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며 수행하며..'


작년 이맘때쯤일 게다. 미국 옥시덴탈 페트롤륨사의 석유시추사업으로 영성이 아주 뛰어난 콜롬비아 우와족이 평생 살아온 터전을 잃게 됐을 때 그들을 돕자고 나선 한 환경운동가의 강의를 들으러 불교 정토회관에 간 일이 있다.

강의가 끝난 뒤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바지를 입은 한 남자가 그 곁에 섰다. ‘뒷골목 선지식을 찾아’나선 ‘중생’들과 함께 행사마무리로 노래를 하자는 것. 첫 대면인지라 서로 생경한 처지에 노랫가락이 입 밖으로 술술 흘러나오기는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순간, 그윽한 음색의 피아노 반주가 강당을 휘감았고, 온유한 음결에 사람들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긴 밤 지새우고∼’

그는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유정길 사무국장(43세)이었다. 유정길 씨는 한국불교운동의 좌장격으로 ‘불교환경운동’ 분야에서는 법륜 스님, 유수 스님 다음으로 유명한 축에 든다. 그 명성에 불교환경운동가로 이름을 떨칠만한 그가 올해 3월 13일부터 정토회관 공양주를 자처했다. 불가에 입문한 행자가 가장 먼저 맡게 되는 밑바닥 소임 ‘밥짓고 설거지’하는 일을 도맡은 것이다. 그는 왜 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 직을 내던지고 공양주를 선택한 것일까.

너를 바꾸라

남부터미널 6번 출구에서 7분 거리에 위치한 정토회관.

선잠을 깨우는 목탁소리는 경내를 맑게 울린다. 아침 8시 32분. 3층 작은 법당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24시간 기도’를 올리는 신도가 불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리고 있다. 『한겨레』 책향기를 뒤적이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사람, 전깃불을 켜지 않은 채 책을 읽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월요일 아침, 정토회관 2층 정토공동체 사람들의 표정은 분주하지 않고 차분했으며 조용했다.

유정길 공양주는 벌써 교대 운동장을 한바탕 돌고 온 뒤였다. 8시 50분이 되자 ‘여는 모임’을 하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저마다 원하는 위치에 자유롭게 앉아 참선한다. 잠시 뒤 박수소리와 함께 하루일과의 문이 열렸다. 그들은 매일 아침을 이렇게 시작한단다. 세상을 닦기 전에 자기자신을 먼저 닦는 의식처럼 보였다.

유정길 공양주는 마음이 바쁜 모양이다. 평상시와 달리 기자도 와 있고, ‘운전자원봉사’를 해줄 여신도 둘이 1층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가락시장에 장을 보러 가는 날. 봉고차에 오르기 전에 ‘운전자원봉사’를 도와줄 두 명의 신도와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회관엔 정토회에서 일하는 40명이 공동생활을 해요. 한끼에 50∼200인, 한 주에 1000명 이상의 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보통 일은 아니죠. 후훗. 저희들은 모두 출가한 스님처럼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홍거)와 고기 먹지 않으며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전 공양주를 맡고 난 뒤에 회관에 들어와 100일간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요.”

그는 79학번이다. 대학에선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독재타도 민주쟁취’에 눈 뜬 그는 80년대 초반 야학과 노동운동으로 수배 받아 쫓기는 군사정권의 표적이 됐다. 현장에 진출해 노동운동 하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그의 생각이 변한 건 동구권의 몰락을 목격하고난 1990년대부터였다.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이고, 사회주의는 비효율적이라면 대안의 사회모델은 뭔가…. 92년 대선이 끝난 뒤 10여 년 간 해오던 활동을 정리하고 상상력을 확대시켜 자유롭게 생각했어요. 과거 운동진영엔 진리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행사하는 분위기가 많았잖아요. 맑시즘을 아는 나는 이미 하느님께 구원받았고, 맑시즘을 모르는 너희들은 모두 구원의 대상(가르쳐서 일깨워야할 대상)으로 삼는 식이었죠. 전두환이 미워서 운동 못하겠다가 아니라 함께 운동하는 네가 미워서 도저히 같이 못하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화근은 너한테 있다 그러니 ‘너를 바꾸라’는 거였지요. 우리가 해왔던 비판의식은 저항에너지였지 뭘 건설하고 창조해내는 에너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0년대 초반 학번들은 그야말로 상품가치 있는 사람들은 정치권에 가던가, 아니면 잃어버린 옛 청춘을 되돌려 받기 위해 소시민으로 살던가 둘 중 하나였죠. 거대담론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소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잖아요.”

80년대 함께 활동하던 법륜 스님은 그에게 환경문제를 중점적으로 보라고 강조했다. 당시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환경운동이란 그저 사회변혁을 본질적으로 고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무하느라 펼치는 것쯤으로 여겼다. 수질 대기오염 도 제국주의, 독재정권이 타도되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심지어 그가 환경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설파했을 때, 몇몇 후배들은 노선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떠났다. 맑시즘 이외에 다른 걸 고민하는 건 배신이라면서.

“3년간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단절기가 있었어요. 진보란 무엇인가 고민했고, 생태와 녹색의 관점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이룰 수 있는 세계시민사회운동의 이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생산력의 확대가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다 생각하게 된 거죠.”

생태와 녹색관점에서 바라보니 모든 게 다르게 보였다. 통일문제도, 노동문제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미국식 삶은 결국 근본적 차원에서 인류가 생태적 위기를 맞게 될 위험한 패턴이었다. 그는 오히려 ‘반(反)생산력주의’가 생태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은 이렇다. 첫째, 높은 생산력보다 좋은 생산력을, 둘째 높은 생산관계보다 좋은 생산관계를, 셋째 좋은 인간, 넷째 좋은 방법을 지향한다.

“노동운동은 열심히 일하고 임금 많이 받는 게 목표냐, 통일운동은 남북이 합심해 강성대국 이루는 게 목표냐, 전 그게 낡은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해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생태의 관점으로 합심하는 협동조합 같은 형태의 좋은 생산관계가 필요하고, 주체적 변화를 꾀하려는 개인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운동하다 자칫 바람들 수 있거든요. 옛날처럼 탄압을 받는 것도 아니고, 요즘 시민운동은 기실 대접받으면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더욱 바람들기 십상이죠. 운동내 ‘기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몇 번씩 운동사회의 기풍을 강조했다. 기풍을 세우지 않으면 회사와 같은 직장과 무엇이 다르냐는 게 그의 항변이다.

“지금 시민운동은 있는 걸 고치고 개선하는 정도지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나아가는 그림이 없잖아요. 넓게 얘기하면 철학이 없다는 것도 되고…. 그렇게 되면 활동가들은 고민에 빠진다고 생각해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좀 허망해질 수 있죠. 일반 직장생활 하는 사람보다 가난하다는 것 때문에 도덕성을 부여받고 그걸로 위안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에너지가 발산되도록 뭔가 지향이 뚜렷해야겠지요.”

열변을 토했다. 그동안 운동사회에 쏟아내고 싶었던 저 밑바닥의 소리가 큰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거대담론에서 깨어나 생활체계 속에서 좀 불편하더라도 작은 것을 지향하며 생태를 건강하게 보전하는 게 주효한 임무임을 몇 차례 강조했다. 수행은 몇몇 머리 깎은 중들만 하는 게 아니고 누구나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게 바로 수행인 것이라고 한다. 가부좌 틀고 고상하게 앉아 책 보는 것보다 운동가들처럼 사회의 변화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게 큰 수행이라는 것. 그래서일까. 정토회 사람들에게선 뭔가 다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첫째 함께 장 볼 때마다 배낭에서는 자루가 하나씩 나온다. 비닐 대신 그 속에 고추, 피망, 브로커리, 생강, 애호박, 느타리를 담는다. 비닐에 싸인 음식은 먹지 않는다. 시장아주머니가 깎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팽이버섯을 주는데도 끝내 사양한다. 유제품을 먹지 않기 때문에 샐러드엔 마요네즈 대신 콩을 갈아만든 샐러드유를 쓴다. 방배동 텃밭(한 불자가 빌려줌)에서 아욱, 근대, 상추 등을 길러 먹으며 꼭 필요한 것들만 산다. 음식 남고 썩혀버리는 게 공양주의 가장 큰 잘못이기 때문에 유정길 씨는 ‘냉장고 관리’에 퍽 신경을 쓴다.

가락시장에서 유정길 씨는 어느새 주부가 된다. 아주머니들에게 애교를 떨어 값을 깎기도 하고, 덤 없느냐고 능청도 떤다. 공양주의 면모가 드러나는 현장이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부터 6시까지 새벽예불을 드리고, 6시 30분에 발우공양을 해요. 먹는 것도 수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함부로 먹지 않습니다.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아 가장 먼저 김치 한 조각을 씻어 그 위에 놓습니다. 다 먹고난 뒤에 물을 약간 부어 김치로 그릇을 닦아내고 그 물을 모두 마십니다. 그러고난 뒤 밀가루를 풀어놓은 물에 한번, 맑은 물에 두번 헹구면 돼요.”

정토회관 화장실엔 휴지가 없다. 모두 뒷물로 대신한다. 모두 순환구조를 생각한 결정이다. 최근 벌이는 ‘쓰레기제로(0)운동’도 이 같은 결정에 따른 것이다. 현재 그는 도시에서 어떤 삶까지 가능한가 실험중이다. 최대한 내핍하고 소비생활은 하지 않는 채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종이, 플라스틱, 일회용품 중 가장 손쉬운 것부터 없애자고 결의했어요. 종이는 좀 어려우니까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을 없애기 시작했는데, 1년만에 1/10을 줄일 수 있었어요. 무조건 구입하지 않고, 전구도 하나씩 빼서 쓰고, 냉방은 30도 이상에서만 하고, 난방도 16도 이하로 내려갔을 때만 하구요. 문화는 익숙해지기 마련이에요. 불편한 것 참으면 금방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온통 비닐세상이었다. 그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비닐에 싼 것을 제외하면 정말 살 게 없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70년대만해도 종이봉투와 장바구니가 있었는데, 부지불식간에 우리 생활공간이 ‘비닐나라’가 돼 있는 것이다. 혹시 ‘비닐나라’를 ‘생태나라’로 바꾸기 위해 공양주를 자청한 것은 아닐까.

시지푸스의 노동

“정토회는 3년마다 보직을 내려놓습니다. 일종의 약속이죠. 연달아 두번은 할 수 있지만 세번째에는 무조건 내려놔야 해요. 이번에 저와 유수 스님, 법륜 스님이 보직을 내려놓았죠. 그동안 전 해주는 밥만 먹었는데, 이것도 다 빚이에요. 공덕을 쌓아야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밖으로 도는 일을 많이 했으니 이제 안으로 돕는 일을 하자는 취지로 한 거죠. 지금은 너도나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밀려서 잠정적으로 1년만 하기로 했어요. 공양주를 해보니까 ‘시지푸스의 노동’이 이런 거구나 느껴요. 안하면 큰일 나고, 해도 표시 안 나고, 성과도 보이는 것도 없더라구요. 대신 순환적이고 성장지향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제가 공양간 일 하겠다고 자청하니 몇몇 스님들이 아주 반가워하세요. 행자시절 공양간 일한 걸로 평생 중생활한다나요? 그만큼 수행이 많이 된다는 의미겠지요.”

그가 공양주 생활을 시작하자 정토회 사람들은 내기를 걸었다. 그의 살이 빠질 것인가. 찔 것인가. 식탐만 제외한다면 성불할 사람이니 아마 공양간에서 그가 살을 내리긴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상상을 여지없이 깨주었다. 무려 7kg감량에 성공한 것.

“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 할 때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하니까 술도 가끔 하게 되고 그랬어요. 그러나 지금은 공동생활하고, 밖에서 전혀 식사하지 않으니까…. 또 저희들 명심문엔 때 아닌 때 먹지 말라는 격문이 있거든요.”

월급여 기혼자 30만 원, 미혼자 20만 원. 그는 그 돈도 많다고 손사래친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최저생계비 이상 소비하는 건 자신에 대한 배반이라 생각하며 살았고,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지구적 보편성을 가지려면 지금보다 최저생계비를 더 내려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졸초임이 한국에선 100만 원이지만, 인도에선 4만∼5만 원 수준. 이 격차를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적게 먹고, 덜 소비하면 조금씩 그 수준을 맞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가 마지막으로 시민운동가들에게 던진 말.

“운동가 스스로 소시민적 요구에 엄살떨지 않았으면 합니다. 중견활동가들도 1세계를 둘러보며 공부할 게 아니라 제3세계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하며 몸으로 느끼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운동가는 월급쟁이가 아니에요. 열정을 회복하고 경쟁관계를 버리고 상생합시다. 밑으로 내려갑시다. 운동가로서 어떤 삶이 깊이있는 것인지 함께 토론했으면 합니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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