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배제운동협의체 형사소송법 개정안 제출


지난 6월 1일 서울지방 검찰청은 1월 30일 인권운동사랑방 등 6개 단체가 장세동을 수지 김 간첩조작 사건 및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을 통보한 바 있다. 고발 당시부터 인권사회단체들이 예상한 바였지만 그들은 줄곧 장세동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논지했다.

반인도적 국가범죄와 공소시효

수지 김(김옥분 씨) 간첩조작 사건을 비롯한 이근안 사건, 청송교도소의 박영두 씨 고문치사,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의 삼청교육대 사건 그리고 지난 5월 27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최종길 교수 타살 등은 모두 국가기관 혹은 그 종사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고문, 조작 및 은폐사건들이다. 이러한 국가기관 혹은 관계자들이 시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거나 이를 조작하고 은폐하는 행위는 반인도적 국가범죄라 할 수 있다. 국제법적으로도 반인도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의 개념은 이미 확립되어 있다. 1998년 ‘로마회의’가 ‘국제상설형사재판소’를 규정, 제7조에서 채택한 개념으로는 민간인에 대한 광범한 또는 체계적인 공격으로 범해진 살인, 말살, 노예화, 강제이주, 국제법의 근본원칙에 위반되는 구금이나 심각한 신체자유의 박탈, 고문, 강간, 성노예화, 강제된 매춘과 임신, 기타 이에 비견되는 비중을 가진 성적폭력, 강제납치, 아파르트헤이트, 기타 신체에 심대한 고통을 주기 위해 고의로 범해지는 비인도적 행위 등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경우 군부독재라는 정치상황으로 인해 국제법의 개념과 동일한 범죄를 적용하기보다는 앞에서 언급한 개별사례를 반인도적 범죄로 간주했다. 조국 교수(서울대 법대)는 반인도적 국가범죄의 개념보다는 ‘반인권적 국가범죄(state crime against human rights)’의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는 이를 국가권력의 종사자가 헌법과 법률에 반해 시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거나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 조작한 행위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소시효란 범죄행위가 종료된 이후 공소제기 없이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공소권이 소멸하는 제도이다. 공소시효는 범행 후 장기간이 경과하면 증거가 멸실되어 진실발견이 어렵고 범죄행위로 초래된 사회질서의 파괴가 상당히 회복되고 범죄인 자신도 형벌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았으며 범인의 법적, 사회적 안정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반인도적 국가범죄의 경우 범행 후 장기간이 경과하였으나 증거가 엄존하고 범죄에 대한 사회적 처벌 욕구 또한 강하게 남아 있으며 국가기관에 의한 행위이기 때문에 진실을 밝혀내기 어려운 조건들이 수반되어 왔다. 따라서 반인도적 국가범죄의 경우 일반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근거를 그대로 차용할 수 없음은 분명한 것이다.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 배제는 국제적 추세

국제적으로는 1946년 ‘뉘렌버그 헌장’, 1993년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소 규정’, 1994년 ‘르완다 전범재판소 규정’, 1998년 ‘국제상설형사재판소를 위한 규정’ 등을 통해서 대량학살 및 전쟁범죄 등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해 왔다. 공소시효 배제에 있어 또 하나의 장벽은 ‘소급효금지’의 원칙이다. 이른바 입법 이전의 범죄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행위 당시 행위자의 모든 판단과 신뢰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안전 및 법적 생활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보호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판단과 신뢰에 한해 보호하는 것이다.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당연히 형벌을 면제받는 것이라는 신뢰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보호받아야 하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 ‘헌정질서파괴범죄’와 ‘집단살해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별법’과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을 입법화한 선례가 있다. 당시 5·18특별법의 제2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합헌판정을 낸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진정소급입법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법을 변경하여야 할 공익적 필요는 심히 중대한 반면에 그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어 개인의 신뢰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독일의 경우 1946년 제정된 헤센 주의 ‘나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과 함께 1993년 제정한 ‘독일통일사회당의불법행위에대한시효정지법’이 존재하고 있다. 국제법상으로는 1968년 유엔총회에서 ‘전쟁범죄와반인도적범죄에대한시효부적용에관한협약’을 채택하였고 1974년 유럽의회도 같은 내용의 협약을 채택한 바 있다. 이렇게 반인도적 범죄 혹은 반인도적 국가범죄에 대해 시효를 배제 또는 정지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인 것이다.

한국정부 ‘국제형사재판소규정’ 비준해야

수지 김 간첩조작 은폐사건을 계기로 13개 인권사회단체들은 ‘반인도적 국가범죄 공소시효 배제운동 사회단체협의회’(이하 공소시효 배제운동협의체)를 구성하고 장세동에 대한 형사고발 및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으며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지난 3월 8일부터 4월 26일까지는 공소시효 배제운동협의체 활동가들과 유가족들이 일주일에 한차례씩 가두서명운동을 전개, 총 2884명의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았으며 반인도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에 대한 대중적인 문제제기를 시도하였다. 또한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최종길 교수의 타살발표에 즈음하여 관련자 처벌촉구와 공소시효 배제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공소시효 배제운동협의체는 지난 5월 21일 ‘반인도적범죄등의시효등에관한특례법(안)’을 국회에 입법 청원하였으며, 한나라당의 이주영 의원은 5월 24일 공소시효 배제를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중개정법률안’을 의원 발의한 상태다. 이렇게 공소시효 배제입법에 대한 요구들이 더이상 머뭇거릴 수 없는 상태이고 인권사회단체들뿐만 아니라 제도권 정치권에서도 이런 요구들을 받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사회단체들과 제도정치권은 공소시효 배제입법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과 관련해서는 소급입법과 민사시효 문제 등에 대해 시각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이주영 의원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경우 반인도적 국가범죄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고 소급입법에 대한 입장도 부정적이다. 이런 부분들은 차후 인권사회단체들과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조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공소시효 배제운동 자체가 법리적인 부분에서 논쟁이 발생하고 개별사안의 진상이 규명될 때에 한해서만 국민들의 주목을 받는 등 대중적으로 전개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소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공소시효 배제운동협의체 내에서 필요할 것이다. 최근 공소시효 배제와 관련하여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국제상설형사재판소를 위한 규정’을 통해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배제를 명문화한 것이다.

4월 현재 60개국이 비준하여 오는 7월경부터 효력을 발생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3월 서명하였으나 현재 미비준 상태다. 물론 조약 발효 이후의 범죄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국내법과 국제법과의 보충적 관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반인도적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입법운동을,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한국 정부의 비준을 촉구하는 비준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는 반드시 법적인 처벌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시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전김명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외협력간사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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