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토론이 아쉽다
2002/2002년 03월 :
2002/03/01 00:00
민주당 경선 후보 7인의 MBC TV 토론 모니터 보고
지난 1월 21일부터 29일까지 9일 동안 낮시간에 MBC 경선 주자 TV 토론회 ‘선택 2002, 예비후보에게 듣는다’가 방영됐다. 선거국면을 맞아 일찌감치 정당민주화와 깨끗한 경선을 촉구하는 시민행동, 후보자 정책·자질 평가단 운영, 정치관계법 개정 시민행동이라는 3대 유권자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힌 참여연대 대선 기획단은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해 TV 토론을 집중 모니터했다. 모니터단은 전문가, 참여연대 회원과 각 분야 간사, 자원활동가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토론 생방송을 지켜본 뒤 평가 토론을 벌이고 결과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MBC가 기획한 이번 예비주자 TV토론회는 ‘정책에 관한 토론보다는 후보 자질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루겠다’고 스스로 밝혔듯이 정책 중심의 토론이 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모니터단 역시 애초의 계획은 정치개혁, 재벌개혁, 복지개혁, 반부패개혁, 사법개혁, 조세개혁, 기타 민생·인권의 7가지 분야에 대해 후보들의 정책을 분석하려고 했으나 앞서 지적한 한계로 인해 충분한 검증작업을 하기 어려웠다. 부족한 대로 이번 토론회에서 드러난 각 후보들에 대한 모니터팀의 평가를 적어본다.
정치자금 질문에 곤욕 치른 김근태 최고위원
TV토론의 첫 주자로 나온 김근태 최고위원은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부터 정치자금에 관한 뜻밖의 질문을 받고 진땀을 흘렸다. 김 위원은 “2000년 최고위원 경선에서 ‘내 입장에서 끔찍하게 돈을 썼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얼마를 썼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적절한 시기에 밝히겠다”는 아쉬운 답변을 했다. 김 위원은 부패 척결과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으나 햇볕정책의 계승, 재벌문제와 관련해서는 시장의 규칙을 엄정하게 세울 것, 주5일 노동제 실시 등에 관해서는 평소 소신대로 답변하였다.
법질서에 대한 어긋난 소신, 유종근 지사
유종근 전북도지사는 2001년 대우차 노조 폭행사태 때 인권과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유 지사는 이번 토론회에서도 ‘법질서나 공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는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지방분권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서울집중 해소와 지방분권’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거듭해 ‘지방정치인이라는 것이 자산’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온 것에 비추어 볼 때 미흡한 구석을 드러냈다. 또 자치단체장 판공비에 대해 ‘과거의 것은 관행상 공개하기 어렵다’라든가 ‘구체적 사용내역에 대해서는 법률상 의무가 없어 공개하지 않겠다’고 대답함으로써 투명 행정의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비쳐졌다. 경제문제에 대해선 평소 ‘검증된 경제전문가’를 자처했던 대로 해박한 식견을 보여주며 구체적인 실례까지 들어 설명한 점이 두드러졌다.
김중권 고문,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없다?
5공 시절 정치에 입문하여 청와대 비서실장, 당 대표 등을 거친 김중권 고문은 국가보안법 제정과정에 참여한 점, 민주화를 촉구하는 학생시위에 대해 강력한 진압을 촉구한 점, 언론자유를 압살한 언론기본법 제정에 일정한 역할을 한 점에 대해 분명하게 답변하지 못해 모니터팀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는 더 이상 없다”고 답변하여 법 현실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드러냈다. 김 고문은 대북 지원과 언론사 세무조사 등 현 정부의 개혁기조를 일관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의 재정적자에 대해서는 의료보험료 인상, 국민연금 급여의 축소를 제시했다.
노무현 고문, 민생현안 구체적 방안 미흡
노무현 고문은 소득의 격차가 깊어지는 것에 대해 계약직과 임시직 축소를 비롯한 일자리 안정,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안전망 구축, 분배위주의 조세정책, 물가·부동산값 안정 등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였으나 빈부격차, 고용불안, 주택난, 서민금융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의약분업,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서 이들 정책이 옳았다고 소신 있게 밝힌 점이 두드러졌으며, ‘조세정책은 이해관계자들의 세력균형의 문제이고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여 정책을 주도하는가가 핵심’이라고 답변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내부고발자 보호제도 도입, 공교육 내실화, 문화대중화 정책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보인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한화갑 최고위원, 검찰 중립화 의지 부족
‘한국에서 화합은 갑이 최고’라고 말문을 연 한화갑 최고위원은 당내 화합을 중시하면서 동교동계 개혁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을 하지 않았다. 98년 초 ‘개인휴대통신사업자선정과 종금사 허가’ 등에 대한 검찰수사 이후 민주당이 자민련 오장섭 의원 등 야당 의원 빼내가기 의혹을 받은 것과 관련해 “검찰이 어떻게 법조문만으로 수사하느냐”고 말해 검찰 중립화 의지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또 현 정부와 대통령 친인척 비리 연루 등에 대해 비판적 인식이나 제도적 대안이 부족하였다. 정부가 구제금융 사태 이후 중산층과 서민생활 지원에 소홀한 점을 인정하고 복지와 재정, 조세정책을 개선하겠다고 답변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대북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의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현실 정치인의 능숙한 처신, 이인제 최고위원
이인제 최고위원에게는 당연히 97년 신한국당 경선 불복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으나 경선 불복이 아니었다고 강변해, 솔직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또한 동교동계 신파와 구파에 관한 질문에 “실체를 모르겠고, 구분할 수도 없다. 다만 흐름만 있을 뿐”이라고 대답해 모니터팀으로부터 ‘현실 정치인의 능숙한 처신’이라는 평을 받았다. 주가 3000 포인트 상승, 일자리 50만 개 확보 등의 공약은 실현가능성에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주5일 근무, 주40시간 근무제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언론개혁에 필요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례를 연구하여 도입하겠다는 모호한 답변을 하였다. 선거연령 하향조정, 공공부문 개혁, 2단계 포용정책, 교육예산 확보 등의 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추상적 답변만 늘어놓은 정동영 최고위원
‘지역정치, 노인정치의 청산’을 역설한 정동영 최고위원은 집권여당이 된 후 야당 국회의원을 빼낸 것에 대해 비상상황, 국회안정, 개혁입법 처리 등의 명분과 이유를 강조함으로써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상황논리만 내세운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긍정적 소신으로 평가받았으나 정치개혁, 검찰개혁, 경제의 대미의존 개선, 재정확대, 부동산 과열, 교육문제 등에 대해 추상적인 답변만을 거듭했다. 의약분업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공통질문 중 호주제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후보들이 한결같이 폐지를 주장했다. 또 후보들은 모두 돈 안 쓰는 선거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선거 과정에서의 모든 수입과 지출을 시민 옴부즈맨에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참여연대는 이번에 받아낸 선거비용 공개 약속을 무척 의미 있는 성과로 여기고 있다. 참여연대 대선기획단은 후보검증 작업을 지속적이고 면밀하게 벌여나가는 한편, 새로운 선거문화인 TV토론 자체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도 계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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