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이부영 후보의 회계장부로 본 국민경선


“경선자금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당, 선관위, 후보자 상호간의 합의를 거치든지 아니면 합리적인 기준을 먼저 만들자. 그런 뒤에 공개하겠다. 국민들이 공개된 내용을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기준 없이 함부로 불쑥 내밀면 많은 혼란과 피해가 있을 수 있다. 당, 여야 정치권, 선관위 모두 합리적 기준을 만들라고 제안한다. 그러면 지나간 것이라도 소급해서 밝히겠다.”

지난 3월 24일 강원도 춘천 민주당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노무현 후보가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이하 옴부즈만)과의 회계장부공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던진 답이다. 노무현 후보는 경선 초기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선거자금의 도를 넘었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 결국 이 말뜻엔 경선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공히 경선자금의 한도를 넘었는데 본인만 “까서” 손해볼 필요 없다는 속내가 담겨 있는 것.



하루비용 468만 원선

민주당 경선후보 가운데 가장 먼저 사퇴한 김근태 의원은 지난 2월 22일부터 3월 12일까지 자신이 쓴 경선 비용을 옴부즈만에게 공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기탁금 2억5000만 원 △사무실 유지비용 1293만4680원 △후보 수행경비 등 408만3937원 △조직활동비 3050만4800원 △유세활동경비 185만2000원 △홍보비 3954만6100원. 그 가운데 조직활동비에는 지역활동가 100여 명의 활동비 2800만 원이 포함되어 있다.

김근태 의원의 회계장부에 대해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조직활동비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있어 실경비 추산 자체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경선에 출마하는 후보자가 합법적인 틀 내에서 쓸 수 있는 정치자금은 3억 원. 이중 기탁금이 2억5000만 원이다. 그러니까 경선에 나선 후보자들은 5000만 원을 가지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 지난 민주당 경선 중에 5000만 원만 가지고 선거 치른 후보자는 몇이나 될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근태 의원만 해도 기탁금을 제외하면 8892만1517원을 썼고, 전체적으로는 3억3892만1517원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도 3억 원 한도를 지키지 못했다.

김근태 후보가 공개한 회계장부 중 기탁금을 제외한 8892만1517원을 19일로 나누면 하루비용은 468만 원 꼴이 된다. 후보자 등록 마감일인 2월 22일을 기준으로 4월 28일 서울 경선일까지 한 후보가 경선 기간 중 쓰는 비용은 총 66일×468만 원=3억888만 원 꼴이 된다. 5000만 원에서 무려 2억5888만 원을 초과한 금액인 것. 정해진 금액의 총 4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가장 돈을 적게 썼을 거라고 추정되는 김근태 의원을 기준으로 뽑은 것이니 사실상 다른 경선 후보들의 경우는 이를 훨씬 웃도는 수준에서 경선 금액이 지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처럼 전체 선거비용 중 기탁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오히려 불법선거자금의 유입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규정된 5000만 원 이외에 쓰여지는 그 어떤 불법자금에 대해 당 선관위는 물론 중앙선관위는 알지도 못할 뿐더러 제지할 근거와 명분이 없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게 뿌려지는 음성정치자금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당사자와 회계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선거비용 중 과도한 기탁금의 비중을 낮추고 선거공영제를 채택하자는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 제도야말로 불법선거자금의 흐름을 차단하고, 돈 안 쓰는 선거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 국민경선의 경우에도 경선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후보자들은 옴부즈만과 ‘회계장부를 공개하겠다’는 약속만 할 뿐 실질적인 장부는 넘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시민단체가 후보자의 선거자금 사용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할 권한은 없다. 사실상 후보자들은 옴부즈만에게 회계장부를 공개할 뜻이 없어 보인다. 시민도 언론도 왜 공개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는다. 문제는 유권자가 돈이나 부정선거행위 등으로 ‘선택’을 방해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한 논쟁과 정책 대결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점이랄 수 있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의 말이다.

후보자들이 회계장부 공개를 꺼리는 이유

김근태 의원에 이어 한나라당 이부영 후보는 4월 11일 그 동안 사용한 경선비용을 공개하면서 “깨끗한 정치를 위해 경선비용을 1주일 단위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부영 후보는 이와 동시에 옴부즈만이 제안한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를 위한 국민과의 약속’에 서약해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줬다.

이 후보는 후보등록일인 5일부터 10일까지 총 2억9890만 원을 썼다. 기탁금 2억 원, 당비 1200만 원, 사무실 임대보증금 3219만 원, 홍보물 제작ㆍ발송비 4018만 원, 식비 등 활동비 1615만 원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를 개인신용대출과 차입금, 미주후원회 후원금 등으로 충당했으며 후원회 모금을 통해 차입금을 상환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의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타 후보들은 공개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선이 민주당에 비해 치열하지 않은 것을 고려할 때 김근태 후보와 경선비용을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 후보의 경우에도 활동비란 매우 애매한 항목이다.

국민들은 사무실 임대료 등의 형식적인 비용을 궁금해하는 게 아니다. 각 지역에 흩어진 조직이 시민들에게 직접 쓰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돈을 쓰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지도 밝혀야 한다.

각 후보가 경선자금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경선이 어떠한 규모의 자금으로 움직이는지 파악할 수 없다. 국민들은 이 어마어마한 경선레이스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자들은 공개를 꺼리는 것. 그 이유에 대한 참여연대 김박태식 의정감시센터 간사의 분석이다.

“정치자금법이 전반적으로 손질되면 후보자들의 태도도 변화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현행법상으로는 불법선거자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니 대통령 후보선출 국민경선에 출마하는 그 어떤 후보가 ‘나는 부정을 저질렀소’하고 고백할 수 있겠나. 특히나 후보자 모두 ‘공범의식’이 있는 형편에서 출발부터 ‘불법’ 딱지를 붙여 국민들에게 감표 요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식도 팽배할 것이다. 후보자들의 이런 형편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당초 시민단체와 회계장부를 약속하겠다고 했다면 신의를 먹고사는 정치인의 도리로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불법선거자금의 흐름을 차단하지 않고 나몰라라 하는 당 선관위나 정치개혁특위 등 정치권 전반이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이를 방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 2월 28일 민주당 경선출마자 7인은 모두 회계장부 공개에 서약했다. 그러나 경선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지금, 김근태 의원을 제외한 그 어떤 후보도 회계장부를 주지 않고 있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경선과정에서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나선 후보자들의 약속이행은 사실상 국민과의 약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선출 후보자 국민경선에서부터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대통령 후보를 우린 어떻게 신뢰하고 따라야 하는지 사실 답이 안 나온다. 이 점을 경선후보들은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2/04/28 00:00 2002/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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