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안식년을 맞아 2000년 8월부터 1년간 영국에서 지냈다. 필자가 ‘연구년’보다는 굳이 ‘안식년’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고백하건대, ‘연구’보다 ‘안식’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1년의 안식 와중에서도 그나마 필자에게 공부가 되었던 것은 2001년 7월 영국의 총선을 지켜본 것이었다. 영국 파운드화의 유로 가입 여부, 공공서비스 개선을 위한 조세정책의 방향, 제조업 쇠퇴 및 불법이민에 따른 노동시장의 문제 등에 대한 치열한 정치 공방은 교과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생생한 공부거리가 되었다. 특히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보수당의 윌리엄 헤이그, 자유민주당의 찰스 케네디 등 각 정당의 총수들, 즉 수상 후보자들이 구체적인경제문제에 대해 차별화 된 정책 슬로건과 프로그램을 갖고 직접 국민을 설득하는 당당한 태도는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권자들은 이들의 연설 내용으로부터 각 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택의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언제나 국회 본회의장의 맨 뒷자리에 앉아 무게만 잡고 있는 우리네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부럽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부러운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신문의 보도태도였다. 선진국의 신문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영국의 신문들도 분명한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즉 독자들은 어느 신문이 어느 정당의 누구를 지지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영국에서 최대의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은 SUN지이다. 이 타블로이드판 신문은 표지에 항상 선정적인 여성모델 사진을 게재하고 프로축구 관련 기사가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전형적인 대중지인데, 주 독자층이 노동계급(working class)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보수당을 지지해 왔다. 그런데 이 신문이 2001년 총선에서는 보수당을 버리고 노동당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유인즉슨, 윌리엄 헤이그보다는 오히려 토니 블레어가 마가렛 대처(보수

당)의 정책노선을 훨씬 더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속된 말로, ‘토니 블레어는 바지 입은 마가렛 대처’라는 뜻이다.

토니 블레어가 주창한 ‘제3의 길’의 이념적 지향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끝없는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학문적 평가는 아마도 한 세대가 지난 다음에야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일개 대중지가 자기 나름대로의 평가에 근거하여 지지 정당을 공개적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고 한편의 코미디라면서 웃어넘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엇이 객관적 보도태도인지 생각해 보자.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라면, 정치 관련 보도에서 과연 자연과학적 의미의 객관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한국의 신문은 누가 보더라도 어느 정당의 어느 후보를 지지 내지 기피하고 있는지 분명한데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언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객관성이 보장되는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근엄한 정론지는 영국의 선정적인 대중지보다도 객관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이른바 보수신문에도 그리고 진보신문에도 모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지향성을 분명히 선언하고 지지 정당 및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신문, 그리고 선거 후에는 애초의 정치적 지향성에 입각하여 엄정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신문,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신문을 읽게 될 날은 기대해 본다. 가뜩이나 밥맛 없는 봄날, 신문

만 보면 구역질이 나서 한번 써 갈겨 보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2002/04/28 00:00 2002/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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