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기자 맞아?'
2002/2002년 05월 :
2002/04/28 00:00
새순 돋는 봄날이었다. 날씨 좋은데 동종업계 종사자들 한데 모여 ‘1잔’ 하면서 앞날을 도모하자고 제안했다. 싫다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술로 사람을 낚아챘다. 서른하나, 서른둘, 서른셋. 시민언론에서 일하는 ‘노처녀’ 기자 셋이 모였다. 가끔 ‘메신저’로 채팅하며 ‘신세한탄’하는 그들이 인사동 술집에서 만났다. 오랜만의 회동이라 그럴까? 겨우내 잠들었던 초록 잎들이 어느새 일어나 이 만남을 축복하고 있었다.
이혜영 = 내일 녹색연합 후원의 밤이에요. 후원의 밤 하면 『작은것이아름답다』(이하 『작아』) 기자들은 사진 찍고, 행사장 스케치해서 웹사이트에 테마뉴스로 올려요. 행사 전까지는 평소 인터뷰하던 문화인물들이 그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섭외하고.
장윤선 = 그런 일 하라고 하면 기자들 불만 없나? (오진아 “그러게”)
이 =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웬만하면 모든 일을 수용하는 자세예요. (모두 와! 너무 착하다) 역량이 안 돼 포기하는 일은 있어도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 거야? 하는 식의 싸움은 없어요.
오진아 = 기자가 몇 명이에요?
이 = 두명. 아주 기형적인 구조죠. 둘이 기획부터 발송까지 다 해.
오 = 『진보정치』는 명확히 취재다, 이렇게 못 박아서 그런 일은 안해요. 편집위원회를 중심으로 재정과 편집권이 독립돼 있어요. 그래도 탯줄이 민주노동당에 매어 있으니 서로 일을 주고받을 수밖에.
장 = 『참여사회』는 『진보정치』와 『작아』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은데, 참여연대 행사 때는 『작아』랑 비슷하고, 편집권 등은 『진보정치』와 같아요. 조직에서 매체를 홍보지로 활용하자는 소리는 안 나오나?
이 = 『작아』는 출발 자체가 녹색연합을 홍보하는 매체는 아니었기 때문에 『녹색희망』이라고 회원용 잡지가 따로 있었거든. 그러다 2001년 초에 통합했어요. 두 가지를 내는 건 소모적이라고. 그 뒤로 말이 겁나 많았다. (웃음) 『작아』는 생태잡지로 거듭나야 하는데 자꾸만 단체 홍보 역할을 수용하라! 뭐 그런 거죠. 내부에선 녹색연합을 대변하지도 않는데 왜 녹색연합 이름으로 내느냐는 얘기도 나왔어요.(장 우리도!)
오 = 『진보정치』는 이제 창간한 지 2년 됐는데, 고민이 아주 많아요.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정당의 신문은 대표 얼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한 장짜리 당보라고. 그저 홍보에 급급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들. 그럼 진보정당에서 내는 기관지도 그렇게 낼 거냐. 우린 아니라고 본 거지. 보수정당과 다른 꼴로 낸다 그런 입장이지요. 그랬더니 이번엔 『이스크라』 같은 전위신문을 기대하는 거야. 완전 돌아버려. 우린 그것도 아니거든. 진보정당의 시각으로 민중의 삶과 소식을 전한다는 입장이지요. 벤치마킹 대상으로 생각하는 건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예요. 일간, 주간, 여성지까지 내면서 100명의 기자를 두고 신문의 판매수익으로 당의 재정을 충당하는…. 기관지로 돈 벌어 당에 팍팍 안겨주자,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
이 = 『작아』는 언제나 월간지니까 시의성에서 밀리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기사를 심도 있게 다뤄줄 건가 고민이 많아요. 와∼ 그런데, 이럴 때는 진짜 열받아. 어떤 사안이 긴급하게 불거졌을 때, 어떤 간사는 밤을 세워서라도 『한겨레21』 마감해줘요. 같은 시간에 『작아』에서 부탁하면? 아예 안 써. 이럴 땐 정말로 독자적인 힘 기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조직과 대등한 위치가 되지 않으면 홍보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죠.
장 = 언젠가 사무실에 신문·방송 기자들이 와 있는 거야. 웬일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FX와 관련해 중대한 취재를 왔대요. 순간 당황. 우린 몰랐거든. 게을러서 모른 거라면 황당하지 않지. 그런데 간사들조차 내부의식에 젖어 정보 줄 생각을 안한 거예요. 내부에서 캐치해 다른 매체들보다 좀더 소상히 쓸 수 있는 기사거리마저 놓치고 나면, 그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내부정보로부터의 소외감. 그것도 심각한 문제예요.
오 = 당명변경 문제를 가지고 공론화 했더니 당의 윗분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이더라구. 지면에서 그렇게 까발리면 어떻게 하느냐. 혹시 기관지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거 아니냐. 그런 중상모략도 있어요. 그럼 우리는 언제나 당 지도부가 결정한 사항만 쓰는 거냐? 그렇게 항의하죠. 기관지는 당의 언로이고 이를 통해 당원의 의견을 듣는 거다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느냐고 댓거리 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그건 순전히 마인드 문제야. 기관지를 언론으로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이 대목에서 불붙은 데 물 붓듯이 한잔 들이켰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언론 기관지 기자들이 겪는 가장 큰 난관은 엔진 부족이다. 기름을 적절히 부어야 자동차가 돌아가는 것처럼 재정 형편이 넉넉해야 매체도 윤기가 흐른다.
이 = 재정? 장난 아니야. 무지하게 어려워요. 우린 원고료도 안 줘요. 이게 바람직한 걸까, 그런 의문이 있어요. 그래서 『작아』는 온전히 생존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문제에 관심 많아요. 현재는 정기독자 3000명과 회원회비 중 책값으로 받는 돈 일부로 버티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녹색희망』과 통합하니까 『작아』 독자로 있다가 회원으로 전환하는 사람이 겁나 많아. 회원하지 말고 계속 『작아』 독자 해라, 이렇게 못하잖아요.
(모두 웃음)
장 = 『참여사회』도 마찬가지야. 재정은 어디나 허걱거리는 수준인 것 같은데. 물론 독자의 힘으로 완전 독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이 있어요. 그러나 그건 아직 요원한 현실이죠. 회원이냐 정기독자냐. 막상 전화 오면 이거 무지하게 갈등하지. 회원으로 가입해 참여연대로부터 『참여사회』가 받는 돈은 정기구독료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액수이니까. 하지만 번번이 이렇게 말해. 회원가입 하시라, 그러면 『참여사회』는 공짜로 받는다….
오 = 『진보정치』는 창간 이후 재정 어려움으로 발행이 중단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작 당에서는 신문 안 나오는 줄도 몰라. 이거 환장할 노릇이야, 정말. 『진보정치』를 살려야 당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진보정치』는 언제나 자력갱생의 원칙을 견지하죠. 당원들에게 줄 신문은 당이 사가지만 나머지는 『진보정치』가 꾸린 정기독자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도 당이 어려운 형편이라 이쪽에 투자할 엄두도 못 내고 있죠.
이 = 요즘 우린 가급적 녹색연합 운동과 『작아』가 동시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연구 중이에요. 녹색연합이 ‘no paper day’를 선포하고 캠페인하면 『작아』는 특집으로 나무에 대한 철학을 깊이있게 다뤄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기획을 생각하고 있지요. 그럴 때 서로 상보적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 = 기관의 파워가 곧 매체파워로 이어지더라구요. 민노당과 참여연대 등이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운동 열심히 했잖아요. 당 활동이 활발하니까 기사 아이템이 계속 나오는 거야. 『진보정치』 보고 다른 매체 기자들이 전화해서 섭외해 달라고 난리예요. 그래서 스타 된 사람도 있죠. 당활동 활발하면 기사 쓸 게 많고, 아니면 기사 쓸 게 없어요.
장 = 일선 현장에서 취재하다 당하는 일은 없나? 나는 얼마전 국민참여경선 취재 갔는데, 기자실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시민단체 애들도 끼워줘야 되느냐? 그걸로 내부회의도 했다는구만. 그래서 공동기자실이라는 게 생겼는데, 그 공동기자실이 이른바 마이너매체 기자실인 거예요. 기자들이 많지 않아 오히려 편하게 취재했지만 공통의 정보에서 소외된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더라구. 아무리 ‘기자실’ 문제를 제기했어도 출입기자 관행은 그대로야. 심지어 한 정당은 국민경선 취재하러 가겠다고 하니까 ‘혹시 기자실 취재하러 오는 거 아니냐’면서 자기들로서는 불편하다는 거야.
이 = 그런데 기자증 있어요?
오 = 그것 때문에 엄청 열 받았다는 거 아니야. 발전파업 때문에 명동성당에 취재하러 들어가야 하는데 프레스카드 없다고 못 들어간다는 거야. 사실 기성매체 기자들보다 내막은 훨씬 더 많이 아는 데도 프레스카드가 없어서 접근 안 될 때는 정말 화가 나더라구. 경찰이 딱 서서 신분증 보여달래. 그래서 주민등록증 보여줬지. 그랬더니 이걸로는 안 된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명함 보여줬죠. 대뜸 당신이 무슨 기자냐고, 민주노총과 한 패지 그렇게 말하더라고. 당신 기자 맞아? 그런 투지. 그래서 전경들과 막 싸웠어요. 갑자기 사진기자들이 몰려들어 막 찍는 거야. 취재하러 온 기자가 오히려 취재 당했다고나 할까. 나 원 참.
이 = 작년에 새만금보전투쟁할 때 1주일 가량을 사무실 문 닫고 거리로 출근한 적이 있어요. 그날은 새만금사업이 결정되던 날이었는데, 그 소식 듣고 망연자실해서 터덜터덜 걸어오다 갑자기 경찰과 싸움이 붙었어요. 그래서 그걸 카메라에 담았죠. 그랬더니 갑자기 경찰이 당신 누구야? 그러는 거예요. 집회에 나왔던 활동가들이 『작아』 기자다! 그것도 몰라? 그랬더니 기자증 내놓으라고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몰라요. 기자도 아닌 것이 기자행세 한다 뭐 그런 투 졸라 열받더라구.
오 = 그런데 사실 취재현장에서 KBS·MBC 명함 보여주는 기자더러 기자증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 거의 없어. 사실 매체 영향력이 없으니까 경찰들이 기자증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거라구요. 기자는 기사로 승부하는 거잖아. 그럴수록 특종을 많이 해서 매체영향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야 그런데 한편으로는 분명 기성언론보다 『진보정치』 같은 데가 노동자들이 처한 문제점을 훨씬 더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잘 쓸 수 있는데, 노조는 1급 문건이 발견되면 KBS·MBC로 먼저 전화해. 따라서 매체파워 키우는 것은 우리 몫이기도 한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기사를 능숙하게 잘 소화하느냐에 따라 노조나 당 그리고 시민단체의 시각이 바뀔 것 같아.
장 특종 많이 하고 좋은 기사 많이 쓰려면 그 만큼 맨파워가 갖춰져야 해요. 그런데 대개 기관지들은 1명∼3명 기자가 밤낮 없이 일해 만들어낸다구요. 기자들이 기사만 쓰는 게 아니라 독자관리, 영업 별거 다 해.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매체의 파워와 질을 높이는 문제는 요원하다고 봐요. 그만큼 조직의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말로는 대안언론의 중요성을 갈파하지만 정작 주요이슈가 터지면 모조리 거대언론으로 쫓아가기 일쑤잖아. 이런 구조에서 대안언론 뿌리내리기 정말 어렵죠. ‘시민언론’ 기자는 물론 운동가들도 어떻게 하면 조·중·동에 맞선 대안언론매체를 시민의 힘으로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 맞아요. 녹색연합 안에서 『작아』는 야근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어요. 두 명이 독자관리, 주소변경, 입금확인, 전화업무, 기획, 편집 다 해. 재정업무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어요. 빚독촉은 물론 입금 언제 할 거냐는 채근전화도 하루에 몇 번씩 해야 해요. 여기에 발송도 우리 손으로 직접 하죠. 이래가지고는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성토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시민언론’의 한길에서 대안언론매체를 이끌고 가기엔 이 기자들의 어깨에 걸린 멍에(?)가 너무 무겁다. 그래도 이 길을 흔들림없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 조직과 매체의 갈 길은 서로 다르다고 봐요. 운동이 어떤 사안의 문제점에 대해 행동하는 거라면 매체는 한 걸음의 반 보 앞에서 상황은 이런 거다라고 설명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중 곁에 서서 보조를 맞추는 일인 거지요. 매체는 운동의 도구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고 봅니다. 매체는 대중과 운동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인 거죠. 그런 차원에서 대안언론을 꿈꾸는 매체들이 연대해서 할 수 있는 기획들을 만들었으면 해요. 기사제휴라도 하면 좋겠고.
오 = 사실 대안은 앞에서 다 얘기했. 다만 그걸 어떻게 실천할 거냐가 문제겠죠. 기사교류는 정말 해봅시다. 그간 지켜왔던 자기 틀을 벗어나 다른 문체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니 그거 괜찮네.
장 = 우리에게 핑크빛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대언론과 맞서 싸우고, 또 운동사회 내부의 인식을 변화시키려면 앞으로도 오랜 세월 시민언론 기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돼요. 무엇보다 대안언론매체로서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세상의 부조리와 한판 할 태세로 임해야 세상은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미 없는 군소언론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변화에 대한 대안과 새로운 담론 구성, 도발적 문제제기 등을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오늘도 우린 죽도록 일해야 하나?
이혜영 = 내일 녹색연합 후원의 밤이에요. 후원의 밤 하면 『작은것이아름답다』(이하 『작아』) 기자들은 사진 찍고, 행사장 스케치해서 웹사이트에 테마뉴스로 올려요. 행사 전까지는 평소 인터뷰하던 문화인물들이 그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섭외하고.
장윤선 = 그런 일 하라고 하면 기자들 불만 없나? (오진아 “그러게”)
이 =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웬만하면 모든 일을 수용하는 자세예요. (모두 와! 너무 착하다) 역량이 안 돼 포기하는 일은 있어도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 거야? 하는 식의 싸움은 없어요.
오진아 = 기자가 몇 명이에요?
이 = 두명. 아주 기형적인 구조죠. 둘이 기획부터 발송까지 다 해.
오 = 『진보정치』는 명확히 취재다, 이렇게 못 박아서 그런 일은 안해요. 편집위원회를 중심으로 재정과 편집권이 독립돼 있어요. 그래도 탯줄이 민주노동당에 매어 있으니 서로 일을 주고받을 수밖에.
장 = 『참여사회』는 『진보정치』와 『작아』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은데, 참여연대 행사 때는 『작아』랑 비슷하고, 편집권 등은 『진보정치』와 같아요. 조직에서 매체를 홍보지로 활용하자는 소리는 안 나오나?
이 = 『작아』는 출발 자체가 녹색연합을 홍보하는 매체는 아니었기 때문에 『녹색희망』이라고 회원용 잡지가 따로 있었거든. 그러다 2001년 초에 통합했어요. 두 가지를 내는 건 소모적이라고. 그 뒤로 말이 겁나 많았다. (웃음) 『작아』는 생태잡지로 거듭나야 하는데 자꾸만 단체 홍보 역할을 수용하라! 뭐 그런 거죠. 내부에선 녹색연합을 대변하지도 않는데 왜 녹색연합 이름으로 내느냐는 얘기도 나왔어요.(장 우리도!)
오 = 『진보정치』는 이제 창간한 지 2년 됐는데, 고민이 아주 많아요.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정당의 신문은 대표 얼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한 장짜리 당보라고. 그저 홍보에 급급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들. 그럼 진보정당에서 내는 기관지도 그렇게 낼 거냐. 우린 아니라고 본 거지. 보수정당과 다른 꼴로 낸다 그런 입장이지요. 그랬더니 이번엔 『이스크라』 같은 전위신문을 기대하는 거야. 완전 돌아버려. 우린 그것도 아니거든. 진보정당의 시각으로 민중의 삶과 소식을 전한다는 입장이지요. 벤치마킹 대상으로 생각하는 건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예요. 일간, 주간, 여성지까지 내면서 100명의 기자를 두고 신문의 판매수익으로 당의 재정을 충당하는…. 기관지로 돈 벌어 당에 팍팍 안겨주자,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
이 = 『작아』는 언제나 월간지니까 시의성에서 밀리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기사를 심도 있게 다뤄줄 건가 고민이 많아요. 와∼ 그런데, 이럴 때는 진짜 열받아. 어떤 사안이 긴급하게 불거졌을 때, 어떤 간사는 밤을 세워서라도 『한겨레21』 마감해줘요. 같은 시간에 『작아』에서 부탁하면? 아예 안 써. 이럴 땐 정말로 독자적인 힘 기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조직과 대등한 위치가 되지 않으면 홍보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죠.
장 = 언젠가 사무실에 신문·방송 기자들이 와 있는 거야. 웬일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FX와 관련해 중대한 취재를 왔대요. 순간 당황. 우린 몰랐거든. 게을러서 모른 거라면 황당하지 않지. 그런데 간사들조차 내부의식에 젖어 정보 줄 생각을 안한 거예요. 내부에서 캐치해 다른 매체들보다 좀더 소상히 쓸 수 있는 기사거리마저 놓치고 나면, 그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내부정보로부터의 소외감. 그것도 심각한 문제예요.
오 = 당명변경 문제를 가지고 공론화 했더니 당의 윗분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이더라구. 지면에서 그렇게 까발리면 어떻게 하느냐. 혹시 기관지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거 아니냐. 그런 중상모략도 있어요. 그럼 우리는 언제나 당 지도부가 결정한 사항만 쓰는 거냐? 그렇게 항의하죠. 기관지는 당의 언로이고 이를 통해 당원의 의견을 듣는 거다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느냐고 댓거리 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그건 순전히 마인드 문제야. 기관지를 언론으로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이 대목에서 불붙은 데 물 붓듯이 한잔 들이켰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언론 기관지 기자들이 겪는 가장 큰 난관은 엔진 부족이다. 기름을 적절히 부어야 자동차가 돌아가는 것처럼 재정 형편이 넉넉해야 매체도 윤기가 흐른다.
이 = 재정? 장난 아니야. 무지하게 어려워요. 우린 원고료도 안 줘요. 이게 바람직한 걸까, 그런 의문이 있어요. 그래서 『작아』는 온전히 생존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문제에 관심 많아요. 현재는 정기독자 3000명과 회원회비 중 책값으로 받는 돈 일부로 버티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녹색희망』과 통합하니까 『작아』 독자로 있다가 회원으로 전환하는 사람이 겁나 많아. 회원하지 말고 계속 『작아』 독자 해라, 이렇게 못하잖아요.
(모두 웃음)
장 = 『참여사회』도 마찬가지야. 재정은 어디나 허걱거리는 수준인 것 같은데. 물론 독자의 힘으로 완전 독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이 있어요. 그러나 그건 아직 요원한 현실이죠. 회원이냐 정기독자냐. 막상 전화 오면 이거 무지하게 갈등하지. 회원으로 가입해 참여연대로부터 『참여사회』가 받는 돈은 정기구독료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액수이니까. 하지만 번번이 이렇게 말해. 회원가입 하시라, 그러면 『참여사회』는 공짜로 받는다….
오 = 『진보정치』는 창간 이후 재정 어려움으로 발행이 중단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작 당에서는 신문 안 나오는 줄도 몰라. 이거 환장할 노릇이야, 정말. 『진보정치』를 살려야 당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진보정치』는 언제나 자력갱생의 원칙을 견지하죠. 당원들에게 줄 신문은 당이 사가지만 나머지는 『진보정치』가 꾸린 정기독자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도 당이 어려운 형편이라 이쪽에 투자할 엄두도 못 내고 있죠.
이 = 요즘 우린 가급적 녹색연합 운동과 『작아』가 동시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연구 중이에요. 녹색연합이 ‘no paper day’를 선포하고 캠페인하면 『작아』는 특집으로 나무에 대한 철학을 깊이있게 다뤄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기획을 생각하고 있지요. 그럴 때 서로 상보적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 = 기관의 파워가 곧 매체파워로 이어지더라구요. 민노당과 참여연대 등이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운동 열심히 했잖아요. 당 활동이 활발하니까 기사 아이템이 계속 나오는 거야. 『진보정치』 보고 다른 매체 기자들이 전화해서 섭외해 달라고 난리예요. 그래서 스타 된 사람도 있죠. 당활동 활발하면 기사 쓸 게 많고, 아니면 기사 쓸 게 없어요.
장 = 일선 현장에서 취재하다 당하는 일은 없나? 나는 얼마전 국민참여경선 취재 갔는데, 기자실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시민단체 애들도 끼워줘야 되느냐? 그걸로 내부회의도 했다는구만. 그래서 공동기자실이라는 게 생겼는데, 그 공동기자실이 이른바 마이너매체 기자실인 거예요. 기자들이 많지 않아 오히려 편하게 취재했지만 공통의 정보에서 소외된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더라구. 아무리 ‘기자실’ 문제를 제기했어도 출입기자 관행은 그대로야. 심지어 한 정당은 국민경선 취재하러 가겠다고 하니까 ‘혹시 기자실 취재하러 오는 거 아니냐’면서 자기들로서는 불편하다는 거야.
이 = 그런데 기자증 있어요?
오 = 그것 때문에 엄청 열 받았다는 거 아니야. 발전파업 때문에 명동성당에 취재하러 들어가야 하는데 프레스카드 없다고 못 들어간다는 거야. 사실 기성매체 기자들보다 내막은 훨씬 더 많이 아는 데도 프레스카드가 없어서 접근 안 될 때는 정말 화가 나더라구. 경찰이 딱 서서 신분증 보여달래. 그래서 주민등록증 보여줬지. 그랬더니 이걸로는 안 된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명함 보여줬죠. 대뜸 당신이 무슨 기자냐고, 민주노총과 한 패지 그렇게 말하더라고. 당신 기자 맞아? 그런 투지. 그래서 전경들과 막 싸웠어요. 갑자기 사진기자들이 몰려들어 막 찍는 거야. 취재하러 온 기자가 오히려 취재 당했다고나 할까. 나 원 참.
이 = 작년에 새만금보전투쟁할 때 1주일 가량을 사무실 문 닫고 거리로 출근한 적이 있어요. 그날은 새만금사업이 결정되던 날이었는데, 그 소식 듣고 망연자실해서 터덜터덜 걸어오다 갑자기 경찰과 싸움이 붙었어요. 그래서 그걸 카메라에 담았죠. 그랬더니 갑자기 경찰이 당신 누구야? 그러는 거예요. 집회에 나왔던 활동가들이 『작아』 기자다! 그것도 몰라? 그랬더니 기자증 내놓으라고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몰라요. 기자도 아닌 것이 기자행세 한다 뭐 그런 투 졸라 열받더라구.
오 = 그런데 사실 취재현장에서 KBS·MBC 명함 보여주는 기자더러 기자증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 거의 없어. 사실 매체 영향력이 없으니까 경찰들이 기자증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거라구요. 기자는 기사로 승부하는 거잖아. 그럴수록 특종을 많이 해서 매체영향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야 그런데 한편으로는 분명 기성언론보다 『진보정치』 같은 데가 노동자들이 처한 문제점을 훨씬 더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잘 쓸 수 있는데, 노조는 1급 문건이 발견되면 KBS·MBC로 먼저 전화해. 따라서 매체파워 키우는 것은 우리 몫이기도 한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기사를 능숙하게 잘 소화하느냐에 따라 노조나 당 그리고 시민단체의 시각이 바뀔 것 같아.
장 특종 많이 하고 좋은 기사 많이 쓰려면 그 만큼 맨파워가 갖춰져야 해요. 그런데 대개 기관지들은 1명∼3명 기자가 밤낮 없이 일해 만들어낸다구요. 기자들이 기사만 쓰는 게 아니라 독자관리, 영업 별거 다 해.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매체의 파워와 질을 높이는 문제는 요원하다고 봐요. 그만큼 조직의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말로는 대안언론의 중요성을 갈파하지만 정작 주요이슈가 터지면 모조리 거대언론으로 쫓아가기 일쑤잖아. 이런 구조에서 대안언론 뿌리내리기 정말 어렵죠. ‘시민언론’ 기자는 물론 운동가들도 어떻게 하면 조·중·동에 맞선 대안언론매체를 시민의 힘으로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 맞아요. 녹색연합 안에서 『작아』는 야근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어요. 두 명이 독자관리, 주소변경, 입금확인, 전화업무, 기획, 편집 다 해. 재정업무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어요. 빚독촉은 물론 입금 언제 할 거냐는 채근전화도 하루에 몇 번씩 해야 해요. 여기에 발송도 우리 손으로 직접 하죠. 이래가지고는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성토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시민언론’의 한길에서 대안언론매체를 이끌고 가기엔 이 기자들의 어깨에 걸린 멍에(?)가 너무 무겁다. 그래도 이 길을 흔들림없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 조직과 매체의 갈 길은 서로 다르다고 봐요. 운동이 어떤 사안의 문제점에 대해 행동하는 거라면 매체는 한 걸음의 반 보 앞에서 상황은 이런 거다라고 설명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중 곁에 서서 보조를 맞추는 일인 거지요. 매체는 운동의 도구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고 봅니다. 매체는 대중과 운동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인 거죠. 그런 차원에서 대안언론을 꿈꾸는 매체들이 연대해서 할 수 있는 기획들을 만들었으면 해요. 기사제휴라도 하면 좋겠고.
오 = 사실 대안은 앞에서 다 얘기했. 다만 그걸 어떻게 실천할 거냐가 문제겠죠. 기사교류는 정말 해봅시다. 그간 지켜왔던 자기 틀을 벗어나 다른 문체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니 그거 괜찮네.
장 = 우리에게 핑크빛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대언론과 맞서 싸우고, 또 운동사회 내부의 인식을 변화시키려면 앞으로도 오랜 세월 시민언론 기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돼요. 무엇보다 대안언론매체로서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세상의 부조리와 한판 할 태세로 임해야 세상은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미 없는 군소언론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변화에 대한 대안과 새로운 담론 구성, 도발적 문제제기 등을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오늘도 우린 죽도록 일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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