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정권과 DJ정권의 닮은 꼴


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말이 있다. 영삼 씨와 대중 씨도 50년 동안 정치의 생사고락을 함께 했으니 ‘정치적 죽마고우’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인연이 많지 않을 터이니 ‘정치지우(政治之友)’라는 새 말을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두 사람이 93년 이전에 쌓아올린 ‘돈독한’ 우정은 생략하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우여곡절을 거쳐 영삼 씨가 먼저 대통령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대중 씨가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두 사람의 당선은 모두 민주화로 해석되었다. 이들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는 취임 초기 90%를 오르내릴 정도로 대단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 힘을 이용해서 개혁을 추진했다. 영삼 씨는 부패인사를 척결하고 하나회를 제거하는 등 정치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하는 추진력도 보여주었다. 대중 씨는 금융개혁과 재벌개혁을 선언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켰다. 나라의 수치라는 IMF 구제금융사태도 극복했다. 앞에서는 정치개혁, 뒤에서는 사회경제개혁, 손발이 척척 맞아들었다.

처음에는 재벌, 언론, 관료, 수구세력 모두가 숨을 죽였다. 더딘 개혁을 비판하는 일부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개혁의 탄력이 줄어들고 정권의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나타날 무렵 반대세력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연후 기득권 집단이 총궐기했다.

그러나 4월혁명과 부마항쟁,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 6월민주항쟁을 거치면서 축적된 민주개혁의 역량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민주세력은 정부의 미온적인 개혁을 비판하면서도 개혁 자체를 거부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수구세력과 정면으로 대결했다. 두 정권의 중반기는 이렇듯 팽팽한 긴장 속에서 힘의 교착상태를 유지했다.

이 공포의 균형을 깨뜨린 파열음은 정권의 취약한 도덕성과 부패에서 나왔다. 영삼 씨 집권 당시에 일어난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사건·사고들이 정권을 흔든 것이 아니다. 정권을 밑동부터 흔든 것은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의 부패와 아들 현철 씨의 국정농단이었다.

이런 점에서 대중 씨의 집권 후반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처음에는 권노갑, 김홍일, 동교동계 수준에서 겉돌던 부패문제가 ‘4대 게이트’로 청와대 수석 여럿을 잡은 다음 결국 ‘몸통’이랄 수 있는 아들과 아태재단 문제로 확대되었다. 게다가 홍업 씨는 아태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YS와 DJ의 오랜 민주화 운동, 두 사람의 집권과 높은 지지율, 개혁정책의 추진과 좌절, 권력형 부정부패의 빈발과 정권의 도덕성 실추, 아들 문제의 부각. 두 정권의 출발과 결말이 이보다 더 붕어빵일 수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구세력의 집요한 저항이 좌절의 일차적인 배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을 극복하지 못한 정권 내부의 도덕적 한계도 작용했다.

현실에서 정치세력은 도덕성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승부는 이념과 정책, 조직과 자금, 지역주의로 판결난다. 그러나 이 모든 정치적 자원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도덕성이다. 도덕성은 힘이 아니지만 힘의 원천이다. YS정권과 DJ정권의 좌절은 도덕성으로 무장되지 않은 정치세력이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체험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
2002/04/10 00:00 200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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