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개혁, 풀뿌리민주주의의 기본
2002/2002년 07월 :
2002/07/02 00:00
일본 참가형시스템연구소장 요코다 카쓰미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주었다.-프루스트의 ‘걸어보지 못한 길’에서.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은 때로 두렵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로의 여행은 두렵기보다는 친근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습에 묻혀 있던 자신의 삶을 혁신하는 일은 귀찮게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귀찮은 만큼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은 더 클 수도 있다. 그렇기에 풀뿌리 민주주의는 자생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삶터에서 대안적인 삶의 다양한 계기를 만들어내는 운동,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다. 그것은 삶에 활기를 북돋워준다.
풀뿌리민주주의가 지방자치의 원동력
“정치란 생활용구가 되어야 한다”고 30여 년간 주장해 온 사람이 있다. 요코다 카쓰미 씨(橫田克己)는 대안적 삶의 계기를 생활현장 속에 만들어내는 ‘생활용구’가 바로 정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현실 속에서 증명해 보였다. 일본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생활클럽운동’이 그것이다. 그는 현재 운동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참가형시스템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그의 말은 어려운 것으로 소문나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불평의 소리가 적지 않다. 언젠가, 술좌석에서 그의 옆에 앉을 기회가 있었다.
“나 선생, 인터뷰하러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당신 고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말씀인지요?”
“운동하는 사람들은 운명적으로 경험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론보다는 행동이 앞서게 마련입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활동가가 아니라 인텔리겐차가 아닌지요?”
인텔리겐차?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80년대 대학시절에 듣곤 했던 그 말을 10여년 만에 여기 일본에서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연구자의 정체성은 대안적 삶에 대한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갖고 가상실험을 하는 연역론자가 되는 것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현장의 다양한 실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인 원리에 입각해 서로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도구, 즉 ‘말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일본에 많은 지식인들이 있지만,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활자인 시민들에게 ‘질문적 세계’를 열어주는 계기를 만들기보다는 현장의 활동들을 사후적으로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는 데 있습니다.”
그가 활동가이면서 세련된 이론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연구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았을 듯싶다. 필자의 얼굴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그의 말 속에 연구자로서의 필자에 대한 질책이 숨겨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풀뿌리 운동가들 역시 연구자들에 대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그 이야기는 예서 그치도록 하자. 이 글은 그에게 한국의 지방선거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의 지방선거에 적지 않은 시민운동그룹들이 도전했습니다. 이 도전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시는지요?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시민운동을 해왔던 활동가들이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에 진출하는 것은 시대적 추세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제도적 공간입니다. 저는, 지난 20년간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사용하기 편리한 ‘생활용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주민들이 정책결정 과정에 참가하기 편리한 생활용구로서 지방의회를 개혁해나가는 것, 그리고 주민들이 스스로를 통치하기 위한 생활용구로서 지방행정을 개혁해 나가는 것에 우선적으로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인식이 확고히 정립되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시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만이 횡행할 뿐, ‘시민에 의한 정치’ ‘시민의 정치’는 영원히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로 운동가 혹은 프로 정치가가 주체가 되는 시민을 위한 정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풀잎’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활자인 시민이 주체가 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방자치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민에 의한 정치를 실현하는 참여적 리더십
당신의 운동조직은 그 어떤 운동조직보다도 아마추어 리더십을 길러내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길러진 리더들이 의회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시민활동에서의 리더십과 의원으로서의 리더십에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 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리더십의 근본은 다를 바 없습니다. 참여적 리더십의 중요성은 의회에서나 의회 밖에서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민운동 출신들도 의원이 되는 순간, 시민을 위한 정치라는 사명감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주민들로 하여금 프로 정치가에 의존하도록 하는, 종래의 ‘관료주의적 문제해결 방식’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여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의원은 생활자인 시민들이 정치를 통해 생활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생활용구라는 확고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시민운동그룹 출신의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리더십이 주민들의 프로 정치가에 대한 의존적인 체질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경계를 한시도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프로 운동가들이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경향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생활자인 시민에 의한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생활용구로서 의원 노릇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종래의 정치사회 질서를 혁신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주민들이 자신들의 의식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저의 운동론은 주민들이 정치와 자본에 의해 자신의 의식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는 한, 자발적인 참가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만들어낸 욕망에 의해 소비를 강요받고 있다는 것, 선거에서 의원과 정책을 선택하는 권리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활의 원리와 동떨어진 정책과 정치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눈치채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의원의 주요한 활동공간은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내는 생활현장이어야 합니다. 생활현장에는 경제, 문화, 소비, 교육 등 삶의 다양한 차원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활현장에 자신의 삶의 양식과 주어진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적 세계’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란 단지 종래의 질서를 바꾸는 운동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생활현장 속에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질문적 세계’의 계기를 만들어야 종래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저는 풀뿌리 민주주의란 항상 만들고 바꾸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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