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것은 저마다 값이 있다. 상품의 가격은 도대체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가장 널리 애용되었고, 지금도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설명 방법은 이른바 ‘생산비 이론’이다. 어떤 재화나 서비스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비용만큼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는 데는 그만한 노력이 들어간다는 세상사의 이치에 꼭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예컨대 우리나라 쌀값은 비슷한 품질의 중국 쌀보다 여섯 배나 높다. 그런데도 농민단체는 해마다 수매가를 올리라고 요구한다. 그래야 생산비라도 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중국 쌀 수입이 허용된다면 농민들은 그 가격에 쌀을 처분할 수 없다. 쌀값은 생산비 아래로 떨어진다. 생산비 이론은 당위적 요구라고는 할 수 있으나 가격 결정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생산비 이론의 반대편에는 가격이 수요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다는 견해가 있다. 19세기 영국인들은 남아프리카 식민지 원주민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예쁜 돌멩이를 빼앗아 영국으로 가져갔다. 백인들이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 그 돌멩이를 얻으려고 런던의 귀부인들은 엄청난 값을 치렀다. 생산비 이론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많은 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가격은 생산비와 무관하게 하늘 끝까지라도 올라간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협동해서 만든다

그럴듯한 설명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한국도로공사 병목관리과 고객서비스센터 요원들’을 보자. 흰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손에 무엇인가를 든 이 사람들은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 출현했다가는 체증이 풀리기 무섭게 다른 ‘병목’을 찾아 홀연히 사라진다. 뻥튀기에서부터 바나나, 토스트, 김밥, 옥수수, 생밤, 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공급하는 실로 다양한 상품의 가격은 대개 1000원 또는 2000원이다. 많이 막히는 곳에서는 더 높은 값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그런 바가지를 씌운다고 해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수요가 넘치는 곳에는 공급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누군가 폭리를 취할 경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거리를 배회하던 다른 사람이 재빨리 이 사업에 뛰어들어 공급이 늘어난다. 그러면 가격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병목관리과 고객서비스센터 요원들’이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은 생산비와 점점 가까워지고, 그들은 비슷하게 위험하고 힘든 다른 일을 하는 경우와 비슷한 정도의 소득밖에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파는 상품의 가격은 결코 생산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런 가격이라면 ‘고객서비스 요원들’ 가운데 많은 수가 거리에서 철수할 것이고, 그래서 공급이 딸리면 가격이 다시 올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신앙심 깊은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눈을 둘 주셨으니, 한 눈으로는 공급을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수요를 보라.” 종교적인 표현을 즐기지 않는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가위는 두 날이 교차해야 종이를 자를 수 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협동해서 만든다는 것이다. 철학자들 같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이란 대상 그 자체에 있다고만 할 수도 없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 속에 있다고만도 할 수 없다.”

수요와 공급을 함께 봐야 하는 것은 경제학의 ‘신성한 율법’이다. 경제학자들은 이 율법을 그림으로 만들어 세상의 모든 경제학 교과서에 실어놓았다. 경제학 개론 교과서를 한 번만이라도 뒤적여본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단순한 그림인 만큼 그림 없이 말로 설명해도 좋을 것이다.

원점에서 뻗어 나온 그래프의 가로축에는 상품의 수요량과 공급량을 나타낸다. 원점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양은 많아진다. 세로축은 가격 수준을 나타낸다. 원점에서 위로 멀어질수록 가격은 높아진다. 두 축이 만드는 좌표평면에 우하향으로 내려가는 곡선을 하나 긋는다. 이것이 수요곡선이다. 직선이든 곡선이든 얼마나 가파르든 상관없다. 오직 우하향이기만 하면 된다. 수요곡선은 특정한 가격수준에서 소비자가 얼마나 많은 양을 수요하는지를 알려준다.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가격이 오를 경우 수요는 줄어들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늘어난다. 수요곡선이 우하향이어야 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다음은 좌표평면에 우상향 곡선을 하나 긋는다. 공급곡선이다. 모양과 기울기야 어떠하든 공급곡선은 반드시 우상향이어야 한다. 공급곡선은 특정한 가격수준에서 공급자가 얼마나 많은 양을 공급하는지를 나타낸다.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공급량이 늘고 가격이 내리면 공급량이 줄어든다. 그래서 우상향인 것이다.

좌표평면에 우상향과 우하향인 곡선을 하나씩 그으면 반드시 교차점이 있다. 사과의 시장가격과 거래량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의 교차점에서 결정된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균형가격’과 ‘균형거래량’이라고 한다.

균형가격과 균형거래량의 자기모순

이 모델은 경쟁 시장의 작동원리와 장점을 한눈에 보여준다. 첫째, 경쟁 시장은 부질없는 욕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욕심 많은 공급자라도 시장가격보다 높은 값을 부를 수는 없다. 소비자 역시 더 싸게는 살 수 없다. 둘째, 경쟁 시장은 가격의 변동을 통해서 스스로 수요량과 공급량을 조절한다.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고 수요가 감소하며 가격이 내리면 정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예쁜 경제학 모형은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 모델이 묘사한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이다. 공급자가 하나뿐이거나 극소수여서 경쟁이 아예 없거나 있으나마나한 독과점 시장에서는 이 아름다운 원리가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독과점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어우러지는 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공급자가 스스로 가격을 결정한다.

둘째, 이 모델은 수요량과 공급량이 각각 가격과 반대방향 또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다른 정보는 전혀 없다.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가로축과 세로축이 만드는 좌표평면의 어느 곳에 놓여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척 허무한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원래 그런 걸 어찌하겠는가?

셋째, 이 모형은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들은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주어진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얼마만큼 사거나 팔 것인지를 결정할 뿐이다. 이것은 완전경쟁 시장의 여러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수요량이 공급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반대의 경우에는 가격이 내릴까? 누군가 더 높은 가격을 부르고 남들이 따라가야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것 아닌가? 하지만 이 모형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누구도 가격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전제조건을 걸고 만든 모형에서도 가격이 변해야 한다는 이론적인 자기모순, 이것은 이 모형이 하나의 학문적 모형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중대한 결격사유가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은 그 수학적 기하학적 우아함 때문에 정밀과학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우아한 것치고 실용적인 것은 별로 없는 법. 경제학이라고 예외이겠는가.

유시민 시사평론가
2002/03/01 00:00 2002/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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