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를 거부하는 이유
2002/2002년 04월 :
2002/04/10 00:00
공기업 민영화를 거부하는 이유
지난 2월 25일 한 차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던 가스, 철도, 발전노조의 파업은 다시 한 번 공기업 민영화를 둘러싼 논쟁을 사회적으로 촉발시키고 있다.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다행히 가스, 철도 민영화 문제는 극단적인 파행으로 치닫지 않았다. 하지만 유사이래 처음 장기파업을 하고 있는 발전노조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중재안’조차 거부하는 정부는 한창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면 당초 정부의 민영화 강행 방침은 제동이 걸렸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IMF 관리체제 하에 있었던 지난 1998년 7월부터 추진되어 현재 11개 민영화 대상인 공기업 중 6개 공기업 민영화가 완료된 상태다. 그러나 민영화 추진 계획중에 있는 이른바 공익산업 부문 또는 네트워크산업 부문의 민영화는 강행론 못지않게 민영화 회의론이 양립하고 있다. 정부가 다른 부문의 구조조정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주요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동안 노동계는 각 부문별로 민영화 반대여론을 형성해 왔고 철도, 가스공사, 발전산업, 전력기술, 지역난방, 고속철도 등 6개 노조로 구성된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까지 결성했다. 그러나 전면적인 공기업 민영화 반대를 주장했던 노동계의 저항은 그다지 국민적 호응을 받았다거나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예고된 갈등
철도부문의 경우 그동안 철도청의 개혁안은 대체로 경영합리화 방안이나 공사화가 논의되었을 뿐 민영화는 논의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98년 하반기부터 공기업 민영화가 본격화되면서 한국철도의 경영적자가 크게 부각되었고 경영효율화를 위한 민영화라는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다. 실제 철도의 수송분담률이 10% 내외에 불과하고 매년 2000억∼3000억 원의 적자를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설도 매우 낙후되어 있다. 정부는 늘 강조하듯이 민간자본간의 시장경쟁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초래되었다고 진단하고 시설과 운영부문을 각각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철도주식회사로 분할해 올해부터 노선별 민간위탁과 시설부문의 외부 용역화로 본격적인 민영화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철도민영화 논리는 강력한 반대공세에 포위되어 있다. 즉 철도부문의 경영적자나 시설낙후는 시장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철도에 대한 공공정책의 결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공공성이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또한 철도 서비스의 보편성을 유지, 강화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적자’는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성의 논리 외에도 철도는 이미 내부 경영합리화와 함께 다양한 마케팅으로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고 안정성, 친환경성을 갖추는 등 성공적인 경영혁신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들이 존재한다. 철도 민영화 방침에 대한 반대여론이 급등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발전부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미 2000년 12월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는 거대회사를 쪼개어 판다’는 비판 속에서 발전산업 민영화를 포함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한전에 잔류할 송·배전회사를 제외하고 6개 발전 자회사로 분할된 현재, 분할 자체보다는 발전소 매각 형식의 민영화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발전소 매각반대의 주체는 물론 ‘매각을 위한 분할’에 합의했던 한전노조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발전 자회사의 강성노조이다. 정부는 2002년 상반기 중 1개 사를 민영화시키고 시장점유율 60%에 이르는 발전 자회사 5개를 매각하려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구조개편 과정에서 정부는 노조와 협의를 거치기로 한 약속을 저버렸고 회사는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삼기보다는 노조활동조차 어렵게 하였다. 또한 지난해 발전기술 노조의 사례를 보더라도 해외매각 대신 노조가 도입하려 했던 종업원지주제 형식의 변형된 민영화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매각만을 유일한 안으로 삼았다. 구조개편 추진과정에서 민영화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하고 있는 정부와 회사로부터 배제되고 고용승계 약속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는 등 극에 달한 노조의 불만과 매각의 부당성에 대한 확신감 등이 한전 사상 최초의 파업을 결의하게 했던 요인이었다.
정부가 민영화를 고집하는 까닭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공공서비스에 대한 누적된 국민들의 불만을 근거로 구조개편이 단행되었고 노조의 강력한 저항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철도나 전력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요금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또한 공공성을 넘어서는 비효율을 체감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국민들의 불만이 그다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민영화가 단행되고 그것이 요금인상을 초래한다면 당연히 왜 민영화를 하느냐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민영화론자들이 대체로 민영화를 강행해야 하는 이유로 드는 것이 공기업이 갖고 있는 비효율성과 방만한 경영, 막대한 부채를 지적하고 그 해결책으로 분할매각과 경쟁체제의 도입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한전의 경우, 비효율성이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없을 뿐더러 방만한 경영과 엄청난 부채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공기업 고유의 문제가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공기업 구조자체가 비효율을 낳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노조가 구조개편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매각에 대한 반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분할된 자회사의 내실있는 구조개혁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따라서 앞서 거론되었던 문제점들은 구조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지 분할매각식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 어렵다.
실제 민영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연구자들조차 정부의 민영화안이 계획하고 있는 5개 자회사의 매각을 통한 경쟁적인 전력시장의 창출 가능성과 정부규제 체제의 확립에 많은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 발전산업 민영화는 그 과정에서 소유권 이전의 문제, 시장기능의 효율적 작동, 요금상승의 문제, 기업경영과 재무에 관한 정부간섭의 배제, 그리고 정부가 규제된 경쟁틀을 확립하기 위해 규제기능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등 선험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곳곳에 있다. 또한 공기업 독점체제와 비교했을 때 사적독점이나 과점에 따라 가격이 상승되거나 공급이 불안정하여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후생이 악화될 거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발전산업 민영화는 시장운영과 관련해 신중하고도 철저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회적 공론화나 합의 시도는 고사하고 민영화 신중론을 펴는 각계의 요구를 외면하면서까지 민영화를 고집하고 있다. 민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들에 대한 검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IMF 음모론도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 시민이 직접 참여해 풀자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이 증폭되었을 때 반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철도부문은 1996년 이후 계속적인 인원감축이 있었고 24시간 맞교대로 근무를 하는 등 지난 한해만 보더라도 15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지보수 부문의 외부 용역화와 운영부문이 민간위탁 될 경우 비정규직화 등 고용불안에 놓일 수밖에 없다. 발전의 경우도 다른 부문 매각 사례에서 목도되었던 대규모 인력감축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노조의 저항을 민영화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걸림돌은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누적된 불만도 없지만 민영화에 대한 대폭적인 지지도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발전산업 민영화 문제는 중대한 시민적 사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제 시민이 직접 사회적 공론화에 참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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