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 "달릿"계층 농민들의 반세계화운동
2002/2002년 03월 :
2002/03/01 00:00
인도 - "달릿"계층 농민들의 반세계화운동
인도는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큰 나라이며 인구는 세계 1위인 중국 다음으로 많다. 그렇지만 10억 넘는 인구를 보유한 나라이자 대륙 같은 인도는 사회·문화적 다양성과 복합성으로 따져본다면 중국을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한 나라이지만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인간 내면의 영성을 더 중시하는 인도, 인도 사람들. 필자는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미국, 일본을 여행하기에 앞서 인도에 먼저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계화 반대하고 나선 인도 달릿 출신 농민들
1998년 6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가롭던 날, 인도 기독교교회협의회(NCC)의 총무인 조셉 박사가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인도 농민대표 250명이 6월 25일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방문할 테니 4시간 분량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인도의 카나타카 주(방갈로가 주의 수도)의 농민회 아이작 싱 박사는 농민연합회를 이끄는 농민조직에서 신망이 높은 지도자였다. 세계화의 물결이 인도 전역을 휩쓸면서 의회당이 집권했던 시절과 달리 BJP당 즉, 힌두근본주의당이 집권하면서 개방을 부르짖게 되어 농산물은 상대적으로 세계화 물결 속에서 값을 못 받고 외국의 농산물에 밀려나게 되었다. 이런 실정을 감안해 농민회는 유럽공동체 중 특히 농민운동이 거센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의 농민조직과 연대하게 된다. 후진국의 농민들이 세계화의 물결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대를 호소하고 카나다카주 농민회 회원들에게 2년 간 하루에 1달러씩 저축하라는 권고를 실시한 후, 1인당 2∼300달러를 갹출하고, 네덜란드 농민회가 보조금을 주어 KLM 네덜란드 여객기를 전세 낸다. 인도인 200명, 방글라데시·스리랑카·브라질·쿠바·아르헨티나 등의 전세계 농민대표 총 250명이 6월 2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집결하게 된다. 6월 25일 WTO, ILO, UN 그리고, WCC에 와서 그들의 주장을 펴는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실천하였다.
“전세계 농민은 세계화를 거부한다. 우리는 수천 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피마자 기름으로 빵을 구워먹었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기에 우리 제3세계 농민들은 포장만 잘 되어 있는 소위 선진국의 농산물을 배격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농민들은 제네바에 도착해 스위스 농민회와 연대해 시내를 행진했다. 그 날 WTO는 임시휴무를 선언하고 사무실 문을 굳게 잠갔으며, ILO는 농민들을 피해 사무실을 비우고 WCC로 피난왔을 정도였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참가대표 중 다수가 인도에서는 사람과 짐승 사이의 중간쯤으로 대우받는 달릿(Dalit) 출신들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비인간적인 카스트제도하에서 희생된 달릿(Dalit)계층. 아직도 우리 인구의 6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카스트제도하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니 한숨이 절로 난다.
인도는 10억이 넘는 인구 중 약 65%가 문맹이다. 70%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75%가 도시 아닌 촌락에 거주하고 있다. 50% 이상이 아직도 기아선상을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18년 간 제네바에서 재직하는 동안 인도에 매년 2회 내지 3회 출장을 갔으니 줄잡아 50회 이상을, 길게는 20일 짧게는 이틀을 머무른 셈이다. 그런데 인도에 갈 때마다 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곤 했다. 그래서 인도의 달릿(Dalit)계층을 얘기하기 전에 인도를 잠깐 훑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불평등한 신분제, 카스트
이슬람교와 힌두교는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해 1173년부터 1206년까지 30년 간 투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06년 델리(Dehli) 장군이 전 인도를 통치하게 되어 왕의 칭호를 받으면서 인도는 통일되었다. 그후 수없이 많은 왕가들이 동, 서 그리고 북, 남을 섭렵하면서 성쇠를 반복한다. 이 무렵 불교가 수난당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스리랑카 그리고 미얀마에서는 그 수난의 대가인 양 불교가 꽃피기 시작했다. 1526년 모굴(Mogul) 왕가가 다시 통치하게 되면서 인도는 서구의 세력에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포르투갈은 1498년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가 오늘의 고아(Goa)와 디우(Diu)를 통치하게 되고, 1600년에 네덜란드가 영국의 동인도 회사를 위협했으나 동인도 회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1612년에 수라트(Surat)를 1639년에 마드라스(오늘의 Sennai), 1661년에 봄베이(오늘의 Mumbai), 그리고 1690년에 칼카터를 손아귀에 넣게 되면서 인도는 몇 군데만 제외하고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한편 인도는 1857년부터 1958까지 2년 간 독립을 위해 영국식민세력에 대 반격을 가하게 되고, 19세기 말 시작된 이 독립운동은 20세기 초까지 거세게 전개된다. 1885년에 인도의 의회당이 창립되고, 1906년 전인도 이슬람교 연맹이 창립되면서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 독립운동이 크게 영향을 주게 된다. 인도는 우리보다 2년 후 1947년 8월 15일 근 400년의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됐다.
다시 원래의 천민 얘기로 돌아가자. 인도의 독립 후 카스트제도의 비인간성을 간파한 간디는 이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국민들을 계몽하고, 헌법에서 신분의 구분을 철폐해 카스트제도를 무효화했다. 그러나 지금도 인도에서는 이 제도가 통용되고 있다. 카스트제도는 아리안족들이 인도를 침공했을 때 원주민과의 구분을 꾀하고, 자신들의 신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러니 그 허구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카스트제도는 라틴어의 ‘Castus’ 즉, 순결·순수라는 뜻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힌두어로는 ‘Warma’라고 하는데 이 뜻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 신분이 결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신분은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에 속하지 않으면 신분 등외의 계급으로 아웃카스트(Outcaste)라 규정하고, 힌두어로는 파리아스(Parias)로 불린다.
이와 같은 신분을 지닌 사람은 인간 이하의 인간들이라고 규정했는데 이에 속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달릿(Dalit)계층이다. 달릿뿐 아니라 하리잔족(산족) 등까지 합하면 모두 2억5000만 이상의 사람들이 이런 계급을 갖고 사는 것이다.
여전히 ‘천민’이라는 꼬리표는 남아
기독교가 식민세력과 같이 인도에 들어와 전도를 하게 되면서 많은 달릿(Dalit)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힌두교를 버린다. 기독교의 평등사상에 근거해 자신의 신분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후 목사, 시인, 소설가, 사상가들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들에겐 달릿 출신의 교수, 달릿 출신의 비숍, 달릿 출신의 시인이라는 신분이 붙어 다닌다.
우리의 백정과 머슴이 인도의 달릿(Dalit)과 비슷한 계급이리라.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여덟 살짜리 양반 집 아들은 예순 넘은 상놈에게 경어를 쓰지 못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러한 전통이 1950년 한국전쟁 전후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해괴한 신분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없어졌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러나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언제까지 갈 것인가? 다음 호에 계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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