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 1%시대 열겠다'


오는 3월 30일 녹색연합은 2002년 정기총회를 열어 김제남 씨를 초대 여성 사무처장으로 선출한다. 녹색연합의 최고 사령탑을 맡게 된 그는 장원 사무총장의 성희롱사건을 비롯 임삼진 전 사무처장의 녹색평화당 설립을 통한 정치진출 등 조직적 내홍을 딛고 새 출발 다짐에 나섰다. 종로5가를 떠나 성북동에 새 둥지를 틀고 이삿짐과 씨름중인 그를 만났다. 편집자 주

“모범머슴 어때?”

99년 겨울, 21세기에 걸맞은 녹색연합 조직모델을 만들기 위해 사무총장제를 폐지하자는 결정이 나왔을 때 김제남 사무처장(40세)이 던진 말이었다. 권력핵심부 같은 느낌을 주던 사무처장이라는 직함 대신 일 잘 하는 머슴 중의 상머슴으로 ‘모범머슴’이 되자는 취지에서 정한 말이란다. 그는 오는 3월부터 녹색연합의 ‘모범머슴’이 되어 녹색시민 속으로 들어간다.

장원총장사건 이후 임삼진 전 사무처장과 투톱체제로 녹색연합을 운영하던 그는 지난 해 10개월 간 ‘대통령자문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일한 뒤 최근 복귀했다. 녹색연합 전신 중 하나인 ‘푸른한반도되찾기 시민의모임’의 산파역을 맡았던 그는 녹색연합의 창립멤버로서 11년 만에 다시 조직을 추슬러 출발하는 느낌이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사무처장 업무를 수행하기 전이지만, 작년 연말부터 그는 사무실 이전문제를 비롯해 조직 및 재정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는 최근엔 매주 한 건씩 활동가들에게 문건을 던지며 토론제안을 하는 등 적극성을 보여 활동가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후문이 돌고 있을 정도다.

최근 그는 ‘2002년 신년을 시작하며’라는 문건을 통해 “이제 녹색연합은 몇몇의 개별 역량에 좌우되는 초년생이 아니며 일회성 사업에 의존하는 조직도 아니다. 성숙하고 노련한 경륜이 모든 조직운영과 활동에 배어 나오도록 하자”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장원 총장 등 명망 있는 대표급 인사에게 녹색연합 조직운영을 의존해왔던 관행에서 탈피해, 단체에 속한 개인의 역량보다는 조직의 힘으로 운동의 성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 사무총장의 역할도 필요하겠지만, 앞으로 녹색연합은 부서별 부서장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고, 산하기관의 자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일이 진행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민주적 리더십의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그리고 월드컵이 있는 해이다. 특히 환경연합(공동대표 이세중)의 경우 고양시를 환경생태도시로 만들겠다고 벼르고 이번 지방선거에 참여할 후보자들을 이미 내정해둔 상태다. 녹색연합을 떠난 임삼진 사무처장도 녹색평화당을 만들어 이번 지방선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 가운데 녹색연합은 올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올해의 중심사업에 대해 들어보자.

성북동에서부터 담장 허물기 운동 시작한다

“녹색연합은 올해가 지방선거와 대선이 있는 정치의 계절이지만, 차분히 일상사업을 벌여 내실을 다질 계획입니다. 녹색생명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생태주의를 지향하며 시민참여형 운동의 차원을 높이고 풀뿌리민주주의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우리의 삶과 삶터를 녹색으로 바꾸는 생활형, 행동형 운동을 펼칠 작정입니다.”

비전과 지향 없이 사안 위주로 ‘인스턴트식 활동’을 벌이는 것은 문제제기집단에 머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앞으로 녹색연합은 녹색세상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환경운동을 벌이기 위해 문제제기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생각이라는 것. 시민은 생활 속에서, 기업은 환경경영을 할 수 있도록 녹색의 수칙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감시하는 활동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나부터 바꾸려고 합니다. 생각, 행동 모든 걸 녹색 중심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회원 속으로 파고들어 구체적으로 강령을 구현하려 합니다. 올해 녹색연합은 ‘시민참여 1%시대’를 열려고 합니다. 4500만 인구 중 1%면 45만 녹색시대가 되는 거죠. 45만 명을 녹색연합 회원으로 가입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녹색이념과 활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이것도 가급적 데이터를 수치화해서 연말에 평가하려고 해요.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녹색과 인연을 맺었는지….”

그 출발지는 성북동이다. 최근 녹색연합은 종로5가 기독교연합회관을 떠나 성북동 주택가에 새로 둥지를 틀고 생태공간 만들기에 나섰다. 벽지, 페인트까지 천연염료로 골랐으며 다소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이 비쌀지라도 되도록 환경적으로 해가 없는 상품을 쓰도록 했다. 회원이나 후원자들이 벽돌 한 장씩 쌓아 만드는 녹색인의 집으로 가꾸고 시민들에겐 참여공간, 활동가들에겐 집무공간이 되도록 할 생각이다.

김제남 처장이 성북동시대를 열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사업은 ‘담장 허물기 운동’이다. 녹색연합부터 담장을 허물고 주변에 나무와 꽃을 심어 이웃과 벗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성북동 사람들부터 녹색평화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구요. 물론 새만금간척사업백지화운동을 비롯 4대강 살리기운동 등 이슈파이팅도 해야겠지만 일상 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시민들을 감동시키는 운동을 하려고 해요. 활동가들을 달달 볶죠. 어떻게 시민들을 감동시킬 것인지,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하.”

쓸 데 없는 권위의식·경쟁의식 없앨 터

지난 해 초 김제남 사무처장이 장원총장사건 이후 임시 사무총장 대행을 맡았을 때 주변에서는 그의 재정마련 능력을 두고 너무 약하다는 평가를 했다. 이번에도 그런 우려가 없지는 않았을 것.

“역시 사회는 아직도 남성 중심사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중요한 직책을 맡길 때 남성과 여성을 가르고,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일을 하려면 남성이 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더라구요. 그런 문제 때문에 솔직히 갈등도 좀 있었죠. 하지만 아무리 잘난 개인도 조직의 힘이 없으면 일하기 어려운 법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개인에게 의존해 운영되는 단체는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을 거예요. 조직이 신뢰할 만할 때 기부도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녹색연합은 재정문제도 시스템을 갖춰 풀 생각입니다. 회원회비에 의한 재정자립도를 60%로 끌어올리고, 나머지 30%는 사업성 프로젝트를 할 계획이에요. 행자부가 주는 지원성 프로젝트는 안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10%는 출판 및 기타수익 정도로 처리될 것 같아요.”

여성운동가들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하여

조직도 일신할 계획이다. 김제남 사무처장을 보좌할 협동사무처장제도가 생긴다. 상근 협동사무처장으로는 최승구 전 에너지연대 사무처장, 비상임 협동사무처장으로는 최종덕 상지대 철학과 교수가 맡기로 했다. 대표도 추가된다. 이정자 전 녹색소비자연대 대표, 윤경은 전 서울여대 총장이 수락한 상태다.

김제남 처장은 앞으로 시민운동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진정한 의미의 분권과 자치라고 주장한다.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고 분담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 참여를 확대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주어진 임기는 3년이다. ‘푸른한반도모임’을 조직하면서 단련된 힘으로 어렵지 않게 녹색연합을 끌어갈 자신이 있다는 그는 이제 불혹이다. 불혹의 나이에 새로 뛰는 그가 던진 마지막 말.

“여성활동가들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보장하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활동가들의 리더십을 한껏 키워내야겠죠. 앞으로 저는 시민단체의 여성리더로서 쓸데없는 권위의식, 경쟁의식을 없애고 시민운동판에 남아 있는 낡은 사상들을 순화시켜 부드럽게 만드는 유연한 시민운동을 하겠습니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2002/03/01 00:00 2002/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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