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진보에서 열린 진보로
2002/2002년 05월 :
2002/04/28 00:00
국내 첫 진보진영 사회포럼 연대와 성찰 참가기
민중운동 진영은 노동자를 거리로 내모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침묵하는 시민단체들에 불만을 토해냈고, 시민운동 진영은 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에 앞장설 것을 요구했다. “연대와 성찰 : 사회포럼 2002”에서는 이처럼 치열한 논의들이 오갔다.
대회 첫날부터 쟁점 뚜렷
유난히도 심한 황사로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던 3월 22일 아침. 연대와 성찰 포럼 참가자들을 태운 차는 서울을 떠나 오후 12시 50분 경 행사가 열리는 충남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 도착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수련원은 깨끗하고 쾌적했지만, 국제회의장의 배치에는 권위주의적 요소가 다소 배어 있어 ‘열린 토론의 장’으로서는 부적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도착 후 짐 풀어놓을 시간도 없이 오후 1시부터 진행된 개회식에서는 송두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이 개회선언을 하고 김윤자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 공동의장이 대회관련 경과보고 및 대회 취지를 설명했다.
개회식에 이어진 전체토론 1에서는 ‘한국사회운동의 성찰과 과제’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 날은 첫 번째 토론에서부터 공공성의 개념을 놓고 노동운동진영과 환경운동진영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토론자로 나선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국가가 운영한다고 공공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발전, 수자원 공사 등과 같은 곳은 국가소유이면서도 가장 반환경적”이라고 주장해 노동진영과 공공성의 개념에서 차이가 있음을 보였다. 토론자들은 또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했으나 신자유주의의 정체와 대응방법에서는 각 진영, 단체간에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또 여성연합의 정현백 공동대표는 진보진영에서 여성문제를 장애인, 외국인 등 소수인권문제와 동등한 차원에서 거론하는 데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첫날 전체토론에서부터 각 단체들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었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포럼기간동안 원활한 토론을 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게 했다. 성공회대 사회학부 조희연 교수는 “진보진영이 서로간의 차이를 확인하고,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연대를 모색하는 ‘열린 진보’를 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 내부문제 공론화
민주노총 등 민중운동 진영과 환경, 여성, 언론 등 시민운동 진영의 입장이 날카롭게 맞섰던 첫날처럼 23, 24일에도 각 단체 및 인사들의 의견은 많이 엇갈렸다. ‘표현의 자유와 진보의 정치’란 주제로 열린 부문별 토론에서 참교육학부모회의 한 회원은 청소년 보호법을 옹호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혀 문화연대 회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공무원노조와 교수노조의 출범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조가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나왔다.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김동민 한일장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개혁문제는 모든 사회개혁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 데 비해 다른 시민단체들은 운동에 있어 언론의 활용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청년연합회 활동가 유정 씨(27세)는 “성매매에 대한 토론을 통해 사회진보운동에 몸을 담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남성들이 전근대적인 성관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확인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 사회포럼은 그동안 쌓여온 진보진영내의 문제들을 공론화 시키고 다양한 목소리와 이해관계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하지만 자기 주장에는 적극적이었던 반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열린 자세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포럼을 마치고 발전노조 민주노총과 환경연합이 “정부의 전력산업 민영화 방침에 반대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친화적인 전력산업으로의 구조개편을 할 것”을 요지로 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는 등 연대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다른 분야에서는 대부분 접점을 찾지 못했다.
또 포럼이 처음으로 열리고 준비기간이 부족한 탓에 곳곳에서 운영의 미숙함이 보였다. 발제문이나 토론문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며, 발언시간 배정이 치밀하지 않아 토론의 효율성을 해치기도 했다. 토론자의 준비가 부족해 토론이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많았다. 발전노동자 파업의 계속으로 노동자 대표들이 많이 참석치 못한 것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차이 넘어 연대로
비록 실천적 연대를 모색하는 데 부족했다 하더라도, 이번 포럼은 그동안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단체와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기선미 정책부장은 “지역 이슈를 포괄할 수 있는 주제가 없었고, 쟁점토론 시간이 짧아 쟁점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끝나버렸다”고 지적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이번 포럼은 운동권 모임이라면 너무 번거롭고, 운동권을 넘어선 모임이라면 너무 제한적이었다”며 “운동의 폭을 넓히고 대중적 대안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김윤자 한신대 교수는 “참석했던 활동가들이 진보진영사이에 놓인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여러 목소리를 들으면서 해결해야 할 숙제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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