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로마제국

나는 목욕탕의 부연 김 속에서 자주 로마를 그려보곤 한다. 로마제국의 멸망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흔히 대중목욕탕과,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 뒤뚱거리는 탐식가들의 게걸스러운 모습과, 그리고 이것들을 배경으로 하는 문란한 성풍습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이러한 음울하고 퇴폐적인 말기증상들은 사실 현실에 대한 무기력한 체념과 좌절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결국 종교세계가 로마인들의 유일한 도피처가 되었다. 그래서 특히 기독교에 대한 집착이 팽배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기-본같은 학자는 로마문명이 쇠망하게 된 주원인을 기독교의 발흥에서 찾고 있을 정도다. 로마제국은 이렇게 침몰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 현실이 바로 이 멸망 직전의 로마제국을 연상시키지 않느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비록 시대가 다르고 비약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는 수군거림들이다.

이미 대중 속으로까지 깊숙이 파고든 사우나 문화, 왁자지껄하게 들어찬 호화음식점과 술집들,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성폭력과 범람하는 도색산업, 게다가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까지 쉽게 굽어살필 수 있도록 붉은 네온사인으로 마구 휘감아 놓은 교회의 첨탑들…. 어쨌든 비생산적인 요소들이 그토록 생산적으로 활개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전국 목욕탕 수는 대략 인구 5000명에 하나꼴이고, 식당은 인구 100명당 하나꼴로 난립해 있다. 대한민국은 가히 ‘식당 공화국’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저 몰락하는 로마제국의 거리풍경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이러한 것이 실은 21세기 초엽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기증상에 가까운 사회 풍속도가 정치의 옷을 갈아입고 출현하면 이른바 ‘권력형 비리’가 된다.

바로 이러한 권력형 부패 양상에 대한 범국민적 응징이 이번 6·13 지자체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무너졌다. 아울러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민주노동당도 통쾌하게 JP까지 제압했다. 민주노동당은 특히 광주와 전남 등지에서는 한나라당을 5∼8%까지 앞서며 명실상부한 제2당으로 급부상하기도 했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의원까지 확보하여 이젠 버젓이 국고보조까지 받는 정당이 되었다.

‘허드레 축제’

로마제국의 침몰은 결코 강 건너 등불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우리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을 찾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TV에서 방영하는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가장 즐긴다. 이 가설무대에는 오랜만에 읍내 미용실에라도 다녀왔음직한 농부의 아내도 출연하고, 일터에서 잠시 나들이 나온 듯한 더벅머리 총각도 나타난다. 이곳에는 몸으로 부딪치며 사는 사람들이 몸으로 부르는 노래와 춤이 있다. 무말랭이처럼 볼 품 없고 괄시받는 사람들끼리 한데 어울려 서로의 처지와 형편에 맞게 애환을 나누고 달래기 위해 그들은 강제동원도 없고 막걸리 선심공세도 있을 턱이 없는데 말없이 이곳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여든다.

이리 채고 저리 쫓기며 한 평생을 잡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설무대를 에워싸고, ‘이 고장의 명카수, 이 고을의 인간문화재 OOO’를 응원하기 위해 열심히 손바닥을 두들겨대는 것이다. ‘50대의 영원한 귀염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중년 양복장이의 춤과 노래도 있다. 또 75세의 할아범이 나와 ‘꼬집힌 풋사랑’을 숙연히 부른다. “땡 해도 좋응께 최선을 다해라”라는 현수막을 흔들어대는 응원단의 표정이 훈훈해서 즐겁고, “출연 직전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물론 자신만만하다”고 기염을 토하긴 했으나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땡’ 소리의 기습공격을 받고서는, 그래도 그저 씽긋 웃어버리고 마는, 생선회처럼 싱싱한 웃음이 소탈해서 좋다.

과거를 헤아릴 길 없는 81세의 할머니가 가설무대에 올라와서는 “거어친 꿈이 기이펐나”로 끝나는 ‘선구자’ 노래를 두 손을 깍지낀 채 눈물을 글썽이며 열창해서 또 듣는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운전복을 그냥 입고 돈주머니는 놓칠세라 한 손에 움켜쥔 채 무대로 뛰어오르는 택시기사도 있고, 깊숙한 돈주머니가 두 개 달린 비닐 앞치마를 걸치고 비늘처럼 번쩍거리는 이를 드러내며 등단하는 생선장수 아줌마도 있다. ‘시청 위생과 소속 청소부’라고 자기 신분을 밝힌 어떤 노인은 “타향살이 몇 해던가…”를 울부짖듯이 토해내고는 먼지 쌓인 황색 근무복을 털며 무대를 떠난다.

이 <전국노래자랑>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건너뛰기도 하고 충청도 산골에서 강원도 바닷가로 내닫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단의 쓰라림은 어김없이 찾아든다. 진도에서는 노인네들이 더덩실 춤을 추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데, 몽금포타령은 마냥 입을 다물고 있다. 언제쯤이면 황해도 사리원이나 함경북도 명천 또는 압록강 하구의 용암포쯤에서 <전국노래자랑>이 펼쳐질 수 있을지, 갯지렁이 같은 주름이 옹골차게 박힌 황토 빛 얼굴을 들고 몇몇 노인들은 간혹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북녘 땅을 촉촉한 눈길로 응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사실 이 ‘허드레 사람’들이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입을 것, 먹을 것을 장만해 주기 위해 묵묵히 땀흘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거드름 피우지 않고 공장에서건 들판에서건 과묵한 소처럼 자신의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들,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이끌어 가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부자의 쾌락은 허드레 사람의 눈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이들이 바로 그 <전국노래자랑>에서 질박한 춤과 어설프지만 멋들어진 노랫가락으로 꼭 하루 그들에게 인색하게 주어진 그 조그만 축제를 보물처럼 아끼며 즐기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성별,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뛰어넘는 한판 ‘허드레 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이러한 허드레 사람들의 수고에 보답하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번쯤이라도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의 삶과 우리가 누리는 번영을 가능케 해주는 이 소박한 ‘허드레 인간’들의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하기 위해 농촌 구석구석이나 노동현장 곳곳에 단 한번만이라도 가령 ‘문화 위문단’ 같은 것을 파견할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오호라, 정부가 바뀌어도 ‘허드레 사람’들은 바뀌지 않고 그들의 주인만 바뀔 뿐일 텐데.

허나 이른바 ‘일선장병 위문 공연단’ 같은 것은 빠짐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아울러 부유층이나 특권층을 위해서라면 정부 당국뿐만 아니라 막강한 사회단체들이 수억 원 정도 뿌리는 것쯤은 예사로 여긴다. 그래서 로얄발레단이나 베를린필하모니도 불러온다. 그리고 ‘노동자 천국’이라던 구 소련에서 볼쇼이오페라단을 모셔오기도 한다. 허나 이 모든 게 우리 허드레 무리들에게는 진열장 속의 보석에 지나지 않음에랴.

월드컵에서는 바로 이들이 붉은 악마가 되어 ‘빨갱이’ 이데올로기의 굴레조차 벗어던지며 한판 허드레 무리들의 축제를 신명나게 펼치는 것이다. 선량한 국민들이다. 나는 이들 <전국노래자랑>의 허드레 무리와 붉은 악마들에게서 민족의 저력과 민중의 자랑스러운 열정을 읽는다.

박호성 본지 편집인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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