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정치드라마 국민경선 계속 흥행할까
2002/2002년 05월 :
2002/04/28 00:00
이인제 사퇴이후 정치권 12월 대선으로 본격 진입
우리 정치사의 일대 실험이라 할 수 있는 국민경선이 이제 한 고비를 넘고 있다. 민주당 이인제 고문의 후보사퇴에 따라 민주당 대통령후보로는 노무현 고문이 사실상 확정되었고, 경선의 형식적 지속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단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에서도 국민경선이 시작되어 오는 5월 9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미 많은 언론들이 표현했듯이,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흥행대박’의 성과를 거두었다. 경선 초반 ‘노풍(盧風)’의 등장으로 예측불허의 접전이 전개되면서 국민들의 시선은 국민경선에 집중되었고, 주말 정치드라마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당초 기대를 넘어서는 효과였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까지 혼돈과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민주당은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되었고, 본선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현정권 아래에서의 각종 의혹사건들마저도 국민경선 기간동안만은 세간의 관심에서 뒤로 밀려나 있어야 했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경선만한 효자가 없었던 셈이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말 그대로 국민 속에서 치러질 수 있었다.
노풍의 출현도 국민경선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내 대의원들만 모여서 투표를 하는 이전 후보선출방식에서는 당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 세력이 사실상 결과를 좌지우지하곤 했다. 그러나 선거인단의 절반을 일반국민이 차지하게 되고 당내 선거인단까지도 대폭 물갈이된 상황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민경선은 민주당의 최대주주였던 동교동계의 영향력 쇠퇴를 가져왔고, 대신 그 영향력은 국민에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제 민심에 따라 당심(黨心)이 좌우되는 새로운 정당문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국민경선은 하나의 정치혁명이었다.
고질적인 흑색선전 색깔론 답습한 국민경선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내용 면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선거전이 철저한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전개됨에 따라 후보들간의 정책노선 경쟁은 실종되었고, 음모론·색깔론같은 부정적인 쟁점만이 부상하였다. ‘이념과 노선의 대결’, ‘정책검증’이라는 수사(修辭)가 따르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보면 과거의 고질적인 흑색선전과 색깔론의 방식과 수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마치 1950년대의 선거를 보고있는 느낌이었다. 국민경선이라는 훌륭한 제도를 도입하고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의 낙후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정치권 공동의 책임이 존재한다. 이념대결을 표방한 이인제 후보측이 진정한 이념과 노선의 대결보다는 과거 들추기식 공격으로 일관한 것은 너무도 구태의연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좌우논쟁도 모자라 친북논쟁으로까지 비화시키려하는 한나라당의 경우도 말할 것 없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적들이 있었기에 긴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이다. 그러나 반대로 지적할 것은 이념공격을 받는 노무현 후보측에서도 색깔론 공방을 넘어 포지티브한 정책노선 경쟁으로 전환시키는 주도적 노력이 부재했었다는 점이다. 물론 예선단계에서의 불가피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노무현 후보 자신도 방어적인 해명식의 대응을 넘어 자신의 노선을 일관되게 제시하며 정책노선간의 경쟁으로 끌고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다. 이 문제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12월 대선의 전초전, 지방선거 집중할 것
이제 민주당의 국민경선이 정리단계에 접어든 데 비해, 한나라당 국민경선은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싱거운 승부로 인해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킬 매력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회창 후보의 당내기반이 압도적이라는 현실 이외에도, 한나라당의 국민경선에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포장은 국민경선으로 되어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당내 경선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 우선적인 문제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선거인단 구성을 살펴보면 20대의 비율이 전체선거인단 구성 가운데 한자리 비율에 머무르고 있으며, 반면 40대 이상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선거인단 구성의 노령화로 인해 한나라당 국민경선은 민심을 당심으로 연결시킬 통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선거인단 모집이 기존 지구당 조직 중심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결국 순수한 의미의 일반국민 참여가 제한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는 결국 한나라당이 국민경선을 도입하는 결단을 어렵게 내렸음에도 정작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제 한나라당 경선판세가 조만간 정리되면 여야 정치권은 본격적인 본선경쟁에 나서게 될 것이다. 당장은 12월 대선의 전초전이 될 지방선거 승리에 총력을 기울이게될 것이며,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정치권의 재편을 통해 새로운 대선 판짜기가 진행될 것이다. 현재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10%대 이상의 차이로 계속 앞서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본선 결과는 예측불허이다. 계속 요동치게 될 올해 대선정국의 앞길을 생각하면 남은 8개월동안 판세가 어떻게 될지는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대선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본선경쟁과 관련해 최대 관심사는 두 가지이다.
첫째, 정계개편의 향방이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이미 개혁-수구 구도의 정계개편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 자민련 등에서는 보혁구도로의 정계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그리고 있는 정계개편의 성격과 내용이 다양하게 나타나고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양대 세력으로 재편되는 정계개편은 어떠한 형태로든 시도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후보가 정계개편의 주요 파트너로 상정했던 한나라당 개혁파 경우 민주당 중심의 정계개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막상 정계개편의 폭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다. 한나라당-자민련 등이 갖고 있는 보수연합 구상도 어느 범위로까지 확대될지 아직은 가변적이다. 정계개편이 어떠한 형태로 추진되든 간에, 이제는 밀실흥정을 통한 담합이 아니라 노선과 정책에 따른 원칙 있는 재편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풍이 가능했던 이유
둘째, 올해 대선정국에서의 최대 쟁점이 될 이념대결의 추이이다. 대선을 앞둔 정계개편은 양대 정치세력간의 이념대결을 격화시키는 구조적 환경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노선과 정책에 따라 새로운 대선질서가 형성된다면 본래적 의미의 정책노선 경쟁은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권장될 일이다. 각 후보와 정당들은 자신의 정책노선을 책임 있게 제시하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이념과 노선의 대결이 구시대적인 색깔론을 답습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최근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은 시대적 환경의 변화속에서 국민의 정치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7대3”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진보적인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대단히 높아졌고, 색깔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층이 훨씬 많은 상태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정치의식이 보다 진취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노풍’이라는 현상이 가능했던 것도 바로 이 같은 변화지향적인 국민의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어떤 후보, 어떤 정당이든 간에 대선정국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정계개편을 하든, 이념대결을 하든,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생각하며 그에 걸맞는 내용과 수준의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2002년 대선정국에서 정치권이 져야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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