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 싸움을 말리는 지혜


한 시골마을에서 삼형제가 싸우고 있었다. 유산 분배문제 때문이었다. 재산이라곤 소가 전부였던 아버지는 큰아들은 2분의 1, 둘째는 4분의 1, 셋째는 6분의 1의 비율로 나눠 가지라고 유언하고 눈을 감았다. 형제들은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문제가 벌어진 것은, 유산을 나누기 위해 축사로 갔을 때였다. 소를 세어보니 모두 11마리. 아버지가 유언한 분배 비율로는 도저히 나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멀쩡한 소를 죽여서 고기를 나눠 가질 수도 없고. 도저히 해법을 찾지 못한 삼형제는 서로 자기가 더 가져야 된다며 다투기 시작했다. 언쟁 끝에 서로 감정이 상하고 분위기가 험악해져갔다.

그때 마침 소를 끌고 일하러 가던 한 노인이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 노인은 자기 소를 그 형제들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선친이 남긴 열한 마리에 이 소를 더해 나눠보시오.

노인의 소를 합치니 도합 12마리, 이제 아버지 유언대로 1/2, 1/4, 1/6씩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큰아들 여섯 마리, 둘째아들 세 마리, 셋째아들 두 마리씩 나눠 가지면 모두 합쳐 열한 마리. 형제들은 아버지 유언대로 소를 사이좋게 나눠갖고, 노인의 소는 도로 돌려줄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형제들을 뒤로하고 노인은 소를 끌고 갔다는 이야기.

해피앤딩으로 바꾸는 제3자 개입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다. 하지만, 남의 싸움 말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잘못하다간 공연히 욕만 보고 물러나기 십상이다. 긁어 부스럼일 수도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처럼 되려 원망만 사기도 한다. 더욱이 제3자 개입을 금지하고 불온시해온 게 우리 사회 아닌가. 여차하면 감옥 갈 각오까지 해야 한다. 이래저래 다른 이들의 갈등·분쟁에 끼어드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말려야 하는 게 싸움이다. 위의 일화를 보라. 만일 노인이 그냥 지나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해묵은 감정까지 덧칠해져 자칫 삼형제의 혈투로 끝났을지 모를 일이다. 이 이야기의 라스트 신을 해피앤딩으로 바꿔놓은 것은 기실 아주 간단한 액션이었다. 노인이 잠깐 자신의 소를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은 것, 그뿐이었다. 노인이 그 형제들에게 빌려준 것은 기실 소 한 마리만은 아니었다. 정작 노인이 그들에게 빌려준 것은 지혜였다. 그리고, 나 몰라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굳이 끼어들어 형제들을 도우려 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도저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아귀다툼을 계속하는 형제들이 갈등을 풀고 웃으며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지혜로운 개입, 중재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남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고부갈등으로 늘 공기가 싸늘하고 자주 먹구름이 끼는 가정이 좀 많은가. 그 사이에 끼어 난감해하는 아들이자 남편 또는 딸이자 시누이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이 바로 그런 지혜로운 개입이다. 직장에서 동료 간 또는 부서 간에 오해나 다툼이 있을 때, 같은 동료로서 또는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도 그런 것이다. 정부·주민간, 또는 지역간·집단간 싸움으로 애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공동체가 위협받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부나 시민단체라면 상충하는 집단간·지역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리라.

중재(Mediation)는 협상과 함께 갈등·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다. 협상은 분쟁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를 통해 상생적인 해결책을 찾는 일.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든 갈등 당사자간 대화가 순조로울 리 없다. 서로 만나기도 꺼릴 뿐더러 만나도 금방 감정이 고조돼 문제만 더 악화되기 일쑤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제3자의 개입(지원)인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재다. 중재는 사실 한국을 포함, 동서양의 거의 모든 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돼온 보편적인 분쟁해결방식이다. 갈등의 연속인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중재를 하면서, 또 받으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비공식적, 전통적인 문제해결방식만으로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풀기 힘들다. 특히 심각한 개인 갈등이나 조직 내 갈등의 경우, 또는 복잡하고 뿌리깊은 사회갈등이나 공공분쟁의 경우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염불 외듯 대화와 타협 을 강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훈련된 전문인력이 있어야 하고 제도적인 장치도 갖춰야 한다.

중재에 의한 분쟁해결, 30년 전 시작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보다 앞서 시민사회가 형성된 서구국가에서는 각종 사회적 갈등분쟁도 그만큼 일찍 겪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앞서서 현대적인 분쟁해결제도를 발전, 정착시켜온 것은 미국. 민권운동바람이 크게 불어닥친 직후인 70년대 초부터였으니, 사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미국에서 중재를 통해 환경분쟁 등 공공분쟁의 해결을 본격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스노퀄미강 댐 건설 분쟁 때부터였다. 이 분쟁은 얼마 전 일단락된 한국의 동강 댐 분쟁과 유사점이 많은데, 해결과정은 아주 대조적이어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시애틀에서 북동쪽으로 약 30마일 가면 스노퀄미라는 아름다운 강이 있다. 태백산맥 서사면 협곡을 흐르는 동강 댐처럼 이 강도 캐스케이드산맥의 서사면을 감돌며 절경을 빚어낸다. 그런데 1959년 큰 홍수가 나자 미 육군 공병단과 주정부는 이 강에 댐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저지대의 농민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시에라 클럽 같은 환경단체, 그리고 카약이나 낚시를 즐기는 자연애호가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인근지역 주민들도 거세게 반대했다. 댐이 건설돼 홍수문제가 해결될 경우, 개발붐으로 주변환경이 번잡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찬반양론의 대립 속에 15년이 흘렀다. 공청회도 수차례 열렸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홍수피해는 더욱 커져 주정부에서는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1974년 초 전문중재인 제럴드 코믹(워싱턴주립대 중재연구소장)이 주지사와 공병단의 동의를 얻어 중재를 시작했다. 댐 건설 찬반운동을 펴온 관련 당사자 대표들이 중재석상에 앉았다. 중재팀은 참석자들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얘기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도록 유도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대안을 함께 만들고 검토하도록 했다. 워크숍 토론회 등 일반인 혹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형태의 모임도 이어졌다.

합의에 다다른 것은 중재 시작 후 4개월 만이었다. 당초 계획은 스노퀄미강의 세 지류 중 홍수 통제효과가 큰 중간 지류에 댐을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이곳은 그대로 보존하고 북쪽 지류에 훨씬 소규모의 다목적 댐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 대신 강변에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홍수피해도 막고 강 본류의 경관도 보존하게 됐다. 남은 문제는 홍수문제가 해결될 경우, 우려되는 저지대 개발붐을 어떻게 막느냐 하는 것. 이 문제는 주 차원에서 해당 지역을 농업용지 및 그린벨트로 묶는 등 토지이용규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15년 간 지속돼온 스노퀄미강 분쟁은 4개월 간의 중재로 종결되고 강은 다시 조용히 흐르게 됐다.

이를 계기로 미국 각 주에서는 각종 공공분쟁의 해결을 위해 중재방식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이후 10년 간 160여 건의 환경분쟁에 중재가 이뤄졌는데, 이 중 78%가 성공적으로 해결되었다. 현재 미국에는 전문중재인협회에 가입돼 있는 직업적인 중재인만 해도 약 3000명에 이를 정도로 중재에 의한 분쟁해결이 보편화돼 있다. 지역사회마다 공·사립 중재기관들이 운영되고 있어 갈등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중재인 등 분쟁해결 전문가를 양성하고, 일반인들에게 갈등해결훈련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근래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에서도 정부 등 공적 영역에 이러한 분쟁해결제도나 프로그램을 본격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도 가장 절실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강영진 미국 전문중재인 · 조지메이슨대학 분쟁해결 연구원
2002/03/01 00:00 2002/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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