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전교조 위원장vs김원정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여성차장


목소리가 높지 않은 남자. 그리고 심성 곱고 차분한 여자.

처음 만났을 때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가벼운 미소만 건넬 뿐. 이 썰렁한 분위기를 바꾸려면? 머리를 굴린다. 그리고 오후 4시임을 감안해 주종을 결정한다. 그래, 맥주가 좋겠다! 오늘은 『참여사회』가 쏜다!

김원정 (메뉴판을 보며) 저는 우유 한 잔 할게요.

오잉? 상상을 초월한 발언. 아뿔싸, 오늘 데이트는 만만치 않겠군.

이수호 요즘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을 읽고 있어요. 마음공부 하느라고. 전 89년 전교조를 결정하면서 교육노동운동에 뛰어들었어요. 98년 전교조가 합법화되기 전까지 무려 1500명의 교사가 해직됐고, 그 동안 저도 감옥에 두 번이나 갔다 왔어요. 그러고 보니 벌써 13년째네? 후훗.

김원정 전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재작년 5월부터 자원봉사하면서 노동운동의 감을 익혔지요. 작년 3월부터는 여성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40대 중반들과 20대 중반들이 한 조직에서 일하다보니 정서적 차이가 꽤 많이 나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노래방 가는 건 40대들이 더 좋아하지만(모두 웃음). 이를테면 의사결정과정의 민주적 진행에 대한 감, 혹은 조직운영에 대한 관점 차이…그런 게 있더라구요.

이수호 전교조에 40명의 노동운동가들이 상근하고 있는데, 점심시간만 되어도 세대 차이가 나요. 40대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는 반면, 20대들은 독자적으로 행동하죠. 선배들이 보기에 때론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그런 문화가. 왜 저 친구들은 따로 놀까?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젊은 세대들에게선 40대보다 자주성이 강한 게 아닌가 생각되더라구요. 솔직히 말해서 나이 차이 나면 문화 차이도 있고, 잘 안 맞지 뭘. (모두 웃음) 그런데 이게 다 시대가 변해가는 과정 아니겠어요? 저는 후배들의 이런 문화를 기성세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이 많으니까 내게 맞춰라, 그런 건 좀 촌스럽지∼.

단위노조에서부터 청년 노동자를 조직하자

김원정 제가 이수호 위원장님과 데이트하러 간다고 하니까 다들 웃더군요. 네가 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하면서 말이에요. 지금 민주노총을 건설한 선배운동가들은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시절부터 너무나 큰 투쟁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감히 저희 같은 20대 애송이들이 그런 선배들과 뭘 말할 수 있겠느냐 는 생각에서 동료들이 던진 말이죠. 그런 대선배들과 일하면서 조직적 문제를 거론하려니… 참 후배된 도리로 입장이 난처하다, 뭐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수호 사회도 바뀌고 국민의식도 바뀌는데 왜 노동운동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까. 더 이상 구세대에 고착된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 우리는 만날 철야농성, 단식농성, 집회 그런 전술만 씁니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야죠. 그런 면에서 저는 20대 노동운동가들에게 기대가 큽니다. 40대 운동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원정 또 이런 문제가 있어요. 요즘은 민주노총 상근자 채용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노동운동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없다는 말이죠. 노동운동진영이 젊은 활동가를 키우는 데 너무 인색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투자가 너무 박하다,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수호 저는 운동가도 이제 우리 사회의 직업군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NGO진영도 점차 확장될 텐데, 이들을 포괄할 직업군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론 예전처럼 학생운동가들이 위장취업해서 공장에 들어왔다가 노조 만들어 활동하는, 전통적 방식의 노동운동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운동가로서 자기 전문성을 갖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고 꿈과 비전을 갖고 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운동가에게 100%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그렇게 희생정신 강한 사람 만나기 참 어려워요.

김원정 단위 사업장의 청년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도 참 중요한 문제예요.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이 회사일만 할 게 아니라 노조에 가입해서 조직에 대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다보면 공동체성이 생길 테고 그럼 직장분위기도 좋아질 텐데. 일본 체신노조 청년부장이 왔었는데, 그가 말하길 일본에서는 노조 조합원들을 세대별로 묶어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을 만든대요. 우리도 이제 그런 방식을 도입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이수호 요즘 젊은 사람들은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없잖아요. 연봉 많이 받으면 바로바로 옮기니까. 우리 세대와 다르지. 하지만 또래별로 조합을 조직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린 항상 투쟁 속에 있기 때문에 전투적 노조주의에 젖어 살죠.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죠.

김원정 민주노총에서 활동가로 살다보면 남의 권리에는 상당히 민감해지는데, 자기 권리에는 별 문제의식 없이 살게 되어요. 문

득 생각해보면 이것도 문제다, 싶더라구요.

이수호 전교조는 교사로 재직하다 파견돼 나온 분들이 있고, 또 전교조가 채용한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니까 합리적으로 풀 기제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처음 노조 안의 노조를 만들었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정부측과 교섭할 때는 노조편, 전교조 노조와 협상할 때는 사용자 대표라니까. 하하.

뿌리뽑아야 할 운동진영의 남성주의

김원정 전 노동운동진영의 또 하나 문제가 남성중심주의라고 생각해요. 그걸 빨리 깼으면 합니다.

이수호 성폭력뿌리뽑기100인위원회에 의해 거론된 남성 노동운동가가 그 직후 선거에 나섰어요. 선거로 평가받겠다는 거였는데, 대의원대회가 거의 다 남자들이었으니 당선됐잖아요. 이건 정말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도 우린 남성중심의 사회에 살고 있어요. 100인위원회 활동은 상당히 의미있는 사건이었어요. 이제 남자들, 어디 가서 함부로 못한다고. 굉장히 조심해요. 그게 얼마나 큰 성과예요.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에 열중했다. 노동운동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앓는 이는 빼야 시원한 것처럼 노동운동진영의 단점은 모두 뽑아버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운동에 대한 전망과 비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노동운동은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에요?

김원정 전 이제 시작이에요. 앞으로 여성노동자가 되어 살아보기도 하고, 공부는 하기 싫지만 운동에 필요하다면 공부도 해야겠고, 민주노총이 아직 수용하지 못하는 이슈를 젊은 활동가로서 제기해볼 생각이고, 장기적으로는 노동운동의 전망을 밝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운동도 자기 하기 나름이거든요.

이수호 전 올해 53세예요. 민주노총에서 가장 나이 많은 축에 속하죠. 전교조 위원장 임기 끝나면 현장으로 복귀해서 국어교사 하고 싶어요. 운동적으로는 인간의 삶의 문제와 좀더 질 높은 사회 그리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대안운동을 하고 싶어요. 마음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제 후배들의 몫으로 돌리고 전 떠나야죠.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2002/03/01 00:00 2002/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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