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을 지켜준다고?'
2002/2002년 04월 :
2002/04/10 00:00
동두천 보산동 상인들의 눈에 비친 미군
철길 사이로 늘어선 단층 건물들은 연탄불에 한번쯤 그을린 듯 뿌옇다. 낮이라 그럴까. 미군들이 활보하지 않는 동두천시 보산동은 을씨년스런 느낌마저 준다. 외국인 전용클럽에서는 도어즈의 ‘Riders on the Storm’이 흘러나오고, 낡은 건물들은 열차가 지날 때마다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1996년, 친구들과 어울려 보산동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마치 습자지처럼 2002년 보산동은 6년 전 기억과 겹친다.
미군에 대한 애증의 도시
1960년 이후 미2군(CAMP CASEY) 주둔 뒤 무질서하게 들어섰던 건물들은 이미 낡고 지쳐 있다. 미군을 따라 들어와 수십 년 이상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상인들. 그들 역시 낡은 건물들처럼 시름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군문제? 반미? 에유 난 몰라요.”
보산동에서 마주치는 상인들에게 미군에 대해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지만 잠시 곁에 앉아 조금 집요하게 물어보면 으레 한두 가지씩 불만을 털어놓는다. 나중엔 푸념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리고 대개는 한숨을 내쉬며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곤 한다.
“그렇지만 어떡하겠어? 그놈들만 보고 장사 해먹고 사는데….”
이것이 보산동에서 미군을 상대로 가게를 꾸려 생계를 유지하는 상인들의 미군에 대한 일반적인 정서다.
“미군이 한국을 지켜준다고? 웃기지 마쇼. 정치다 군사다 잘 모르긴 하지만 이놈(미군)들 그런 생각 절대 안해. 한국인들을 사람으로 대접이나 해주면 다행이지.”
보산동에서 30년 넘게 손수레 장사를 했다는 김씨 할아버지(64세)의 말이다. 철길 옆에 1만원 남짓 하는, 상표와 국적 불명의 옷가지를 늘어놓고 장사를 해온 할아버지는 그동안 미군들이 그냥 집어간 물건만도 1년 장사치는 될 거라고 말했다. 물론 길거리에 옷을 늘어놓고 파는 것이 불법이니 신고는 꿈도 못 꾼다. 할아버지의 말에서 30년간 쌓였을 울분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일상적 범죄, 일상적 체념
보산동에서 미국인 범죄는 일상적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일어나는 절도, 툭하면 한국 상인들에게 행사하는 폭력, 심지어 클럽에 나가는 ‘아가씨’를 찾는답시고 이집 저집 담을 넘나드는 어처구니없는 주거침입까지….
하지만 파출소에 신고되는 범죄 건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군이 자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광경을 목격해도 대부분의 상인들은 손쓸 방법이 없다. 미군이 물건을 훔치다 주인에게 걸리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물건값을 지불하거나 장난이었다는 듯이 웃고 가버리면 그만이다. 가까스로 붙잡아 드잡이를 해봐야 힘에서 밀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소란을 떨고 있을 때 쉴새없이 순찰을 도는 미군 헌병이 와서 자신들의 병사를 데리고 가버리면 그만이다. 범죄 현장에서 미군을 붙잡아 놓고 경찰에 넘기기 전에는 우리 경찰에 신고해 봐도 소용없다. 그래서 보산동의 상인들은 미군범죄에 대해 체념해버린 지 오래다. 그 빈번한 발생 건수에 비해 지난해 이 구역을 맡고 있는 동현파출소에 신고된 미군범죄가 절도 3건, 폭력 13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상인들의 미군범죄에 대한 체념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달라진 미국에 대한 시각
최근 꾸준히 감소하던 주한미군의 소비성향은 특히 작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가파르게 하락했다. 정인근 보산동 상가번영회 회장(53세)에 따르면 업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9·11테러 이후 매출 감소폭은 40%에 이른다고 한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제력 차이가 차츰 줄어들면서 미군의 월급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의 경제적 우위가 상당부분 사라지면서 상인들이 미군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정 회장의 말에 따르면 9·11 사태 이전에 보산동 상가의 매출은 미군이 70%, 외국인 근로자(불법체류자) 25%, 한국인이 5%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9·11 이후 미군이 테러를 우려해 한국 상인들에게 불법체류자들의 업소 출입을 금지하라는 압력을 가해왔다. 미군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상인들은 그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현재 보산동의 매출은 98%가 미군에 의존하고 있다. 예전처럼 미국에 대해 무조건적인 우호감을 보이지 않던 보산동 상인들의 미군에 대한 거부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막대한 달러를 뿌려대던 미군은 상인들에게 구세주처럼 비쳐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미군부대로 인해 지역의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점이 강조되면서 상인들 사이에 “제발 너희들 딴데로 가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건물들은 금가고, 녹슬고, 바랜 채 위태롭게 서 있다. 건물마다 변변한 화장실 하나 갖춰지지 않고, 그나마 근처에 하나 있는 공동 화장실은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다. 보산동의 개발이 뒤처진 이유를 상인들은 미군에 돌리고 있다. 애초 미군부대 주변에 미군을 상대로 한 상권이 형성되다 보니 지역개발에 필수적인 기간시설은 갖춰지지 못한, 기묘한 동네가 이곳 동두천, 그리고 보산동이다.
상인들은 미군들이 한국인들을 얕잡아 보고 있다고 말한다. 미군들을 상대로 디지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식 씨(40세)는 보산동에 오기 전 대기업 사원으로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인들이 이처럼 현지 국민들을 무시하는 곳은 없었다”며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서도 미국인들이 한국에서처럼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보산동은 한국땅이 아니다”라는 말이 오갈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천대받는 국민
대다수의 미군은 매너가 좋아 미군 장사가 한국인 상대 장사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일부 미군들이 저지르는 절도, 폭력 등의 범죄 행위와 한국인에 대한 멸시, 그리고 한미행정협정에 발목을 잡힌 우리나라 경찰들의 미온적 대처가 맞물려 상인들의 미군에 대한 반감은 어느새 ‘한(恨)’이 되었다.
땅거미가 내리자 삼삼오오 부대를 나선 미군들이 눈에 띈다. 경기가 예전만 못하다 해도 보산동은 여전히 미군들의 도시다. 해질 무렵이면 보산동 거리는 미군과 반라의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로 채워진다. 이곳 상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이곳을 떠나 미군이 없는 곳에서 장사하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바람은 더욱 절실해진다.
보산동을 나서는 길에 이불가게 앞에 상인 여럿이 모여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주인 할머니가 흑인 미군 3명이 물건을 훔치는 것을 발견하고 붙잡았단다. 옆에 있는 상인에게 그 미군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지들끼리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낄낄거리다가 그냥 가버렸죠.” 젊은 미군을 붙들어놓고 있기에 할머니의 팔은 너무 약했다.
이제는 그런 일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매번 심하게 화를 낸다는 할머니. 분을 삭이기 위해 담배를 꺼내든다. 담배를 끼워든 두 손가락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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