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반칙공화국
2002/2002년 03월 :
2002/03/01 00:00
윤리강령을 통해 본 언론인 · 법조인 · 공직자 윤리의식 현주소
지금 우리사회는 4대 게이트로 대변되는 연이은 부패스캔들로 인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들 사건에는 청와대 검찰 경찰 국정원 금융감독원 등의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이 연루된 것으로 특별검사의 수사결과 드러나고 있다. 사정을 책임진 기관의 종사자마저 부정행위에 개입되어 있었으니 흡사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공직자의 부패는 정부를 중병에 걸리게 한다. 국가사회 전체적으로 만성화된 부패의식에 젖어 허우적거리다 종국에는 국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부패사건들은 과거의 그것들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형택게이트로 변질된 이용호게이트와 윤태식게이트의 예에서 보듯이 새로운 형태의 정경유착, 권언유착이 등장하고 있다. 벤처기업가와 법조인, 언론인,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전형적인 권력형 부패인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굳이 들먹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청렴성과 일정 수준 이상의 윤리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내부거래를 통해 부당이익을 취하거나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시세차익을 노린 펀드매니저의 불법행위, 판사와 변호사들의 접대 문화, 언론인들의 광고성 보도 등은 우리의 전문가 직업윤리가 매우 뒤떨어져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고위공직자는 물론이거니와 언론인 법조인 등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 집단의 직업윤리와 자율규제 기능의 강화가 절실하다. 전문가 직업윤리란 전문가가 업무수행중 직면하는 딜레마에서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규범을 제시하고 자율규제하는 것을 말하며, 전문 직업인으로서 추구하는 가치 의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행동표준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관련법규의 숙지 및 준수, 비윤리적 불법행위의 관여금지와 신고의무, 전문능력 보유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 동료와 업계의 윤리적 명성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의무가 포함된다. 이들의 전문적 업무수행이 윤리적으로 행해질 때 모든 사회기능의 효율성이 유지되고 경쟁력이 살아나며, 전문가 집단 역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하고 전문인으로서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종이짝에 불과한 윤리강령
전문가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것은, 사회전반의 신뢰체계 강화에 그 궁극적 의도가 있다. 신뢰는 시장경쟁체제에서 거래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요소이다. 한 사회의 신뢰체계 구축은 현실적으로 그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오늘날 투명성 제고는 단지 부정부패를 일소한다는 소극적인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국가의 경쟁력 제고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는 엘리트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전문직업인들에게 수준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 수행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봉사정신과 신뢰성은 전문직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직업인들은 윤리강령이 있어야 하고, 이를 준수할 정신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직자의 윤리적 행동규범을 규율하는 대표적인 법으로 공직자윤리법이 있으나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이 법이 목적하는 바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테면 재산 등록과 선물 신고, 퇴임 후 취업 제한 등에 국한되어 있어 그 실효성이 높지 않고, 운영과정에서도 실사와 엄정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에서 공직자의 청렴성과 행동기준을 구체화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청원해 놓고 있다.
법조인의 경우 법관윤리강령과 검사윤리강령이 있다. 변호사에게는 변호사법과 그 시행령, 윤리규칙 등이 있고 이의 실현을 절차적으로 담보하기 위해 변호사 징계규칙이 마련돼 있다. 2000년 7월 전면 개정된 변호사법에 변호사의 책임과 관련한 징계 벌칙규정과 절차적 제도가 상당부분 반영되어 강화된 윤리와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대한변호사회는 자율규제장치로서 변호사윤리장전을 만들어 윤리강령과 윤리규칙을 두고 있으나 실제 적용된 사례는 많지 않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자정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나 법조브로커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고, 소송의뢰인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 고액 부당 수임료 등이 근절되지 않아 법조계에 대한 국민 신뢰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엄정한 자체정화를 통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언론단체의 경우도 신문윤리강령, 기자협회윤리강령, 방송프로듀서윤리강령 등을 두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정한 윤리강령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단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선언적 규정에 그치고, 그 징계·처벌규정이 미약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원칙과 기준 없는 사회의 서글픔
이처럼 개별 법 및 각 집단의 자체 윤리강령에서 부분적으로 전문가의 책임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으나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 종합적인 전문가책임에 관한 입법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지난 15대 국회에서 99명의 의원발의로 ‘반신뢰부정확부실전문가사범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입법청원되었으나 국회 회기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이 법안은 전문지식인의 업무 결과에 대한 정확성·신뢰성 없이 국가의 질적도약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위에 부실행위를 한 전문가에 대한 양형을 중심내용으로 하고 있으나 실현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법안이었다.
우리나라의 전문직업인들은 단체와 협회를 구성하여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활동에는 매우 적극적이지만 회원들에 대한 자율규제는 등한히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개별 회원의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행위가 전체회원과 업계에 커다란 위험이 되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자기단속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윤리규범과 행동표준을 제정해 모든 회원에게 알리고 위반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자격시험과 회원에 대한 보수교육에 전문가 직업윤리를 필수과정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자율규제기능 강화를 위한 자체노력을 하지 않는 전문가 집단은 사회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며, 개방화와 경쟁의 시대에 사회로부터 도태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원칙과 기준이 없는 사회는 권력집단의 횡포가 자행되는 정글과 같다. 공정해야 할 심판마저 반칙행위를 서슴지 않는 일련의 부패사건들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사회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것이라고 진단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바윗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푸스의 신화와 같이 부패와의 싸움은 정권과 시대를 뛰어넘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만 한다. 그것만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부터 구원하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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