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동
서울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월드컵 경기장에 갔다. 황사가 몰려와 세상이 온통 뿌연 날이었다. 먼 곳은 아예 보이질 않고 가까운 곳도 가물가물했다. 봄날인데, 아름다운 봄날은 결코 아니었다. 황사가 아니더라도 서울에서 먼 곳을 깨끗하게 보기란 어렵다. 그렇기는 해도 내몽고의 사막에서부터 몰아쳐 온 황사는 서울을 더 끔찍한 곳으로 만들어 버린다. 서울의 봄은 이렇게 황사와 함께 황량한 모습으로 가고 마는가?

월드컵경기장 역의 정문으로 나오면 월드컵경기장의 북문을 만나게 된다. 이 역의 드나드는 곳은 독특하게 만들어졌다. 드나드는 문 자체는 지하에 있는데, 이 문을 나와서 일반인은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서, 그리고 노약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땅 위로 올라오도록 해 놓았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까닭은 이곳에 노천극장을 들여놓기 위해서다. 문을 나서면 우리는 노천극장의 무대에 들어서게 된다. 노천극장 앞으로는 계단을 이용한 자리가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다. 가운데 자리의 꼭대기에는 분수를 만들어 놓았고, 그 물은 가운데의 계단으로 흘러내리게 된다. 사람들은 그 양 옆의 자리에 앉아서 문 앞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게 된다.

이런 식의 공연장이 드물기 때문에 이런 공연장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아주 즐겁게 느껴진다. 더욱이 지하철의 드나드는 곳을 이렇게 멋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놓다니, 그 발상의 신선함에 즐거움은 한층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떠억하니 보도를 차지하고 들어서서 보행자를 괴롭히는 수많은 지하철의 입구들도 보행자들을 즐겁게 하는 곳으로 바꾸어 놓을 수는 없을까?

위에서 내려다보니 ‘청소년마당’이라고 써 놓은 검은 표석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청소년보호위원회’라고 쓰여 있다. 문화연대와 같은 단체에서는 ‘청소년통제위원회’와 비슷한 것으로 보고 있는 그 국가기구가 아닌가? 이 공연장을 만든 곳이 저 위원회인가?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만들어 놓고는 저렇게 못생기고 권위적인 표석을 세워놓아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이곳에서는 저 위원회가 지원하는 ‘청소년보호’와 관련된 공연들만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하다가는 세종문화회관 옆에 자리잡은 세종로공원의 노천극장처럼 유명무실한 문화공간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제발 부탁이니, 그 시커먼 표석 따위는 없애 버리고, 이곳을 진정으로 열린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주시라.

‘서울의 발전사’는 곧 ‘서울의 파괴사’

월드컵경기장은 아주 멋진 모습으로 거기 들어서 있다. 동쪽으로 흐르는 불광천 건너쪽은 이미 오래 전에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서서 서울의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답답한 모습이다. 하지만 불광천 서쪽에는 이제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섰을 뿐이고 그 둘레는 온통 녹색의 자연이다. 둘레가 거의 온통 녹색이라 월드컵경기장도 더 멋지게 보이는 것 같다. 불광천 저쪽이 우리가 버려야 할 서울의 과거라면, 불광천 이쪽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서울의 미래가 아닐까?

외국의 한 컨설팅 업체에서 세계의 215개 도시를 대상으로 ‘삶의 질’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2002년 3월 초에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서울은 종합순위 94위라는 비참한 성적을 받았다. 그런데 ‘환경’이라는 변수를 계산에 넣자 순위는 더 떨어져 157위라는 참담한 순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경제력이 세계 10위에 육박한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는 과연 우리의 경제력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오직 돈밖에 모르는 ‘돈벌레’로, 또 그 돈을 위해 언제나 일에 취해 있는 ‘일벌레’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서울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살아 있는 자연이다. 지금 서울에서 가장 빨리 없어지고 있는 것도 살아 있는 자연이다. 이른바 ‘서울의 발전사’는 사실 ‘서울의 파괴사’이기도 했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멋대로 파괴하고 뭉개고 없애버린 것, 그것이 ‘서울의 발전사’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의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 파괴의 역사에 하루빨리 마침표를 찍고 자연이 살아 있는 도시로 서울을 바꾸어 가는 것이야말로 죽어가는 도시 서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다.

서울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아름답고 안전하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가? 월드컵경기장의 둘레는 이 문제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서울시는 이곳에 신도시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에 따라 이곳의 경관은 앞으로 크게 바뀌게 된다. 당연히 이 곳의 자연도 크게 바뀌게 된다. 지금은 온통 녹색인 곳이지만 앞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불광천 저쪽처럼 이쪽도 몇 해 지나지 않아 고층빌딩의 숲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서울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선전하고 있지만, 결코 서울시의 선전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월드컵경기장의 북문 앞쪽으로 동산이 있다. 상암산이다. 조경과 산책로 조성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능선에 이르러 순찰로로 이어진다. 옆으로는 군부대의 담장이 보인다. 위에는 녹슨 철조망이 남아 있다. 이곳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던 곳인 모양이다. 군부대의 담장 안쪽에 있던 순찰로를 산책로로 이용해서 이 산을 둘러보게 되었다. 조금 더 가다가 아래쪽을 보니 커다란 탱크시설들이 보인다. 유류 저장소였던 모양이다.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죽어버린 난지도

소나무 가지들 사이로 월드컵경기장이 보인다. 설계자는, 아래는 ‘풍요를 담는 소반’이고 위는 ‘꿈을 날리는 방패연’이라고 설명한다. 발상도, 건축도 모두 잘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개장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구경꾼들을 모시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월드컵경기장 찾아보기 운동’이란다. 그렇지만 이런 운동이라면 신물이 난다. ‘찾아보기’는 정해진 길을 따라 늘어선 경찰들의 감시의 눈길을 느끼며 돌아보고 설명을 듣는 순서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 경기장의 설계 및 건축과정을 보여주는 방에 들어가니 정작 설계자나 건축자를 직접적으로 소개하는 자료는 하나도 없다. 그저 자화자찬하는 사진들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언제쯤이면 이런 방이 정치적 장치가 아니라 문화적 장치가 될 수 있을까? 월드컵경기장이 멋지게 지어졌다면, 그것을 설계하고 지은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감사하고 치하해야 하지 않을까?

동산 뒷편에서는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철탑 크레인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시멘트 건물들이 바쁘게 키를 높이고 있었다. 그 둘레에는 훨씬 더 넓은 땅이 대지공사를 마친 황량한 모습으로 널려 있다. 동산을 내려오니 월드컵경기장의 남문 앞을 지나는 새로 닦은 큰 길을 만나게 된다. 그 길 건너쪽에 난지천이 흐르고 있고, 그 앞으로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 우뚝 서 있다. 이제는 ‘쓰레기 산’이 되어버린 난지도이다.

지금은 이 일대에 월드컵경기장만이 들어서 있고, 또 이제는 월드컵경기장으로 가장 잘 알려지게 되었지만, 본래 이 일대에서 가장 이름난 곳은 다름 아닌 난지도이다. 그러므로 ‘월드컵경기장’역은 사실 ‘난지도’역이기도 해야 옳다. 월드컵경기장은 난지도 바로 옆에 있다. 서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었던 난지도 바로 옆에 서울을 대표하는 경기장을 세워놓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둘은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옛날만큼 아름다운 곳은 아닐지라도 겉보기에 난지도는 이제 쓰레기 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꽃들도 곳곳에 피어 있다. 그 모습이 월드컵경기장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이곳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 동안 서울에서 나온 온갖 쓰레기를 파묻은 곳이며, 그 결과 서울의 가장 변방지역이 되어 버렸던 곳이다. 크고 작은 쓰레기차들과 쓰레기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나 이곳을 드나들었다. 정작 쓰레기를 버리는 수많은 서울시민들은 이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도 이곳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난지도는 그렇게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죽어 버렸다. 서울의 발전사는 이런 죽음들로 이루어진 파괴사였다. 그러나 죽음의 땅에서도 생명은 다시금 피어난다. 서울에도 아직 희망은 살아 있다.

서울시, 생태도시로 거듭나야

난지도는 지금 한창 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윗부분에 넓은 평지가 만들어져 있는데, 바로 이 넓은 평지를 공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나무계단을 이용해서 그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차를 타고 오가며 즐겨 들었던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멀리서 보면 정말 이 계단은 하늘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난지도의 꼭대기에서 바로 하늘을 만나게 된다. 양희은의 ‘하늘’이라는 노래는 ‘하늘이 내게로 온다’는 노랫말로 시작된다. 가을에 이곳에 오르면 우리는 정말 하늘이 내게로 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의 이름은 ‘하늘공원’이다.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가슴으로 밀려드는 곳이니. 그런데 위에 올라가 보니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그렇기도 하겠지만 꽤나 어수선한 모습이다. 이런저런 길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 놓아서 놀이터처럼 만들어 놓은 것도 영 마뜩치가 않다. 그런데 빗물이 흘러갈 물길을 따로 만들어 놓은 것이나 메탄가스가 빠져나갈 ‘굴뚝’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그렇다, 이곳은 특수한 곳이다. 저런 물길과 굴뚝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곳이다. 단순히 하늘을 느끼고 한강을 굽어보는 낭만적인 공원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미친 듯한 팽창과 파괴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시민들이 이런 사실을 잊도록 하기 위해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서울시는 분명히 지나친 의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시는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을 또 하나의 ‘세계기록’을 세울 기회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산이 ‘생태공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분명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맞이하여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이곳을 서둘러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안될 말이다. 더욱이 서울시는 이곳을 서울시가 ‘생태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는 증거로 여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 공원이 조성되더라도 서울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반환경도시로 남을 것이다. 도심에 녹지공원을 만들지 않고 아무데나 고층빌딩이 들어서도록 허용하고 자동차 중심의 도시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서울시의 엽기적 작명술

난지도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에는 쓰레기처리장과 발전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월드컵경기장에 가까운 쪽이 ‘하늘공원’인데, 저 건너쪽에서는 공사차량들이 몹시 분주하다. 그곳의 이름은 ‘노을공원’이다. 근사한 이름이다. 한강의 노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팍팍 다가오지 않는가? 그러나 그곳은 ‘생태대중골프장’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곳은 골프장으로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참으로 희한하지 않은가? ‘생태대중골프장’이라니? 이 세상의 모든 골프장이 ‘반생태적 시설’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겉보기에 골프장은 아주 우아해 보인다.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은 시원하고 깨끗해 보인다. 그러나 그 겉모습은 위험천만한 속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 잔디를 기르기 위해 수십 가지의 맹독성 농약을 부지런히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반생태적 시설’에 ‘생태’라는 말을 멋대로 갖다 붙인 서울시의 엽기적인 작명술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쓰레기 매립장의 가장 큰 문제는 독한 쓰레기 썩은 물이 둘레를 더럽히는 것이다. 서울시는 난지도에서 그런 물이 새나가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골프장’을 ‘생태적 시설’이라고 주장하는 서울시가 아닌가? 도대체 누가 서울시의 주장을 말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난지도에서 쓰레기 썩은 물이 새나와 한강을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지 않았는가? 이런 판국에 골프장마저 짓는다면 더욱 더 더러운 물이 한강을 오염시키지 않겠는가? 바람이 심하게 부는 ‘하늘공원’에서 ‘생태대중골프장’을 바라보다가 바로 아래쪽의 나무들 사이에서 날아오르는 꿩을 보게 되었다. 죽음의 땅이 이렇게 되살아나고 있다. 이곳은 이렇게 생명과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부가가치형 부동산개발의 현장

월드컵과 난지도를 포함한 넓은 지역이 지금 ‘상암 밀레니엄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 계획에 비추어보자면, 월드컵경기장은 하나의 작은 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 둘레의 넓은 땅이 새로운 도시로 개발되기 때문이다. 월드컵경기장의 남쪽에는 넓은 주차장이 들어서 있지만, 그 앞으로는 ‘평화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이 들어서 있다. 가로등이 촌스러워서 그렇지 공원 자체는 난지천과 연결된 큰 연못을 들이고 멋진 친수공간을 만들어 상당히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공원은 육교로 난지도 ‘생태공원’과 연결된다. 강변북로를 지나 한강가에는 ‘한강공원’이 조성된다. 이 근처는 온통 공원 동네로 보인다.

그러나 공원들이 이 지역의 주인공은 아니다. ‘노을공원’은 이름만 공원일 뿐이고 사실은 반생태적 위락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상암산에는 ‘사이언스 파크’라는 게 들어서게 되고, 그 뒤로는 ‘디지털미디어 시티’라는 이름의 고층빌딩 떼가 들어설 모양이고, 다시 그 뒤로는 ‘친환경주거단지’가 들어서게 된단다. 환경이며 과학 따위를 요란하게 앞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까지의 전례로 보아 이곳은 이른바 ‘고부가가치형 부동산개발’의 현장이다. 이 동네의 땅값도 무척이나 올랐을 것이다. 이 곳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게 된다는 미래학적 흰소리는 그만하고 차라리 땅값이나 잘 관리하고 개발이익이나 잘 환수했으면 좋겠다. 관련 정보도 철저히 공개해서 시민의 감시를 받도록 하고.

난지도가 쓰레기산으로 죽어버리기는 했어도 이 일대는 생태적으로 건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난지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생명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고 대대적인 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이 일대는 다시금 생태적으로 큰 변화를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녹지지도에서 회색부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태’라는 이름으로 어렵게 되살아나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곳, 월드컵을 보러 올 ‘선진국’ 시민들은 이러한 공간의 진실도 보고 가게 될까?

홍성태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
2002/04/28 00:00 2002/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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