 바로 앞은 영등포와 마포를 잇는, 여의도에서 가장 넓은 도로이다. 밤낮 없이 쌩쌩 달리는 수많은 차량들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 세종대왕이 앉아 계신 것이다. 태극기가 있는 자리의 맞은편이 훨씬 더 좋은 자리인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썰렁하고 살풍경한 곳에 세종대왕 상을 앉혀놓았을까? 그 둘레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보여주는 부조물들이 놓여 있다.
테라코타로 구워 만든 이 부조물들은 이미 이렇게 저렇게 상해서 부서지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세종대왕 상 자체이다. 국회 마당의 그 조형물들처럼 비례를 무시한 이상한 모습에, 얼굴은 도무지 우리에게 익숙한 그 분의 모습이 아니다. 표준 영정을 무시하고 작가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표준 영정보다 젊을 때의 얼굴을 빚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리며 비례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세종대왕 상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백남준 비디오 예술작품과 여의도 생태공원
세종대왕을 뒤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이른바 ‘증권타운’의 북쪽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여의도는 이 나라의 정치적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중심지이기도 하다. 거대한 첨단 고층건물들로 이루어진 ‘증권타운’이 있고, ‘증권거래소’가 그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증권타운’은 여덟 채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 채의 건물들이 큰 길가에 늘어서 있고, 그 안쪽으로 또 네 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근처 회사원들이 한숨 돌릴 수 있는 좋은 자리로 애용된다. 이 휴식공간의 남쪽 입구에는 멋진 조형물이 있다. 보랏빛을 주조로 한 다소 현란한 빛의 커다란 물고기 상인데, 우리의 거리에서는 보기드물게 볼 만한 조형물이다.
북쪽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SK 건물의 일층에서는 백남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개선장군’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텔레비전 개선문 안으로 들어선 흰 말을 탄 텔레비전 장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죽은 상태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은 조형물 자체보다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 움직그림이 더 중요하다. 다른 조형물과 달리 백남준의 작품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살아 있을 때는 화면을 통해 움직그림을 볼 수 있을 때이고, 죽어 있을 때는 화면을 통해 움직그림을 볼 수 없을 때이다. 그런데 지금 ‘개선장군’은 움직그림을 볼 수 없는 상태이 다. 백남준의 ‘개선장군’은 SK건물 일층에서 꼿꼿이 선 채로 죽은 것이다. 내 기억에 ‘개선장군’이 죽은 것은 IMF사태가 터진 직후였다. 1997년 초겨울의 어느 날, 점심 식사를 하고나서 이곳을 찾았더니 ‘개선장군’의 모든 화면이 꺼져 있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전기를 아끼려고 그런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전기를 아끼려고 작품을 고철로 만든 셈이다.
‘증권타운’을 지나 다시 국회에서 여의교로 이어지는 큰길로 나선다. 사거리 건너에는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당구를 치기도 하던 오래된 상가가 있었다. 언뜻 보니 깨끗하게 화장을 한 모습이다. 깨끗해진 모습에 눈길이 끌려 다시 보니 간판들이 모두 정비되어 일정한 크기에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다. 아주 신선한, 그리고 서울에서는 꼭 필요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지나가니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이다. 롯데에서 짓는 것인데, 사장을 크게 찍은 홍보사진에는 ‘호텔을 짓는다고 생각들 하시오’ 따위의 선전문구들이 요란하게 쓰여 있다. 무려 45층짜리 최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다. 길 건너편의 아파트에는 항의의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다. 저곳도 이런 식으로 재개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축하의 현수막이 대신 붙으리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이 썰렁한 길을 지나 윤중로에 이르게 되면 터키와의 인연을 담고 있는 작은 공원을 만나게 된다. 이 예쁜 공원의 옆에는 대우건설이 짓고 있는 ‘대우 트럼프월드’라는 이름의 초고층 최고급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이 소란스런 장소를 지나 윤중로를 건너면 거기에 여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샛강 습지가 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서는 이 땅을 주차장과 운동장으로 이용하면서 대부분 파괴해 버렸다. 그러나 서울시는 샛강 습지를 파괴하는 한편, 그 옆에 ‘여의도 생태공원’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갈대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저녁을 맞는 겨울새들의 삑삑거리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바람은 차지만 참으로 상쾌한 기분이다.
이곳은 여의도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희망의 자리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쉽게 깨우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차량의 불빛과 소음을 막을 수 있도록 샛강에 잇닿은 도로에 나무 방음벽을 설치하기를. 그렇게 된다면, 새들은 이곳에서 더욱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더욱 큰 안정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다른 곳처럼 여의도도 무척 삭막한 곳이다. 초고층 최고급 아파트를 목표로 추진되는 재개발 바람은 이곳을 더욱 삭막한 곳으로 만들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한켠에는 희망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군사쿠데타의 상징이던 아스팔트 사막이 시민의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갈대와 새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생태공원을 만든 것에서 우리는 서울의 희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봇대가 없어서 가로수들이 본성대로 마음껏 자랄 수 있는 것에서도 우리는 같은 희망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서울을 좀더 쾌적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서울을 좀더 쾌적한 곳으로 만들려는 희망
그러나 여의도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아니다. 이곳은 서울에서도 가장 비싼 동네이다. 단지 돈이 없어서 이런 희망을 맛볼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경제적 능력이 없더라도 누구나 쾌적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여의도의 희망이 진정한 서울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많을 것이다.
생태공원의 갈대 숲 위에서 몇 마리의 오리 떼가 부지런히 날갯 짓을 하고 있다. 날갯 짓은 저마다 따로 하지만 오리들은 언제고 함께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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