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사업과 냄비언론
2002/2002년 07월 :
2002/07/02 00:00
의혹 있어도 추적보도 생략...조선.동아의 친미시각 드러나
지난 5월 28일, 월드컵 개막을 며칠 앞둔 날. 모두의 관심이 이 땅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경기에 쏠려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방송뉴스도, 신문지면도 온통 월드컵 이야기 뿐이다.그런 와중에 시민단체들은 청와대 앞에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물론 이를 주목한 언론은 극히 일부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42억20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한국의 차세대전투기(F-X사업)로 미국 보잉사의 F-15K 40대를 사들이기로 한 국방부 결정에 최종 재가를 하는 날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동안 F-15K 도입승인 과정에서 평가기준 변경·조작 의혹, 미국과 군 내부의 외압설, 최규선 로비개입 의혹 등을 제기하며 반대해 왔다. 하지만 대통령은 예정대로 사업집행을 승인했고, 대부분 언론은 이 사실에 침묵했다(5월 29일 『한겨레』 사회면 1단과 MBC 단신,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만이 보도).
『프레시안』은 5월 29일 대통령 재가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신문과 방송의 태도를 꼬집었다. 비보도 원인을 한국 언론의 냄비근성으로 지적하며, 네티즌들이 제기한 광고주와 정부의 로비 의혹 등 음모론적 해석을 전했다. 반면 비보도를 한 언론사 기자들은, 대통령 재가는 절차상 요식행위로 기사가치가 없었고, F-X사업은 종결된 사안이란 반응이었다고 보도했다. 반미감정까지 불러일으키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던 F-15K 도입에 대해 언론은 제기되는 각종 의혹만 전달했을 뿐 의혹 규명을 위한 추적보도나 탐사보도는 거의 없었다. 과연 언론은 그 기능을 다한 것일까?
F-X 관련 한국언론의 친미적 보도 행태
F-X사업이 다시 논란이 된 것은 연초이다. 올 1월초 국방부는 F-X 기종을 2단계 평가방법을 통해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이 사실과 함께 국방부 평가기준이 미국 보잉사에 유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월에는 국방부가 4월중 기종 선정 방침을 밝혔고, 미국 부시 대통령 방한시 F-15 구매 압력 의혹이 제기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언론들은, 3월 2일 국방부가 F-X 기종 선정 평가기준을 변경(최하점수를 0점에서 60점으로)하여 미국 보잉 봐주기 의혹과 4일에 공군의 시험평가서 프랑스 다소사 라팔이 1위를 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그리고 공군 시험평가단 부단장 조주형 대령의 국방부 내 미국 기종 선정 압력 폭로와 구속(4월 20일 석방) 등 각종 의혹과 관련 사건들을 실었다.
지난 3월 28일, 국방부는 1단계 평가결과 F-15K와 라팔이 3% 오차범위 안에 들었다고 발표해 사실상 차세대전투기 기종으로 F-15K를 내정했다. 대부분 신문들은 29일 사설을 통해 F-15K 결정을 기정 사실화하고, △그동안 제기된 의혹 해명과 평가과정 공개 △기술이전, 절충교역 조건 등 유리한 본계약 체결 △외교적 갈등 해소 등 매끄러운 후속처리를 주문했다.
그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시중 여론에 떠밀려 잘못된 선택을 해선 안 된다”고 F-15K 반대여론을 폄하하고, 『국민일보』 역시 “여론에 휘둘려 국익을 놓쳐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군 판단이 최우선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반대여론 설득”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정치적 압력에 밀려 국민 여론에 반한 결정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며 F-15K 내정 재고를 주장하고 있다.
기종 평가과정의 불공정성과 불투명성을 한결같은 목소리로 제기하던 언론들이 국방부 내정 사실을 기점으로 입장차이를 드러냈던 것이다. 특히 『조선』과 『동아』 등은 ‘국익’을 내세워 F-15K 반대여론을 꾸짖고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 국익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서중 교수(성공회대 언론학)는 “언론들이 F-X사업에 대한 정부의 잘못은 비판하면서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미국 기종은 안 된다’고 말한 언론은 극히 일부였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 언론들은 친미적 보도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지적한다.
각종 의혹에 대한 규명활동 무관심
국방부의 F-15K 내정 후 여론의 반대는 더욱 거셌다. 시민단체들은 국방부 관계자 고발, 평가결과 공개 및 특별감사 청구, 외압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다소사도 법원에 본계약 체결중지 가처분신청을 제기(5월 30일 기각)했다.
4월 중순 최규선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최씨의 F-15K 로비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그리고 F-15K 부품수급의 문제 등도 제기됐다. 언론들도 이를 상세히 보도했으나 후속보도는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각종 게이트로 보도경쟁에 내몰리는 기자들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F-X사업은 언론에게 더 이상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4월 19일, 국방부는 정치적 고려 등을 기준으로 한 2단계 평가결과 차세대 전투기로 결국 F-15K가 선정됐음을 발표했고, 신문들은 20일치 사설에서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들은 뒤로 한 채 이후의 과제를 주문하고 있다. 신문 사설들은 △평가자료 공개 △미국과 본계약 체결시 기술이전과 부품조달 문제 해결 △외교 후유증 최소화 등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한미 우호관계의 중요성”을 여전히 언급하고 있다. 반면 『한겨레』만이 “결정 철회”를 요구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20일 이후 언론에서 F-X사업 관련 기사는 보도량 면에서 급격히 줄었다. 언론들이 주장했던 국민 의혹 해소와 평가자료 공개도 흐지부지됐다. 국방부는 5월 20일 보잉과 추가협상으로 ‘2억 달러 인하를 합의했다’고 선전했으나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결과는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5월 22일 『한겨레』는 F-15K 가격인하는 환율 눈속임이란 기사를 실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언론들은 탐사보도나 추적보도를 하지 않은 것인가. F-X 보도만 놓고 따지자면 시기적으로 게이트 정국과 월드컵 등 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건들과 맞물려 있었다는 상황적인 측면도 있지만, 구조적인 한계도 있다.
한국의 언론들은 대부분 정보를 출입처에서 얻는다. 출입처에서 나오는 정보를 받아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출입처에 대한 비판도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또 순환보직제로 기자들은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여론이 들끓으면 일제히 보도를 쏟아내다가도 어느 순간 똑같이 외면해 버린다. 그 보도들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래서 한국언론을 가리켜 떼거리저널리즘, 냄비저널리즘이라고 비판한다.
F-X사업은 올해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다. 한국 무기체계의 대미 종속 문제도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또 율곡비리를 거치며 무기구매에 로비 고리를 근절하자는 목소리도 높여왔다. 물론 F-X사업시 공개입찰방식과 절충교역방법 도입 등 결정과정이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형무기사업들은 ‘군사기밀’이란 족쇄에 묶여 국민들의 알권리가 제한당하고 있다. 적어도 언론은 사업추진 과정에서 감시견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고, 사업추진 이전에 이런 고가의 무기사업이 꼭 필요한지 국민의 공론장 역할을 했어야 했다.
F-X사업은 끝난 게 아니다. 제2, 제3의 대형무기 구매사업들이 또 예정되어 있다. 최근에는 차기구축함 사업에 참여한 유럽업체가 또다시 불공정 시비를 제기하며 불참 의사를 비쳤다고 한다. F-X사업에 참여했던 프랑스 다소사는 철수하면서 “한국의 무기시장은 미국의 개인 사냥터”라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의혹은 덮어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다. 국민 여론과 진실 찾기를 외면한 언론. 이번 F-X보도에 대해 언론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되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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