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전쟁 음모를 아시나요?
2002/2002년 04월 :
2002/04/10 00:00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적 문제제기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유럽 정가에서는 이를 두고 갖가지 반응이 나왔다. 여기에 미국의 중동정책 실패의 상징으로 떠오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과 관련, 스웨덴은 워싱턴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관계를 단절하려는 것을 두고 “미친 짓”, 미국이 파견한 중동 특사의 처신을 “마피아식”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하였다. 연 15%의 천문학적 국방비 증강안을 두고 유럽연합(EU)의 외교책임자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등은 이제 “유럽은 군사적 피그미족이 될 것”, “미국과의 군비경쟁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자조하기도 하였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와 일방주의적 국제전략이야말로 오늘날 세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오만과 패권주의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필요할 때마다 부각되는 일부 국가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부시와 서방 언론의 온갖 호들갑은, 미국이 이미 오래 전에 중국, 북한, 이라크, 이란 등에 대해 수백 기의 핵무기를 겨냥해 놓았다는 사실 하나에서 바로 우스갯 소리가 된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허바드 주한 미대사가 이미 실토한 것처럼 ‘악의 축’이 국제 테러활동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무기개발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군사적 과대망상증 환자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전대미문의 군사적 우월성을 가진 미국이 다른 나라의 ‘대량 살상무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패권은 있으나 세계경영은 없다
서방 언론이 미군 폭격으로 갈가리 찢겨진 아프간 민간인의 사진을 보도한 적이 있는지 상기해 보라. 이번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실수로?) 학살한 아프간 민간인 수가 세계무역센터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에 육박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일방적인 핵 보유와 미사일 개발에 미국이 관대한 점과 “악의 축” 발언을 연관시켜 보면, 미국의 관심은 대량 살상무기를 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걸림돌이 되는 국가와 세력의 제거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선악 이분법은 기독교적 이분법과 힘의 논리를 단순논리로 결합시킨 것이다. 이를 냉전종식 이후 날로 복잡해지고 꼬인 국제현실에 비추어 보면 사실상 미국이 문제해결을 포기했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부시의 연설이 “미국의 이익”과 “미국의 가치”를 빈번히 언급하는 반면, 그 세계적 보편성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패권은 있으나 ‘세계경영’은 없는 모순을 보여준다. 한쪽의 약탈과 다른 쪽의 축부는 존재하지만 ‘관리’는 없는 것이다. 수백명씩 무리를 지어 극한 상황을 감수하며 불법이민을 감행하는 거대한 이주자들의 물결을 보라. 여기에 극심한 지구촌 빈부격차, 생존을 위한 마약재배와 선진국 밀수의 거대한 행렬, 군벌과 분쟁 학살이 난무하는 ‘개발의 변두리’ 국가들의 처참한 현실-냉전 이후 미국의 단독 패권 아래 놓인 세계의 모습은 모든 식민체제의 말기와 비슷하게 오히려 그 패권의 실패를 웅변하고 있다.
미국식 삶의 방식의 끝
성실한 패권 국가의 경우 (가령 그런 게 있다면) 이 현실은 ‘관리 개혁’의 과제로 떠올라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 현실을 ‘안보 위협’으로 해석하고 국내외적으로 ‘협박의 정치’로 선회했으며 그 방법으로는 철저히 군사력 우선의 길을 선택했다. 이 노선이 가져올 국제적 반발을 미국 엘리트들이 모를 리가 없다. 진실은 미국이 지구촌 경영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온건한 방법’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구촌의 온건한 관리 개혁을 위해 필요한 자기 희생을, 소비와 번영에 중독된 오만한 미국사회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시의 단순한 군사적 패권주의는 미국이 세계를 가치와 설득으로 경영할 능력이 국내 정치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치의지 면에서 모두 소진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현재 의미심장한 것은, ‘미국식 삶의 방식(American way of life)’의 결말이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군사기지를 두고 매분매초 모든 나라를 감시해야 유지되는 미국의 신경질환적 군사적 경영체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군사적 또는 폭력적 대응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오히려 무쇠를 녹슬게 하는 바람과 물의 의지가 필요하다.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겠지만 유일한 길은 미국 패권의 실패 지점에 새싹을 심어 무기를 녹슬게 하는 숲을 가꾸는 길일 것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전쟁의 참화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환기시키고 강력한 반전 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전쟁은 그 자체가 야만적이며 무고한 민간인들을 필연적으로 대량살상한다. 폭격이 어떤 것인지는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노근리에서도, 코소보에서도 또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아군’의 폭격과 사격으로 찢겨진 무고한 시민들의 시체는 사진 한장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도 전쟁을 치른 사회는 두고두고 폭력적인 사회로 남으며, 가난한 이들은 ‘아군’이 뿌리고 간 지뢰와 불발탄에 대를 이어가며 인생을 찢긴다. 사회단체와 학교, 교회, 인터넷을 통해서 전쟁에서 사용되는 무기 하나하나마다 그로 인해 살해된 사람들의 모습을 알리자. 전쟁을 인간의 눈으로 다시 보는 일을 시민운동의 일상적 활동에 포함시키자. 세계 최대의 전쟁 기계인 미국의 패권체제에서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는 강력한 여론은 미국의 군사주의를 붕괴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쟁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기가 쌓이면 호전적인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 전쟁을 하고 싶어한다. 또 부시와 이스라엘의 샤론 관계처럼 호전적인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다닌다. 때문에 군비경쟁, 국방논리, 군사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운동을 펼쳐 호전적 정치세력의 출현을 차단해야 한다. 평화운동의 금언 중에 “무기는 사용되기 전부터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이들의 현실은, 전쟁 이상으로 참혹하고 9·11 참사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 이민과 마약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욕망과 질시와 절박함은, 현재 선진국들이 사용하는 국방비의 일부만 전환해도 해결할 수 있다. 무기와 국방비는 군수업체와 엘리트들에게는 안보를 가져오고, 서민들에게는 극심한 안보 위협을 가져온다. 구입, 사용되는 무기 하나하나마다 그것이 어떤 살상을 야기하며, 그 돈이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가며, 그 기업이 어떤 학살에 관여했는지, 그 비용으로 얼마나 좋은 평화사업을 할 수 있는지를 널리 알리도록 하자.
전세계를 감시·도청·협박해야 살 수 있는 나라, 미국
미국의 패권체제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감시·도청·협박을 해야 유지되는만큼, 거꾸로 여러 나라의 양심세력들은 서로 연대해 미국에 대한 일종의 권력 감시 및 폭로운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 엔론 사건에서 보듯 미국의 정치인, 기업인, 군수업체, 지식인, 언론인들 사이에는 더러운 돈, 피가 묻은 돈의 그물망이 존재한다. 부시와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모두 석유업체 출신이며 아프간 전쟁이 석유업체의 이권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앞으로 부시와 CIA의 ‘더러운 전쟁’은 국제법과 미국법을 위반하면서 전개될 것이다. 미국 엘리트들 사이의 피와 돈의 그물망, 그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폭로를 통해, 미국 지도자들의 발언과 행동에 숨어있는 진짜 음모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영역에서 미국식 삶의 방식이 안고 있는 폭력성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는 녹슬어 갈 것이다. 이를 대신할 힘은 무쇠보다도 물과 바람처럼 서로 어우러지는 세력들의 지혜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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