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목격했다. 세네갈이 프랑스를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킨 데 이어 한국은 우승후보 중 하나인 포르투갈까지 따돌리며 16강에 올랐다. 외견상 약체로 꼽히던 나라가 강국을 물리치는 이러한 ‘이변’은 축구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국익과 국운이 걸린 국가간 협상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질 수 있다.

국제협상사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가 몰타의 협상사례다. 이름도 생소한 몰타라는 작은 나라가 영국, 이탈리아, 리비아, 소련 등 주변 열강들을 상대로 한 무용담은 우리에게 희망과 교훈을 준다.

몰타, 열강의 틈에 끼인 ‘계륵’

몰타는 지중해 중간에 있는 작은 섬나라. 5개의 섬을 다 합해도 제주도의 6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인구는 40만 명 남짓. 이탈리아에서 남쪽으로 93km, 리비아에서는 북쪽으로 320km 정도 떨어져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64년에 독립했다.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탓에 독립 후에도 영국군이 주둔했다. 상호방위-지원협정에 따른 영국의 지원금(연간 500만 파운드 : 약 93억 원) 그리고 주둔군 및 군속들의 지출로 인한 수입이 연간 국민총생산의 20% 가량 될 정도로 영국군 기지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나토의 해군본부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중해를 오가는 군함이나 상선들이 수리를 위해 정박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은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몰타에게 가장 큰 자산이었다.

그러나 핵무기와 대륙간 미사일이 발전하면서 몰타의 군사전략적 가치는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정찰기의 성능이 향상돼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지에서도 북아프리카 지역을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몰타 경제에 가장 결정적인 타격이 된 것은 1967년 수에즈운하 폐쇄였다. 지중해-홍해-인도양을 잇는 통로가 차단됨에 따라

몰타의 군사-해운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영국으로서는 몰타의 기지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정부는 우선 기지사용료의 지불방식을 바꾸는 쪽으로 협정개정을 추진했다. 그동안 지원금 중 75%는 무상공여, 25%는 차관 형식으로 지불해 왔는데, 앞으로는 그중 25%만 공여로 하고 나머지 75%는 차관으로 돌려 차후 몰타가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운하 폐쇄 이후 경제침체를 겪고 있던 몰타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국가적 난국 속에 1971년 돔 민토프(Dom Mintoff) 수상이 취임했다. 노조의 지지를 토대로 집권한 그는 주변 열강들의 몰타에 대한 이해관계를 지렛대 삼아 영국과의 협상을 주도해나갔다.

영국과 달리 다른 나토국가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자국에 인접한 몰타의 운명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국 역시 지중해에서 급격히 증강되고 있는 소련 해군력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인근 리비아에서는 1969년 가다피 대령이 집권함에 따라 미국 공군기지가 철수됐다. 가다피는 몰타가 중립적인 위치에 있기를 희망했다. 코앞에 있는 몰타가 나토 혹은 소련의 군사기지로 이용되는 것만은 막으려 했다. 60년대 이후 지중해에서의 해군활동을 강화해 온 소련은 몰타가 자신들의 세력권에 들어오기를 원했다. 이에 따라 영국 신문 『더타임스』는 “핵시대에 몰타의 전략적 가치는 거의 없으나 소련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먹기는 그렇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계륵’이었던 셈이다.

중립적 입지로 협상력 키워 국익을 4배로

민토프 수상은 ‘계륵’으로서의 몰타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며 영국에게 오히려 기지사용료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연간 500만 파운드는 몰타의 지정학적 가치에 비해 너무 적은 액수”라며 대폭 올리든지 아니면 떠나라고 요구했다. 몰타의 항만은 소련 및 아랍권 선박의 기항 및 수리를 위한 수요도 크기 때문에 영국이 떠나도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민토프 수상은 자신의 주장이 단순한 엄포만은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요구사항을 관철시켜나갔다. 수상 취임 직후 그는 미군 함정이 몰타에 들어오는 것은 몰타의 중립성을 해친다며 항만진입을 금지시켰다. 이 조치는 미국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이후 영국과의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편, 리비아가 몰타에 100만 내지 150만 파운드의 경제지원을 제공했다는 얘기가 서방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에 화가 난 영국은 몰타와의 방위협정을 중단시키고 경제지원을 끊어버렸다. 민토프 수상은 끄떡없이 러시아 및 리비아와 비공식 접촉을 계속하며 여차하면 경제적 지원선을 영국 아닌 러시아나 리비아로 돌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 기세에 놀란 영국은 앞으로 몰타에 연간 850만 파운드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단, 다른 나토국가도 같이 부담한다는 조건에서였다.

영국의 발표가 있은 직후 소련 대사가 민토프 수상을 찾았다. 소련 측은 민토프 수상이 요청하는 만큼의 경제지원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몇 시간 후 민토프 수상은 리비아로 날아갔다. 리비아 역시 몰타 측에 상당한 금액의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이스라엘과 6일 전쟁을 치른 아랍권도 몰타의 중립을 요구하며, 영국이 제시한 금액 이상의 기지사용료를 몰타 측에 제의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에 위기를 느낀 미국 등 서방진영의 압력으로 영국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기지사용료로 950만 파운드를 제공하고, 추가로 480만 달러의 개발지원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민토프 수상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요구사항을 추가로 내놓았다. 몰타의 도로·통신시설 등을 이용하는 데 따른 시설사용료 등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민토프 수상의 요구액은 1900만 파운드까지 올라갔다. 영국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지 철수에 나섰다. 그러자 민토프 수상도 강경하게 맞섰다. 영국군 기지에서 일하던 몰타 노동자들을 철수시키는 한편 소련을 끌어들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에 몸이 달아오른 것은 인접한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이었다. 두 나라 정부는 소련이 몰타에 들어오도록 해서는 결코 안 된다며 영국에 압력을 넣어 합의를 종용했다. 몰타 국민들 사이에는 수상이 너무 위험한 모험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민토프 수상은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다”며 단호한 자세를 견지했다.

결국, 영국은 민토프 수상의 능란한 협상술에 밀려 ‘굴욕적’이라 해도 좋을 최종합의문에 서명해야 했다. 영국이 부담하는 연간 기지사용료는 당초 500만 파운드에서 1450만 파운드로 세 배나 뛰었다. 아울러 몰타 측은 영국 및 나토국가들로부터 향후 7년간 700만 파운드의 개발차관을 끌어내었다. 협상과정에서 이탈리아(250만 파운드)와 리비아(150만 파운드)로부터 받아낸 지원금까지 합치면 협상 시작 당시 액수의 4배가 넘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이다.

아울러 민토프 수상은 영국 및 나토의 이러한 지원이 단지 기지사용에 대한 대가일 뿐이라고 못박아, 몰타의 중립적 입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했다. 반면 영국 및 나토가 얻은 것은 향후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함대는 몰타 항만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 정도였다.

민토프 수상이 이끈 몰타의 협상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몰타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열강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다. 그런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면서 국익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강영진 미국전문중재인, 조지메이슨대학 분쟁해결연구원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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