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여러분, 농촌을 외면하지마세요'
2002/2002년 04월 :
2002/04/10 00:00
민복동 여주농민회 부회장 VS 길인호 청년농사꾼
헐레벌떡 도착한 여주군 농민회 사무실엔 넉넉한 미소가 번졌다. 무려 30분이나 늦었는데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빙긋이 웃고는 낯선 이방인을 관찰할 뿐이다. 그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온돌식 사무실에 소식지를 쫙 깔아놓은 다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침을 발라 꾹꾹 누른 백색의 소식지를 한 장씩 접어 봉투에 넣고 있었다.
올해 쉰셋의 민복동 여주농민회 부회장. 그는 35년째 농부로 살고 있다. 마을(여주군 강천면)에 쓰레기매립장을 짓는다기에 정부와 한판 한 뒤로 농민회와 인연을 맺었다. 그게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논농사 8000평, 밭농사 5000평. 그가 짓는 농사의 규모다.
스물여섯 청년농사꾼 길인호 씨.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 평생 농사지으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고향인 여주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벼농사만 2만4000평 짓고 있다. 그는 최근 3월 20일 치를 영농발대식을 준비하며 마을별로 ‘쌀값보장·쌀개방 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스스로 농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정부정책
민복동 : 길인호 씨는 많이 배운 사람인데도 배운 거 티내지 않고, 젊은 사람이 차암 괜찮아요. 예의바르고. 배운 사람이 이런 농촌에 와서 사회봉사하면서 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길인호 : 전 농사지은 지 얼마 안돼요. 이제 4년인걸요. 여주군 농민회는 10년 역사가 있는 조직입니다. 그걸 배우기도 너무 바빠요.
민복동 : 난 요즘 가장 안타까운 게 농민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을 줄 모르고 있다는 점이에요. 정부는 2004년에 쌀개방한다는 입장인데 그걸 농민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황이에요. 농가 스스로 농업을 포기하게 만든달까? 우리가 정부 정책에 맞서봤자 별수없다, 뭐 그런 생각 때문이죠. 앞으로 우리 쌀이 12만 원쯤 하면, 중국산 수입쌀은 9만 원쯤 한대요. 9만 원으로 쌀값 떨어지면 농민들은 다 망해요. 지금 당장 급한 게 농가에 이러한 실태를 알리는 거예요. 정부가 쌀값을 보장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길인호 : 농촌엔 정말 젊은 사람이 없어요. ‘쌀값보장’ 관련한 유인물을 만들어 마을에 뿌리러 가면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있어요. 노인만 농사짓고 젊은이들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지요. 그래서 농민문제 현안에 결합해 활동할 사람이 없는 문제도 심각한 거예요. 농민운동의 세대교체가 필요합니다. 제일 가슴 아플 때가 언제냐 하면 “우리는 힘이 없어서 못 나가니까 대신 나가 열심히 싸우라”고 말씀하실 때예요.
민복동 : 여주군 농민회엔 500명의 회원이 있는데 40∼50대가 주류예요. 마음 있어도 못 나오는 회원들도 많고, 그런 거죠. 그간 우리 농민들은 사회적으로 너무 낮은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게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의식이 확 바뀌게 됐지요. 그때는 수입도 좋았어요. 95년…. 그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농민들이 서울에 가면 아파트는 두어 채 정도는 살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골부자가 다 팔아야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도 못 사요. 땅매매도 요즘은 다 끊겼어요. 우리가 가장 못산다고 생각했던 때보다 더 못살아요. 옛날엔 전부 길러 먹어 촌에서는 돈 쓸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도 대형 할인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 먹고 살 수 있게 됐거든요.
길인호 : 옛날에는 공무원도 정부 편이 아니라 농민 편이었대요. 그런데 요즘은 농업관련 공무원들도 모조리 정부 편이 되어서 농민문제를 등한시할 뿐만 아니라 농민들을 멸시하는 경향마저 있어요. 쌀 대신 콩, 사료용 옥수수 심으라고 정부는 권장합니다. 쌀소비는 한계에 달했으니 다른 작물로 이전하라는 거죠. 그러나 농민들은 그런 정부 정책을 믿을 수 없어요. 쌀 대신 콩이나 옥수수를 심으라는 건 논을 밭으로 전환해 그런 작물을 심으라는 건데, 우선 쌀 자급자족이 되는지 묻고 싶어요. 쌀농사는 봄에 씨 뿌려 1년 농사를 짓는 거예요. 흉년일 수도 있고, 풍년일 수도 있지요. 작황여부에 따라 달라지지요.
민복동 : 정부는 91년 쌀 재고량이 1400만 섬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3년간 냉해가 들어서 수확량이 줄어들었지요. 농림부 집계에 따르면 1400만 섬이 800만 섬으로 줄었다구요. 지금은 1100만 섬 된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 숫자가 결코 안심할 수준은 못 돼요. 정부는 새만금 개발을 강행할 때 쌀부족을 이유로 들었어요. 그러면서 또 쌀이 남아돈다고 난리예요. 이런 걸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정부가 권하는 농사는 망한다
두 사람은 ‘데이트’를 그만두고 성토대회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농촌과 농업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면 과언일까. 그들은 평소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 농민회 회의나 행사에서 만난다. 그러나 나이차 때문인지 격의 없는 사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둘 사이의 어색함을 약간이라도 피해보고자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길인호 씨는 왜 농사를 짓게 됐는지.
길인호 : 제가 보고 자란 게 농촌풍경이에요. 연세 높으신 분들이 농사도 못 짓고 지팡이 짚고 다니는 걸 보면서, 또 동네에 젊은이들이 없는 걸 보면서 모두 이 농촌을 버리고 떠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쌀만큼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라도 농사짓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학생운동 하면서 나의 길을 고민했지요. 갈등 무지하게 많았죠. 하하하. 젊은 나이에 다른 걸 해볼까도 생각했고. 하지만 마을에 형님(주로 40대)들과 함께 가면 노인들이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시려고 하죠. 그럴 때 힘이 많이 나요. 이젠 저도 농민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요. 4년밖에 안됐지만.
민복동 : 우리 애들은 다 도시에서 살아요. 농사짓는 사람 없어요. 옛날엔 나도 애들더러 도시에서 고생하지 말고 내려오라고 그랬어요. 농촌도 한발만 더 노력하면 남보다 잘살 수 있다고 말이에요. 그러나 지금은 강요하지 않아요.
농민에게 등돌리지 말라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몰았다. 하지만 민복동 부회장은 ‘인디언’을 닮은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특수작물은 수지가 맞아요. 죽키니 호박이라고 애호박 같은 게 있거든요. 그것도 괜찮고. 참외도 전열을 쬐어 봄에 일찍 수확하면 그것도 꽤 괜찮아요. 전 아무런 재산 없이도 농사지으면서 애들 가르치고 먹고 살 만큼 땅도 마련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농촌이 상태가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정부는 농민들이 각각 경쟁력 있는 품목으로 좋은 작황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있어요. 정부가 권하는 농사를 하면 번번이 망한다는 인식이 그래서 퍼져요.”
길인호 : 네덜란드식 비닐하우스, 유리온실, 광폭하우스… 이런 것도 다 망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온실이나 하우스를 넘기려 해도 받으려는 사람이 없죠. 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망하는 걸 뻔히 아는 농민이 그걸 왜 하겠습니까. 그래도 화훼농가를 했던 사람들은 좀 건진 모양이더군요.
민복동 : 농민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참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농민부터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대안을 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하니까. 저는 최선을 다해 지금의 현실을 알릴 거예요.
길인호 : 농민이 어려운 시련에 닥칠 때 국민들이 농민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국민이 농민에게 등을 돌리면 농민들은 정말 기댈 곳이 없어집니다. 전 앞으로 농사를 계속 지을 생각인데, 국민들이 절 외면해 버릴까 봐 때로는 걱정이 됩니다.
여주농민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농민문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관심이 많았다. 납골당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걸 막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들의 어깨에 언제나 새털처럼 가벼운 희망의 선율이 걸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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