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아니면 감옥뿐일까
2002/2002년 05월 :
2002/04/28 00:00
‘군사훈련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서약을 한 지 1년 1개월, 입영일로부터는 어느덧 5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한창이다. 군사훈련 대신 스스로 선택한 사회봉사활동, 도움을 구하러 찾아갔던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어 하던 반응들, 수많은 지지 편지와 비난 여론, 1시간 전에 통보 받았던 영장실질심사, 수갑 찬 자식 앞에서 보인 어머니의 눈물, 두 차례의 유치장 경험, 불구속기소 처분과 기약 없는 재판 일정,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돌이켜보면 평범했던 젊음이 거세게 출렁였던 시간들이었다. 어찌 보면 별난 것 없는 평범한 양심인데, 그 행위는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듯 하다. 내가 돌을 던진 것인가, 자연스런 시대의 흐름인가? 분명한 것은 그 파문은 이제 겨우 시작됐을 따름이며, 가야할 길은 멀지만 ‘무엇을 향해 어떻게 가야할 것인지’는 뚜렷하다는 것이다.
나의 행위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군대라는 금기를 깨뜨린 숭고한 양심, 용기있는 결단’이라는 지지에서부터 ‘종교와 양심을 가장한 파렴치한 병역기피자’라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다분히 극단적이다. 어쩌면 이 극단적 반응은 주류질서에서 벗어나는 모든 사회적 소수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 극단은 국민의 권리와 국가에 대한 의무가 공존할 수 없는 경직된 징병제도, 즉 지나친 국가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를 비롯한 모든 대한민국의 남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군인이 되어야할 운명, 총을 들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 수백만의 사람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군인이기를, 총 들기를 거부할 사람이 없을 수 있겠는가?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전일적 징병제는 인간의 보편적 행위양식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국민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나에게는 오로지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신념을 꺾고 군사훈련을 받는 길과 양심에 따라 감옥에 가는 길. 지금껏 한국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두 가지 길만을 제시해 왔다.
그 결과 매달 2만여 명이 군에 입대하며, 월 평균 50여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은 감옥을 선택한다. 그 중 매년 300여 명은 군대에서 주검이 되고, 5000여 명은 정신질환자가 되며, 600여 명은 전과자가 된다. 이들을 두고 사회는 ‘남들 다 가고, 다 잘하는데 너는 왜…?’라며 윽박지르기만 했지 단 한번도 그들의 고뇌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본 적 있던가?
이러한 현실 앞에서도 여전히 ‘군대는 인간 만드는 곳’, ‘군 생활은 남자가 되는 과정’이라는 근거 없는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가깝다면, ‘군대나 다녀오지 뭐’, ‘죽기보다 싫어도 어쩔 수 없잖아’라는 순응과 체념은 젊은 세대에게 뿌리내린 사고체계인 듯 하다. 진정 이것은 운명과도 같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나는 스스로 떳떳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의지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국가적 이단자, 사회적 소수자는 불온한 존재로서 사회와 격리시키는 ‘배제의 형벌’만이 있을 뿐, 아직까지 ‘관용과 공존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 신념을 지키면서도 사회와 이웃의 평화와 행복을 증진하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 양심에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사회봉사의 기회, 사회참여의 길은 불가능한 것인가? ‘총 아니면 감옥’ 이외의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돌이켜보면 평범했던 젊음이 거세게 출렁였던 시간들이었다. 어찌 보면 별난 것 없는 평범한 양심인데, 그 행위는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듯 하다. 내가 돌을 던진 것인가, 자연스런 시대의 흐름인가? 분명한 것은 그 파문은 이제 겨우 시작됐을 따름이며, 가야할 길은 멀지만 ‘무엇을 향해 어떻게 가야할 것인지’는 뚜렷하다는 것이다.
나의 행위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군대라는 금기를 깨뜨린 숭고한 양심, 용기있는 결단’이라는 지지에서부터 ‘종교와 양심을 가장한 파렴치한 병역기피자’라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다분히 극단적이다. 어쩌면 이 극단적 반응은 주류질서에서 벗어나는 모든 사회적 소수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 극단은 국민의 권리와 국가에 대한 의무가 공존할 수 없는 경직된 징병제도, 즉 지나친 국가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를 비롯한 모든 대한민국의 남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군인이 되어야할 운명, 총을 들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 수백만의 사람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군인이기를, 총 들기를 거부할 사람이 없을 수 있겠는가?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전일적 징병제는 인간의 보편적 행위양식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국민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나에게는 오로지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신념을 꺾고 군사훈련을 받는 길과 양심에 따라 감옥에 가는 길. 지금껏 한국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두 가지 길만을 제시해 왔다.
그 결과 매달 2만여 명이 군에 입대하며, 월 평균 50여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은 감옥을 선택한다. 그 중 매년 300여 명은 군대에서 주검이 되고, 5000여 명은 정신질환자가 되며, 600여 명은 전과자가 된다. 이들을 두고 사회는 ‘남들 다 가고, 다 잘하는데 너는 왜…?’라며 윽박지르기만 했지 단 한번도 그들의 고뇌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본 적 있던가?
이러한 현실 앞에서도 여전히 ‘군대는 인간 만드는 곳’, ‘군 생활은 남자가 되는 과정’이라는 근거 없는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가깝다면, ‘군대나 다녀오지 뭐’, ‘죽기보다 싫어도 어쩔 수 없잖아’라는 순응과 체념은 젊은 세대에게 뿌리내린 사고체계인 듯 하다. 진정 이것은 운명과도 같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나는 스스로 떳떳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의지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국가적 이단자, 사회적 소수자는 불온한 존재로서 사회와 격리시키는 ‘배제의 형벌’만이 있을 뿐, 아직까지 ‘관용과 공존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 신념을 지키면서도 사회와 이웃의 평화와 행복을 증진하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 양심에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사회봉사의 기회, 사회참여의 길은 불가능한 것인가? ‘총 아니면 감옥’ 이외의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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