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작은기업 잉게노스.NGO.자치주의 공동체 만들기
지난 3월초 동 알프스 자락에 있는 인구 800만의 작은 나라, 8개의 나라가 에워싸고 있는 중 남부유럽의 가톨릭국가인 오스트리아를 찾았다. 1990년이래 지난 12년간 나는 대 여섯 차례 오스트리아를 방문할 수 있었다. 살고 있는 땅이 답답하여 숨막힐 지경에 이르러 탈출구를 찾던 중 한국가톨릭사회교육협회 소속의 기관들이 오스트리아 방문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의 가톨릭 사제와 여성들이 설립한 단체들인 안양근로자회관(현 안양전진상복지관), 대구근로자회관, 마산가톨릭여성회관, 창원사회교육회관 등이 중심이 되어 독일어권의 사회교육기관들을 둘러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오스트리아의 남동부에 위치한 스티리아(Styria)도의 수도 그라츠(Graz)였다. 9개의 독립된 자치주 중에서 녹색을 자랑하는 스티리아의 여름은 막힌 숨을 푸는데 참으로 적합한 곳이었다. 잘 자란 나무가 빼곡한 숲과 양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가롭게 풀을 뜯는 초원, 끝없이 펼쳐진 포도농장을 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바로 이런 곳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온화한 기온과 적당하게 내리는 비로 늘 싱싱한 자연은 부럽기 그지없었다. 사람들도 여유 있는 모습으로 손님들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짬짬이 포도주를 홀짝이며 유럽의 사회교육과 정치, 교회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관한 세미나를 가졌다. 방문지 중의 하나인 오스트리아 국민당에서 운영하는 성인교육기관, 요세프 크라이너(Josef Krainer)센터에서 접한 감마모델(GAMMA-Model ; 총체적인 마케팅 경영모델)과 인연이 되어 이후 감마를 가르칠 수 있는 트레이너가 되었다.

감마트레이너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된 이후 여러 차례 그라츠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주로 자연과 거대한 성당에 매료되었으나 차츰 사람을 사귀게 되면서 오스트리아는 자꾸 가고 싶고 그리운 곳이 되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곳에 있기에 그랬던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감마모델의 창시자인 루드비히 카퍼(Ludwig Kapfedr)와 그의 동료들이었으며 또한 교육이 있을 때마다 통역을 맡아준 박기홍 신부(본명 Josef Platzer)였다. 사제가 되자마자 한국으로 가야 할 것 같아 한국에 왔다는 사람, 한국생활 30년 동안 여러 사회교육기관을 짓고 사회교육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던 신부님은 한국에서 은퇴한 뒤 고향 그라츠에 돌아와 지금은 작은 성당을 맡고 있다.

환상의 팀워크, 잉게노스 사람들

트램(긴 전철버스)이나 버스, 혹은 기차를 타고 각 기관을 방문하면서 워크숍을 가졌다. 교육기관, NGO, 행정기관, 종교기관, 사설 박물관과 언론기관들을 둘러보았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곳은 교육기관이나 NGO가 아니라 잉게노스(Ingenos)라는 작은 기업이었다. 함께 간 일행 모두가 마음에 들어한 곳으로서 그곳의 일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리와 비영리의 복합체가 잉게노스였다. 감마 내용을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기에 모든 참가자들이 한 목소리로 극찬을 하였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직장의 개념은 희미해지고 있다. 일터 보다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고 각자 정체성을 찾고 있었다. 일과 삶의 분리보다 통합을 지향하고 있었다. 잉게노스는 귀담아 듣고 눈여겨볼 만한 많은 요소들을 안고 있는 매력적인 조직으로 그라츠에서 버스로 한시간 쯤 되는 거리에 있었다. 도시 전체가 태양에너지를 활용해 가로등이나 가정용 전기를 공급하고 있었으며 곳곳에 태양에너지를 모으기 위한 장치들이 조각품들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한적한 작은 마을에 자리한 잉게노스는 네 명의 전문가들의 발의로 시작되었으며 이들을 돕는 루드비히 카퍼는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다. 건축가, 물 전문가, 프로젝트 기획가, 엔지니어가 한 팀을 이루게 된 것은 자신들의 고객이 같은 사람들이며 같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경쟁은 의미가 없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한데 모아 고객들을 총체적으로 만족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2년 전부터 지금의 건물을 지어 사업을 함께 꾸렸는데 현재는 45명이 같이 일하고 있다. 배우자들도 행정이나 사무적인 일을 맡고 있으며, 출근은 아침 6시 30분부터 8시 30분 사이에 할 수 있다. 여성들은 대개 오후 2시나 3시쯤 일을 마친다. 오스트리아인들의 퇴근 시간은 보통 오후 4시라고 한다. ‘그렇게 일찍 퇴근을 하면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냐’는 우리 일행의 질문에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가족들과 오락도 하고…’라며 오스트리아 남성들이 수줍게 말끝을 흐린다.

한국인 감마 트레이너들에게 네 명의 잉게노스 대표들은 각자 맡은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 중에 특히 물 전문가인 자흐(Zach)는 물에 대한 자신의 신념, 즉 물은 절대로 돈을 벌기 위한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자원으로서의 물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지 이것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몇 년전부터 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민영화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물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고 물은 상품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가진 국민들이 민영화를 강하게 반대한다고 한다. 물론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스트리아가 아닌 외부인들이라고 한다. 이런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물에 대한 책임을 주민들이 같이 지고 물 사용에 대하여 같이 결정을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자흐는 물 저장고를 짓는다. 큰 회사에 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해 물 저장고를 어떻게 짓는지 결정하고, 물 보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업의 기술과 힘을 빌려야 하지만 기업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주민들이 막고 있다는 것이다. 자흐는 언덕처럼 보이는 물 저장고를 보여주면서 물은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였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호에니그(Hoenig) 박사는 펠드바흐(Feldbach)라는 지역을 재구성하기 위해 네 명이 15년째 같이 하고 있는 작업을 소개하였다. 도시개발이 그렇게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만큼 그들이 해온 일들은 이상적으로 보였다.

펠드바흐의 ‘미국화’ 막기 운동

인구 6만 명의 작은 농촌 도시 펠드바흐는 포도밭을 늘리는 농부들로 인해 숲은 베어져나가고 자연은 파괴되고 있었다. 이 고장의 자랑거리인 오래된 농가들은 이농현상과 함께 도시인들에게 팔려 제각기 다른 용도로 다시 지어지고 있었다. 주민은 줄어들고 마을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새로 이사해오는 주민들이 캡슐형 건축을 하면서 마을은 균형미를 잃어가고 있었으며 새로운 집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위성안테나가 설치되면서 이웃 사이도 소원해지고 있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잃어버린 현상을 오스트리아에서는 ‘미국화’라고 부른다. 미국화 현상을 막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은 무엇인가 해야 했다.

이 도시를 흔히 말하는 재개발하기 위하여 잉게노스 팀은 먼저 그 지역에 어떤 문화적인 특성이 있는지를 살피는 일에 들어갔다. 자연과 문화적인 유산을 살펴보고 지역주민들이 지닌 잠재력을 파악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본으로 하고, 오래된 농가와 포도농사 그리고 800년 전에 화산이 폭발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참고로 하여 마을 설계를 시작하였다. 이들의 기본 자세는 밖에서 무엇을(자본이나 아이디어 등) 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있는 것을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투자를 하게 되면 5년이 못가 얻을 것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이들은 철저하게 지속가능한 계획(Sustainable Planning)을 하게 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정부와 유럽연합(EU)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농부들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기에 지역의 정치인과 마을사람들을 포함시켜 작업을 같이 할 팀을 꾸렸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반대를 한 것은 마을주민이었다. 그들의 태도는 한마디로 ‘너희가 와서 다 해주어라. 우리는 그냥 있을게’였다. 눈 앞의 이익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해 같이 계획을 세우고 그들의 욕구를 파악했다. 지역주민들의 소망과 상상력, 환타지에서 구체적인 모티브를 끌어내고 지역의 읍장과 인사들이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지역의 혁신은 곧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고 설정하고, 집을 지어도 주차장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자리를 먼저 생각하며 개념을 잡아갔다. 주택을 듬성듬성 떨어뜨려 짓는 것이 아니라 연결해서 개인 영역을 최대한 줄이고 공유 면적은 넓혔다. 아이들과 부모들, 노인들과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들이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도록 하였다. 공동수영장과 공원을 만들어 공동체적 의사소통을 하면서 반대하는 이들의 생각을 바꿔나갔다.

화산 햄과 소시지, 그리고 빵

이렇게 해서, 모여들기 시작한 농부들이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여 화산의 이미지를 살린 햄과 소시지를 만들어냈다. 이 지역 특산의 술과 초콜릿 등을 만들어 수입은 직접 생산자들과 농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관광객들을 위하여 화산폭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원도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들이 참여하여 특산품을 결정하는 등 동네를 운영하는데 있어 주민들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읍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을 여기 저기에 물 저장고를 만드는데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동산인지, 물 저장고인지 구별할 수 없게 꾸몄다. 이렇게 이 마을의 재구조화 계획은 15년이란 세월을 두고 이루어져 왔고 이어져 가고 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호흡을 맞춰온 그들의 아름다운 팀워크는 주민 참여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읍장의 결단과 지지도 한몫을 하였다. 호에니그 박사는 좋은 읍장을 선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거센 자본의 위력을 막아내는 데 있어 주민들의 참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잉게노스 대표들의 설명을 들은 뒤 잘 보존된 숲 가까이에 시범적으로 지은 공동체형 공동주택을 돌아 볼 수 있었다. 펠드바흐에서 온 화산 햄과 소시지, 빵으로 점심식사를 한 뒤 잉게노스를 떠났다.

스티리아(Styria) 사람들은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다. 여성 도지사는 도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우리가 방문한 여러 작은 읍의 장들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주류화 현상을 가는 곳마다 확인할 수 있었다. 스티리아 사람들은 풍부한 물과 아름다운 숲, 맑은 하늘과 뛰어난 문화유산을 자랑하였다. 그들은 장애인,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어떻게 잘 살아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자랑하고 싶은 것의 우선 순위가 다르고 또 자랑할 거리가 많다는 건 부러움을 살 만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는 조용한 숲의 도시 그라츠와 오스트리아에서 한 달 동안 우리 모두는 그 사회의 구성원처럼 편안하게 지내고 돌아왔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조국으로.

이금연 안양전진상복지관장, AFI
2002/04/28 00:00 2002/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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