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의 시 한 구절을 아무런 시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읽으면 깊은 감상 속에 빠질 수도 있다.

<집으로…>라는 영화 한 편이 인간관계의 한 부분을 유행병처럼 부각시켰지만, 가족 구성원 중 그 어느 조합보다도 감정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관계의 짝이 아버지와 아들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마지막 해에 와서 펼쳐지는 아들들의 비극적 드라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국가와 사회의 화두로 던진다. 시 한 구절을 얕고 혼란스러운 잡념 속으로 나뒹굴게 하는 한탄으로 평가절하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야말로 일상적이다. 그러나 그 일상성 가운데 대단한 긴장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부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위대한 인물이 되기는 힘들다고 믿는 것이 속설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위대함을 찾는다면 그 중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따라서 하나의 성공에 따라 하나의 희생으로 대응하는 것이 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제국의 막강한 권력자였던 오토 비스마르크는 장남 헤르베르트를 자신의 충실한 보조자로 키웠다. 헤르베르트는 외무부 차관에 올라 재상이자 외무부장관인 아버지의 정치활동을 훌륭히 도왔다.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아버지와 같게 하고, 아버지의 활동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노선을 그대로 따랐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보조자를 넘어 후계자로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들의 사생활은 아버지의 그림자에

바쳐진 제물이었다. 사랑도 그 속에서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쪽이 명예를 포기하는 인내를 발휘한 예는 모차르트의 경우다. ‘장난감 교향곡’을 쓴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스스로 재능있는 음악가였지만, 그 재능으로 볼프강 아마데우스의 천재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보다는 아들을 택했다. 백과사전적 지식까지 갖춘 레오폴트는 연주여행의 일정 사이에 어린 모차르트의 교육을 맡았다. 그 천재성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게 한 것은 아버지의 교육 덕분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희생은 마지막에 가서 실패라는 평가에 직면한다. 아들을 놓아 보내야 할 때 지배력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한 것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자신의 노후는 천재 모차르트의 등뒤에 남은 실망과 배신으로 시달려야 했다.

아버지와 아들, 그 사이에 놓인 긴장과 갈등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은 바로 세대교체다. 정치적으로 표현하면 민주주의의 신진대사를 이루어 내는 상징적 관계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순한 관계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아들의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행위이다.

아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때, 그리고 그 고통과 쾌감이 무수히 반복될 때 사회의 변화와 역사의 흐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통령도 아들이었다가 아버지가 되었다. 대통령과 아들의 관계도 여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다. 굳이 다른 사정을 하나 들어보라면, 아버지의 정치적 후광이 아들의 독립을 방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정치적 후광의 강한 지배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들로 하여금 기대고 싶게 하는 마약과도 같은 매력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식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아버지라는 세익스피어의 한 마디는 우리 대통령의 가슴을 아프게 할까? 대통령 아들들의 사건은 정치적 교훈보다 더 비중 있는 가르침을 준다. 아버지와 아들, 사랑은 깊이 감추고 냉정히 독립해야 한다.

차병직 변호사 참여연대 협동 사무처장
2002/04/28 00:00 2002/04/28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622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