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고 묻자
2002/2002년 01월 :
2002/01/01 00:00
밤중에 두 남매가 오렌지 하나를 놓고 다투고 있다. 서로 자기 혼자 통째로 갖겠다고 싸운다. 감정이 격앙돼 고성까지 오고간다. 듣다 못한 엄마가 끼어들지만, 어떻게 말릴지 난감하다. 집에는 오렌지 하나밖에 없다. 밤은 깊어 상점 문도 다 닫았고 어디 가서 오렌지를 구해올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문제를 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왜’라고 묻는 것. 두 자매에게 각각 “너는 왜 오렌지를 혼자 갖겠다고 하는 거니?”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자 언니가 대답한다.
“난 지금 오렌지가 아주 먹고 싶단 말예요. 전에도 오렌지가 하나밖에 없었을 때 동생이 먹고 싶다고 해서 내가 양보했어요. 그러니 이번엔 동생이 양보할 차례잖아. 누나라고 나만 맨날 양보할 수 없잖아요.”
동생은 “응, 내일 미술시간이 있는데 선생님이 오렌지 하나가 다 필요하다고 했어요. 오렌지껍질을 가지고 공작을 한다고 오렌지 반쪽만 가지곤 안 돼요”라고 답한다.
얘기를 듣고 보니까, 문제는 저절로 풀리게 됐다. 누나가 원했던 것은 오렌지 알맹이, 동생이 필요했던 것은 오렌지 껍질. 이제 서로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기실 서로 싸울 필요도 없는 문제였던 셈이다.
갈등해결의 시작은 ‘왜’란 물음에서
갈등분쟁이 생기면 서로 자기 주장을 외치기 바쁘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기 목표를 관철하려 한다. 주장과 주장이 부딪치면 소리만 크게 날 뿐,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주장 밑에 깔린 서로의 관심사, 서로가 진정 원하는 것이나 우려하는 것을 드러내고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겉으로 내거는 주장(Position)과 그 밑에 깔린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Interest)를 구분하고, 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 대화해야 한다는 게 협상 혹은 문제해결의 제1원칙이다.
이때 필수적인 것이 바로 ‘왜’라는 물음이다. 상대방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고 하는지 서로의 진정한 관심사를 이해하고 그에 초점을 맞춰 문제해결을 도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분쟁을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가 시나이반도 영토분쟁이다. 시나이반도는 원래 이집트 영토였으나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집트는 이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절대 못 내주겠다고 했다.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양측의 끝없는 공방이 거듭됐다. 급기야 1978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다. 카터 대통령은 지도에 선을 그어가며 양측 사이의 타협점을 찾으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서로 한치도 자신의 입장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해결책이 나오게 된 것은 시나이반도가 서로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 진정한 이유를 이야기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이집트는 왜 그렇게 시나이반도를 꼭 되찾으려 했는가?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고 하는 욕구와 민족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시나이반도는 파라오 시대 이래 이집트의 영토였다. 그 동안 그리스 로마 터키 프랑스 영국에 차례로 점령돼왔던 것을 간신히 되찾았는데 이제 다시 외국인 이스라엘 점령하에 놓이는 것을 이집트 국민들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의 관심사는 영토가 아니라 안보였다. 이집트의 탱크가 이스라엘로 바로 진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시나이반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의 진정한 관심사가 드러나자 기실 상충되는 게 아니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여기에 초점을 맞춰 협상을 재개하자 문제해결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시나이반도는 이집트에 돌려주고 대신 그곳의 상당부분을 비무장지대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제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를 되찾아 자국의 깃발을 꽂을 수 있게 됐고, 이스라엘 역시 국경선 근처에 이집트 탱크가 얼씬거리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이른바 상생의 해결책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화약고 중동에 처음으로 평화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사다트와 베긴 그리고 카터는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분쟁 중에는 이런 식으로 해서 풀릴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자신에게 던지는 ‘왜’
‘왜’라는 질문은 상대방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물을 필요가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태도를 깊이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 필요성을 절실히 보여준 사례가 바로 지난 9·11 테러사건이다. 뉴욕과 워싱턴에 충격적인 연쇄테러를 당하자 미국 사회에서 제기된 질문은 오로지 “Who?” 그리고 “How?”였다. “Why?”는 없었다. “왜 미국이 이슬람권에게 증오와 공격의 대상이 됐는지” “왜 이슬람 사람들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가며 미국을 공격해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했다. 그런 진지한 자기성찰만이 진정한 문제해결의 길임에도 미국은 그 반대로 치달았다.
미국만이 아니다. ‘왜’라는 물음을 거부하는, 또는 억누르는 그런 오만한 행태는 가정, 직장, 학교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의 “힘 센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런 사람들은 이참에 한번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기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 일이나 행동이 맘에 안 들 때 섣불리 단정하고 질책하기에 앞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려 한 적이 있는지, 그 사람이 자신에게 ‘왜’라고 물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지, 때때로 자기 자신에게 ‘왜’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독일에서 주는 인권상을 한 미국인 학자가 받게 되었다. “The Importance of Why”(‘왜’라는 질문의 중요성)란 제목의 수상연설에서 그는 자신이 만난 독일계 유태인 과학자의 얘기를 소개했다. 그 유태인 과학자는 나치 치하에서 유태인수용소에 끌려갔다. 겨울 어느 날, 수용소 창틀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추위와 굶주림, 공포에 떨던 그에게 그 고드름은 너무나 영롱하고 탐스러웠다. 고드름을 따서 입에 가져넣으려는 순간, 지나가던 독일군 장교가 나꿔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유태인 과학자는 박살난 고드름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서 있었다.
얘기를 듣던 미국인 학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독일군 장교가 왜 그랬던 겁니까?”
그러자 유태인 과학자가 바로 답한 말은,
“Hier ist kein warum!”(여기엔 ‘왜’라는 게 없다!)
나치수용소는 ‘왜’라는 질문이 안 통하는 곳이었다는 얘기다. 그게 어디 나치수용소만의 일이겠는가.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있다. “까라면 까지 웬 말이 많아?”
군소리말고, 이유도 묻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얘기다. ‘왜’라는 물음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군사문화’이고 ‘파쇼’다.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도 그런 숨막히는 살풍경이 곧잘 벌어진다.
“여기엔 ‘왜?’가 없다!”
‘왜’라는 물음을 통해 갈등의 본모습이 드러나고 서로를 진정 이해하고 문제해결의 길이 열린다. ‘왜’라고 물을 수 없으면 갈등은 억압된 채 내연할 수밖에 없다. 내연하다가 끝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만다.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사이, 그런 조직, 그런 사회야말로 건강한 관계, 민주적인 조직,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다툼이 있을 때, 이해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용납하기 힘든 행동을 다른 사람이 할 때, 먼저 물어보자, ‘왜’
문제를 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왜’라고 묻는 것. 두 자매에게 각각 “너는 왜 오렌지를 혼자 갖겠다고 하는 거니?”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자 언니가 대답한다.
“난 지금 오렌지가 아주 먹고 싶단 말예요. 전에도 오렌지가 하나밖에 없었을 때 동생이 먹고 싶다고 해서 내가 양보했어요. 그러니 이번엔 동생이 양보할 차례잖아. 누나라고 나만 맨날 양보할 수 없잖아요.”
동생은 “응, 내일 미술시간이 있는데 선생님이 오렌지 하나가 다 필요하다고 했어요. 오렌지껍질을 가지고 공작을 한다고 오렌지 반쪽만 가지곤 안 돼요”라고 답한다.
얘기를 듣고 보니까, 문제는 저절로 풀리게 됐다. 누나가 원했던 것은 오렌지 알맹이, 동생이 필요했던 것은 오렌지 껍질. 이제 서로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기실 서로 싸울 필요도 없는 문제였던 셈이다.
갈등해결의 시작은 ‘왜’란 물음에서
갈등분쟁이 생기면 서로 자기 주장을 외치기 바쁘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기 목표를 관철하려 한다. 주장과 주장이 부딪치면 소리만 크게 날 뿐,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주장 밑에 깔린 서로의 관심사, 서로가 진정 원하는 것이나 우려하는 것을 드러내고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겉으로 내거는 주장(Position)과 그 밑에 깔린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Interest)를 구분하고, 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 대화해야 한다는 게 협상 혹은 문제해결의 제1원칙이다.
이때 필수적인 것이 바로 ‘왜’라는 물음이다. 상대방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고 하는지 서로의 진정한 관심사를 이해하고 그에 초점을 맞춰 문제해결을 도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분쟁을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가 시나이반도 영토분쟁이다. 시나이반도는 원래 이집트 영토였으나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집트는 이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절대 못 내주겠다고 했다.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양측의 끝없는 공방이 거듭됐다. 급기야 1978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다. 카터 대통령은 지도에 선을 그어가며 양측 사이의 타협점을 찾으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서로 한치도 자신의 입장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해결책이 나오게 된 것은 시나이반도가 서로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 진정한 이유를 이야기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이집트는 왜 그렇게 시나이반도를 꼭 되찾으려 했는가?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고 하는 욕구와 민족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시나이반도는 파라오 시대 이래 이집트의 영토였다. 그 동안 그리스 로마 터키 프랑스 영국에 차례로 점령돼왔던 것을 간신히 되찾았는데 이제 다시 외국인 이스라엘 점령하에 놓이는 것을 이집트 국민들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의 관심사는 영토가 아니라 안보였다. 이집트의 탱크가 이스라엘로 바로 진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시나이반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의 진정한 관심사가 드러나자 기실 상충되는 게 아니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여기에 초점을 맞춰 협상을 재개하자 문제해결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시나이반도는 이집트에 돌려주고 대신 그곳의 상당부분을 비무장지대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제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를 되찾아 자국의 깃발을 꽂을 수 있게 됐고, 이스라엘 역시 국경선 근처에 이집트 탱크가 얼씬거리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이른바 상생의 해결책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화약고 중동에 처음으로 평화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사다트와 베긴 그리고 카터는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분쟁 중에는 이런 식으로 해서 풀릴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자신에게 던지는 ‘왜’
‘왜’라는 질문은 상대방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물을 필요가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태도를 깊이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 필요성을 절실히 보여준 사례가 바로 지난 9·11 테러사건이다. 뉴욕과 워싱턴에 충격적인 연쇄테러를 당하자 미국 사회에서 제기된 질문은 오로지 “Who?” 그리고 “How?”였다. “Why?”는 없었다. “왜 미국이 이슬람권에게 증오와 공격의 대상이 됐는지” “왜 이슬람 사람들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가며 미국을 공격해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했다. 그런 진지한 자기성찰만이 진정한 문제해결의 길임에도 미국은 그 반대로 치달았다.
미국만이 아니다. ‘왜’라는 물음을 거부하는, 또는 억누르는 그런 오만한 행태는 가정, 직장, 학교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의 “힘 센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런 사람들은 이참에 한번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기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 일이나 행동이 맘에 안 들 때 섣불리 단정하고 질책하기에 앞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려 한 적이 있는지, 그 사람이 자신에게 ‘왜’라고 물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지, 때때로 자기 자신에게 ‘왜’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독일에서 주는 인권상을 한 미국인 학자가 받게 되었다. “The Importance of Why”(‘왜’라는 질문의 중요성)란 제목의 수상연설에서 그는 자신이 만난 독일계 유태인 과학자의 얘기를 소개했다. 그 유태인 과학자는 나치 치하에서 유태인수용소에 끌려갔다. 겨울 어느 날, 수용소 창틀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추위와 굶주림, 공포에 떨던 그에게 그 고드름은 너무나 영롱하고 탐스러웠다. 고드름을 따서 입에 가져넣으려는 순간, 지나가던 독일군 장교가 나꿔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유태인 과학자는 박살난 고드름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서 있었다.
얘기를 듣던 미국인 학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독일군 장교가 왜 그랬던 겁니까?”
그러자 유태인 과학자가 바로 답한 말은,
“Hier ist kein warum!”(여기엔 ‘왜’라는 게 없다!)
나치수용소는 ‘왜’라는 질문이 안 통하는 곳이었다는 얘기다. 그게 어디 나치수용소만의 일이겠는가.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있다. “까라면 까지 웬 말이 많아?”
군소리말고, 이유도 묻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얘기다. ‘왜’라는 물음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군사문화’이고 ‘파쇼’다.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도 그런 숨막히는 살풍경이 곧잘 벌어진다.
“여기엔 ‘왜?’가 없다!”
‘왜’라는 물음을 통해 갈등의 본모습이 드러나고 서로를 진정 이해하고 문제해결의 길이 열린다. ‘왜’라고 물을 수 없으면 갈등은 억압된 채 내연할 수밖에 없다. 내연하다가 끝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만다.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사이, 그런 조직, 그런 사회야말로 건강한 관계, 민주적인 조직,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다툼이 있을 때, 이해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용납하기 힘든 행동을 다른 사람이 할 때, 먼저 물어보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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