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3세계적" 초강대국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거인(巨人)주의다. 미국에는 이러한 개인주의만이 군림하고 있다. 개인주의라는 것이 사실 ‘힘센 놈이 최고’라는 현실 인식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돈독한 배려에 원래 등한할 수밖에 없다.

이미 1825년경 미국에서는 모든 백인 성인 남성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졌다. 허나 미국이 선진국 중에서 선거의 민주화를 달성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나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흑인에게는 1960년대가 지나서야 비로소 전면적인 보통선거권이 주어졌던 것이다.

정치적 평등은 비교적 일찍 달성된 편이었으나, 경제적 불평등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 깊어져 왔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면서 동시에 경제정의의 후진국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1980년대에 들어 1년에 100만 달러 이상, 그리고 20만∼1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의 소득이 각각 2184%와 697% 증가한 반면, 2만∼5만 달러의 하층 소득은 고작 44% 늘어났을 뿐이다.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저소득층의 그것을 훨씬 빠르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앞지르고 있다는 말이다. 소득 불평등 문제가 인종문제와 겹칠 때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흑인은 백인 소득의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달리, 미국의 빈부 격차 문제는 매우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어떤 미국 학자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미국의 여론 주도층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뉴욕 시는 점점 더 제3세계 도시처럼 느껴진다. 우아한 식당들은 인디언 추장처럼 돈을 뿌려대는 월가(Wall Street)의 무역업자들로 붐빈다. 그러나 공공장소들은 집 없는 노숙자(Homeless)들로 가득 메워진다.”

한마디로 미국은 ‘제3세계적 세계 초강대국’이다. 이 제3세계적 초강대국 미국의 자본주의는 언제나 국가 지원 없이 개인 스스로의 자발적인 노력과 책임 아래 삶을 해결하고, 부를 얻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해왔다. 그러나 미국에는 정부의 보조 없이는 삶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된 한계 빈곤층이 존재하고 있다. 이미 1960년대와 70년대를 통틀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 안에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확보하지 못하는 절대 빈곤계층이 전체 인구의 20%인 4000만 명 가량이나 되었다.

"제국주의적’ 민주국가

2차대전 이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은 하나의 ‘제국적 국가’(Imperial Nation)로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전세계에 걸쳐 군사력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에 걸맞는 전문적인 정보망을 그물처럼 엮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윽고 공산주의를 분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해외에서 반공을 간판으로 내걸기만 하면 어떠한 반민주 세력에 대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제국 민주주의’(Imperial Democracy)를 발전시켰다. 예컨대 반민주적 독재자의 전형으로 알려진 한국의 이승만과 박정희, 필리핀의 마르코스, 쿠바의 바티스타, 이란의 팔레비, 니카라과의 소모사, 칠레의 피노체트 등은 미국의 자상한 보살핌을 아낌없이 받은 존재들이었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가 도덕적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소수 독점기업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역시 민주주의의 본질을 급속히 망가뜨리고 있다.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1970년의 것이긴 하지만 스탠더드 석유회사(Standard Oil Company)의 규모와 권능에 대한 어느 미국 학자의 다음과 같은 묘사는 미국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암시하고 있다.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예산은 150억 달러이며, 쿠바의 국민 총생산의 두 배가 된다. 많은 주권국가들보다 더 강력할 정도로, 그 회사는 50개 이상의 나라에서 활약하는 250여 하부조직을 운용하는 15만 명의 대리인·조직책·고용인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것은 저개발권의 여섯 개 전략 국가의 경제적 생명줄을 통제하는 국제적 신디케이트의 일원이다.

그 자체로서 그것은 뉴욕, 펜실배니어, 뉴저지 그리고 텍사스 등 핵심 선거 주(州)의 주요 정치적 실력자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 대리인들과 그들의 제휴자들은 국무성의 주요 포스트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CIA 및 최고 지위의 정부내 대외정책 수립 부처들에 대해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정보 및 준군사적 네트워크와 그리스 해군보다도 더 큰 선단을 거느리고 있다. 그것은 비밀 조직이 아니지만, 그 결정과 운용이 비밀에 쌓여 있는 자기 영속적인 과두 체제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전 미국 경제의 활동 수준에 직접적이고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자유와 인권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는 판이하게 미국의 건국 역사는 지극히 짧다.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서로 이질적인 집단들이 넝쿨처럼 얽혀 있어, 이들을 하나로 이어줄 접착제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미 국민을 급속히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가장 유용하고 손쉬운 통합 수단의 하나가 바로 대외전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해외에서 조그만 전투나 전쟁이 일어나면 날마다 떨어지던 미국 대통령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마술’을 드물지 않게 보아왔다. 미국이 이끌어가는 해외전쟁이 미 국민의 ‘민족적’ 통합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미국은 특히 공산국가들을 향하여 자유와 인권에 관한 설교를 늘어놓거나 아니면 요란스럽게 압력을 가하길 즐기는 편이다. 이런 미국에 대해 중국은 어떤 자세를 보일까? 1991년 12월 4일자 중국 『인민일보』는 미국이 수백만 자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 할 수 있는 인간 생존권을 보장하지는 않으면서도 다른 나라의 인권에 간섭하는 자기당착을 저지른다고 비판하고는, 다음과 같은 통계를 제시했다. 1990년의 경우 미국의 거리 걸식자(homeless)는 250만 명이지만 미국 인구의 4배나 되는 중국은 15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감옥에 들어있는 죄수의 수까지 따지고 들면 미국은 입이 열 개라도 아무 소리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죄수 수는 인구 1만 명당 40명꼴로 중국의 4배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작년 5월 뉴욕 유엔본부의 유엔 경제사회 이사회(ECOSOC) 인권위원회 위원국 선출장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세계 각국의 인권문제를 감시하고 인권 불량국가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는 인권위 위원국 선출을 위한 비밀투표에서 1947년 유엔 인권위 창설 이후 단 한번도 자리를 떠난 적이 없는 미국이 탈락한 것이다. 미국은 유엔 설립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해 온 나라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던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고배를 마시는 동안 인권 불량국이라는 비판을 집중적으로 받아온 수단이 인권위 위원국에 선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유엔에서 미국이 ‘왕따’ 당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도 9·11 사태 이후 미국은 끊임없이 새로운 적을 개발해내며 확전을 모색하고 있다. 20년 만에 최대 규모로 국방비까지 늘리며 타고난 호전성을 숨기려 들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제 세계의 무법자가 되어가고 있다.

박호성 본지 편집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2/04/10 00:00 200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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