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 눈치보기였나, 뉴스가치 없었나
2002/2002년 05월 :
2002/04/28 00:00
언론의 삼성생명 불법영업 보도 외면
시민단체와 언론은 그 기능이 비슷하다. 사회환경을 감시하고 의제를 설정하며, 사회 각 쟁점에 대한 여론을 모은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회사 이익을 좇아 지면을 사유화하고 있다. 결국 그것은 사회 진보와 개혁의 발목을 잡고, 시민사회의 굴절로 귀결되고 있다.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언론이 영향력을 갖고, 대안언론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본지는 이 지면을 통해 기득권 언론에서 NGO관련 보도가 어떻게 축소 왜곡되는지, 사회의제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돌아본다. 편집자 주
한국 신문에서 보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은? 당연히 ‘독자’여야겠지만, 그건 항상 말뿐이었다. 그렇다면 정치권력인가?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조선·동아 간 충돌이나, 언론세무조사 정국에서 족벌신문들이 정부와 벌인 ‘전쟁’을 보면 언론이 정치권력에 종속됐다는 것은 옛말이다. 요즘은 ‘광고주’가 보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기자들 생각도 같다.
신문 기자들은 편집권 독립의 걸림돌로 사주와 경영진 다음으로 광고주를 꼽고 있다. 신문사 내부에선 사주와 경영진이 보도에 간섭하고 있다면, 외부에선 광고를 매개로 기업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기자협회 2000년 4월 서울지역 신문기자 설문조사. ‘보도에 영향력 행사 집단’ 물음에 ‘광고주’라는 대답이 20.9%, ‘정치권력’이 8.7%였다).
‘삼성’이 빼달라면 언론사는 거절하기 어렵다
이윤을 추구하는 신문사들로서는 광고주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이는 방송도 마찬가지다). 한국 신문은 매출에서 판매수익 대 광고수익 비율은 2 대 8(최근에는 2 대 12) 정도이다. 이런 기형적인 수입구조에서 광고주를 조지는 기사를 싣기란 쉬운 게 아니다. 알아서 기거나 기사를 미끼로 광고수주 압력을 넣기도 한다. 간혹 기업을 비판하는 기사가 광고와 거래되기도 한다. 기업 홍보부서에선 매일 가판신문을 체크하여 자사 비판 기사가 실리면 해당 언론사에 압력이나 청탁을 행사한다. 그 결과 가판에 실린 비판 기사가 배달판에서 축소되거나 빠지기도 한다. 신문사 광고부서에서 볼멘소리를 하고, 간부와 경영진들이 ‘경영’을 들먹이게 되면 기자들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IMF를 거치면서 재계 1위의 자리에 오른 ‘삼성’은 언론사에게 최대 광고주이다. 한 신문사 논설위원은 “삼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언론사는 없을 것이다. 경영진은 물론 간부나 기자들까지 삼성 비판 기사를 빼달라는 부탁이 오면 거절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 신문사 간부의 말처럼 실제 삼성을 비판하는 내용에 대한 축소보도 논란은 심심치 않게 불거져 나왔다. YTN은 지난 3월 12일 “삼성생명이 다른 금융기관의 대출고객들의 신상정보를 빼내 자사 생활설계사들의 대출영업 정보로 불법 사용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 보도는 YTN 기자가 제보를 받아 취재한 것. 보도는 삼성생명 서울과 경기지역 영업소 보험모집인의 증언과 삼성생명이 작성했다는 고객 신상정보 문건,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대한 금감원의 입장, 신용정보 유출 피해자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YTN은 이를 오전 9시부터 보도할 예정이었으나 오후 6시에야 방송했다. 언론비평주간지 『미디어오늘』(335호. 2002. 3. 28)에 따르면 삼성에서 YTN에 보도 자제를 요청했고, 경영진이 보도를 늦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자들의 항의가 있고, 사내 공정방송위원회가 문제삼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방송됐던 것이다.
YTN 보도 이후 이 사건은 13일과 14일에 다른 언론들이 후속으로 보도했음직한 데도 어떤 언론에도 관련 보도는 없었다. 기자들이 기사 비중이 크지 않아 취재를 안 했거나, 기자들이 취재를 했으나 데스크가 기사가치가 낮다고 판단해 기사화하지 않았을 수 있다. 사건을 처음 보도한 YTN 노종면 기자는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신문과 방송사 기자들의 확인 전화가 왔었고, 보험모집인노조도 취재를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독자의 입장에서 피해자가 수만명에 이를 이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결코 적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말 다른 언론들은 뉴스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 기사화하지 않았을까?
참여연대 고발기사, 대다수 신문 보도 안해
이 사건과 관련해 참여연대는 민주노총 보험모집인노조와 함께 3월 27일 삼성생명을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법’과 ‘신용정보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그리고 4월 3일에는 남대문 상공회의소 근처에서 규탄집회를 갖고, 9일에는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하고, 11일에는 신용정보가 유출된 피해자 16명을 대리해 서울지법에 48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참여연대가 삼성생명을 고발한 27일 이 사실을 MBC와 SBS는 리포트로 전했고, KBS는 단신으로 처리했으며, 다음날 조간신문 중 『조선』, 『경향』, 『한겨레』, 『대한매일』이 이를 사회면에 기사화 했다. YTN 보도 이후 달라진 내용도 없는 사건을 시민단체가 의제로 삼자 언론들이 보도한 것이다. 그리고 기사창구도 경제부가 아닌 사회부에서 출고했고, 나머지 신문들은 이마저도 외면했다.
한편, 사회면 2단으로 기사화했던 『조선』(28일 초판 29면)과 『경향』(28일 초판 27면)은 관련 기사를 가판에 실었다가 배달판에서는 뺐다. 이 기사를 쓴 『경향』 이준호 기자는 “초판에 실린 기사가 빠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조간의 경우 오후 2시 초판 마감 후 다른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단발성 기사들은 지면에 살아남기 어렵다. 판단은 사안이 얼마나 지속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배달판에서 기사가 빠졌다고 꼭 로비가 있었다고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지면 사정상, 그리고 기사가치에 따라 가판에 실린 기사들이 축소되거나 빠지는 경우가 있다. 기사를 넣고 빼고, 키우고 줄이는 것은 언론사 편집국의 권한이다. 그 날의 지면은 사건의 비중을 고려해 담당 데스크가 결정한다.
하지만 YTN 첫 보도 당시 삼성의 보도자제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개운치 않는 여운이 남는다. 기사가치를 판단하는 데 과연 다른 이유는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참여연대에서 이 운동을 맡고 있는 박원석 국장은 “삼성에서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을 참여연대가 언론에 흘려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해왔다”고 한다. 삼성생명 홍보실은 “기업이 자사 관련 보도에 대해 언론사에 회사 입장을 설명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 아니냐”며, “이를 무조건 로비로 모는 것은 과장”이라고 밝혔다.
삼성생명 불법영업 사건에 대한 YTN 보도 다음날인 13일 신문들의 경제면에는 삼성전자 이재용 씨 등 이건희 회장 자녀들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식 전환해 수천 억의 차익을 남겼다는 보도가 일제히 실렸다. 이는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며 몇 년 전부터 끈질기게 여론화시킨 것이고, 삼성도 사회적 이목을 의식해 전격 발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보도를 보면서, 그리고 삼성생명 불법영업 보도 행태를 보면서 시민단체가 재벌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생명 불법영업 사건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와 검찰 수사, 그리고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 등 앞으로 진행과정을 언론이 어떻게 추적 보도하는지 눈여겨볼 일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시민의 권익을 지켜내는 언론’에 대한 바람은 희망사항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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