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데이트] 땀 흘리는 쾌감을 아십니까?
2002/2002년 07월 :
2002/07/02 00:00
아침마다 공 차는 김희연 vs 축구응원 좋아하는 김수현
공을 차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 없다는 김희연 씨(50세). 오늘도 축구를 하고 왔다며 연신 땀을 훔치면서 약속시간에 늦게 뛰어왔다. 매일 아침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공 차는 재미에 산다며 조기축구회 10년 경력을 늘어놓는다. 지난해까지 서울 북아현축구회 회장을 맡아 뛰었고 올해는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팔꿈치까지 찰랑거리는 긴 머리의 축구팬 김수현 씨(21세). 대학교에서 랩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축제에서 ‘보아’ 춤을 추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연습을 했다.
월드컵 축구대회 16강 경기가 열리는 첫날이라 대형화면이 설치돼 있는 약속장소에는 어느새 구경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희연 어머, 여자분이시네요. 공이나 한번 차봤어요?
김수현 (웃으며) 아니오. 그렇지만 월드컵 때문에 축구에 재미를 붙였어요. 저는 축구하는 것은 싫어해요. 우리나라 잘 하는 거 보니까 재미있더라구요.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하다니 놀랍더라구요. 이번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어디서 보셨어요?
김희연 저도 조기축구회 사람들과 모여서 봤지요. 붉은 티셔츠를 입고 젊음을 불사르면서 응원을 하는 젊은이들 보면 참 좋아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못하겠어요. 그런데 축구를 왜 안 해요? 나는 10년 전에 167㎝의 키에 몸무게가 84㎏이나 나갔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살이 빠졌어요. 축구는 운동량이 엄청나게 많아서 좋죠. 무엇보다 사람들과 같이 하는 운동이잖아요. 동네 사람들이랑 아침마다 모여서 운동하는 재미에 맛들이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김수현 저는 그게 부담스러워요. 요즘 젊은이들은 인라인스케이트 같은 혼자 할 수도 있고 둘이 할 수도 있는 그런 운동을 좋아하죠. 축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잖아요. 사실 땀 흘리는 것도 싫어요. 옷도 불편하고. 친구들은 축구는 폼이 나지 않아서 안 한다는 말도 많이 해요. 농구는 둘이 할 수 있으면서도 굉장히 멋있잖아요. 화려한 게 좋아요. 그래서 축구는 많은 친구들이 응원하면서도 직접 하지는 않아요. 응원은 물론 재밌어요. 축구 규칙도 조금씩 알 것 같고.
김희연 땀 흘리는 쾌감을 느껴봐야 해요. 축구는 열량 소비가 굉장히 많죠. 그렇게 땀 흘리고 샤워하는 기분이 좋아요. 함께 하는 게 부담스럽다구요? 30대 이상이 공을 차는 데 관심을 갖는 것은 생활의 분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나 같은 경우에는 직장이나 가정이 안정되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축구보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조기축구회에 오는 사람들도 있죠. 운동도 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진다는 게 우리 세대는 좋아요. 축구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니까. 20대들도 공 차러 가끔 오는데 우리랑 달라요. 학교 동문들이나 동아리에서 와요.
김희연 씨의 축구자랑은 계속됐다. 이마에 땀까지 흘려가며 축구의 장점과 매력을 늘어놓다 축구를 직접 해보라고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김수현 씨는 난처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20대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스포츠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운동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운동을 싫어한다. 즐겁게 응원하는 방식으로 축구를 즐기길 원한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축구를 좋아하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좋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것이 여성과 남성의 차이일까? 그러나 수많은 젊은이들이 기꺼이 ‘붉은 악마’가 되어 월드컵 열풍에 동참하고 있지만 직접 공을 차지는 않는다. 매일 아침 학교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아저씨들이다.
김수현 저희 세대는 직접 운동을 하는 것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힘들어요. 응원하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축구화도 사야 하고 어울리는 옷도 구입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운동을 하죠? 축구를 하는 시간을 아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닌가요? 운동을 즐긴다는 게 그런 의미에서 부담스러워요. 어떻게 보면 운동은 경제적 안정을 이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희연 그렇지 않아요. 운동은 부지런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전 8시에 일어나 9시까지 출근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면 6시에 저절로 일어나져요. 더구나 축구는 사람이 없으면 못하니까 새벽같이 일어나서 동네 운동장으로 가죠. 축구는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 아니에요. 다른 운동에 비해 매우 적은 돈으로 할 수 있으면서 운동량은 엄청나게 많아요. 축구를 해보세요. 요즘은 생활축구도 활성화되어 있어요. 일반인들은 생소할지 모르지만 축구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4∼5명이 하는 축구나 공 2개로 하는 축구도 많이 알려져 있어요. 언론이나 정부가 엘리트 중심으로 스포츠를 키우면 국민들은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어요.
김수현 응원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죠. 평소에는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 함께 응원을 하다 보니 할말이 생기더라구요. 가족이 손잡고 응원을 가는 모습 보면 좋지 않아요? 혼자 보는 경기는 지루하지만 함께 응원하면 스트레스도 풀리죠.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보다 훨씬 좋잖아요?
김희연 맞아요. 제 고민은 엘리트 위주로 가는 스포츠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잘하는 선수들만 키우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히딩크 감독의 몸값이 너무 비싸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렇지만 히딩크가 선수 한 명의 역량을 높이면 히딩크에게 투자한 것보다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거예요. 축구가 발전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해야 해요.
김수현 축구 국가대표팀이 선전하고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에 오르는 것은 물론 좋아요. 축구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면서요? 저는 응원을 좋아하지만 운동에 대해 그렇게 지나치게 열광하는 것도 사실 이해할 수 없어요. 자기 할 일 하면서 응원했으면 좋겠어요. 운동? 물론 좋죠. 축구 할 기회가 있으면 하겠냐고요? 글쎄요. (웃으며) 저도 아마… 시도해 볼 것 같네요.
월드컵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왔다. 태극기의 엄숙함을 친근감으로 바꾸었고 붉은색은 더이상 북한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로 뛰어나와 한데 어울렸지만 이렇다할 만한 사고도 없었다. 축구를 즐기는 방식이 다양해진 것도 수확이다. 김희연 씨 같은 사람들은 보는 축구에 머물지 말고 땀을 흘리며 몸으로 축구를 즐기자고 잡아끌 것이다. 김수현 씨처럼 제 발로 공을 차지는 않지만 즐겁게 관람하는 것도 삶
에 윤기를 더하는 방법이다. 이런 사람들도 언젠가는 새벽 운동장으로 달려나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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