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항변


온 국민의 이목이 축구공 하나에 집중되어 있을 때에도 생존권을 요구하며 목숨 건 싸움을 벌여온 노동자들이 있다. 구속조합원 석방, 노조탄압 금지를 외치며 한강대교 고공시위, 집단 단식농성 등 외로운 사투를 계속해 온 시그네틱스 노조. 그들의 외침이 월드컵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편집자 주

6월 15일 한밤중, 두 살배기 정섭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얼굴은 보이는데 잡을 수도 없고 안길 수도 없다. 엄마는 유리창 안에 있었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이 집단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앞. 단식농성은 같은 달 10일 명동성당에서 시작, 12일 노사정위로 옮겨 계속되고 있었다. 세 명의 여성조합원이 탈진해 구급차에 실려 나갔지만 남은 50여 명의 조합원은 파주공장에서 일하겠다는 염원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결코 자리를 뜰 수 없다는 각오로 버티고 있었다.

회사를 너무 믿은 죄

시그네틱스 노사분쟁은 공장이전에서 비롯되었다. 60년대 말 외국인투자기업 1호로 출발한 한국시그네틱스는 올해로 36년 된 반도체 조립업체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있으며 제조현장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80%가 여성, 그중 90%가 기혼자다. 3교대 근무라는 고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노조역사 35년,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년수 12년의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해 왔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노동조합의 끈질긴 요구로 96년 직장어린이집을 설립함으로써 기혼여성 노동자에게 비교적 안정된 일터를 제공한 점이 작용했다.

그러나 95년 시그네틱스를 인수한 거평그룹 아래서 빚더미에 오른 회사는 98년 부도위기에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임금과 휴가 반납,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을 받아들이며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고, 심지어 염창동 공장의 매각과 파주공장 이전을 통한 부채 상환 계획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97년 지어진 파주공장(제2공장)으로의 이전이 염창동공장 조합원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파주공장을 살려야 시그네틱스가 산다는 관리자들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파주공장은 규모가 서울공장의 3배에 이를 뿐만 아니라 첨단 장비와 시설을 갖춘 시그네틱스의 주력공장으로 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시그네틱스를 인수한 영풍그룹(회장 장형진)은 갑작스럽게 안산으로의 이전을 들고 나왔다.

노조파괴 꾀하는 영풍그룹

회사는 영풍그룹 계열사 땅을 사 2001년 염창동 공장의 1/3 규모로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노조는 ‘약속대로 파주공장으로 이전하자’며 교섭을 시작했지만 회사는 “공장이전 문제는 경영권이므로 노조와 논의할 필요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가’ 하는 문제는 노동자에게 매우 중요한 근로조건이다. 더구나 파주공장 이전은 굳이 문서상의 합의를 요구하지 않을 정도의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파주공장 이전을 전제로 체결된 단체협약에 대해 누구도 그 ‘전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 영풍그룹은 94년, 몇 달간의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영풍문고 노조를 와해시켰고, 주력 계열사 고려아연 등에서 벌어진 노조민주화 노력을 무자비한 탄압과 집요한 회유로 싹조차 잘라버렸다. 노조와의 협상과 대화의 경험이 전무한 영풍은 자본의 경영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공장이전을 통해 30여 년 역사의 시그네틱스 노조마저 와해시키려 들었다.

조합원들은, 아무런 투자계획도 없는 안산공장은 반드시 고용불안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노조와해를 노리는 것이라고 의심하며 반대했다. 2001년 5월 노조에 입수된 회사의 ‘공장이전 시나리오’ 문건을 통해 그 의심은 확실해졌다. 파주공장은 처음부터 생산직 사원을 모두 하청용역업체에 소속시킴으로써, 노조 설립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실제로 회사 측은 “파주공장으로는 한사람의 조합원도 받아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공장장과 관리자들도 공공연히 ‘노조 때문에 파주이전은 안 되니 포기하라’고 했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조합을 없애려는 경영진의 기도는 노동자들의 믿음과 희망을 거두어 가고 급기야 목숨까지 걸게 만들었다.

노동자에게 너무나 가혹한 세상

2001년 8월, 안산공장 이전을 반대하며 공장에서 농성을 벌이던 조합원들은 수백 명의 용역깡패들에게 폭행과 성추행까지 당하며 내쫓겼다. 그런데도 조합원 수십 명만 고소고발 되었을 뿐 사용자 측에는 어떤 법적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장비 이전을 저지하는 농성으로 91명의 조합원이 임금과 집 등을 가압류당했고, 일방적인 안산공장 인사발령을 반대하며 시작한 파업으로 참여 조합원 모두 해고되었다. 파주공장에 가 노숙하며 성실한 교섭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노조 간부들에 대한 수배와 기막힌 탄압뿐이었다.

조합원을 해고한 회사는 올 2월, 직장어린이집의 문도 닫았다. 보육 아동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관할 서울 강서구청은 어린이집 폐쇄신고를 반려했지만, 회사는 주저하지 않았다. 시그네틱스 조합원은 1년이 넘도록 길거리에서 집회하고 밥 해먹고, 한겨울 노숙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조합원들에게 알몸수색도 서슴지 않았고, 검찰은 “못 배웠으면 알몸수색 당해도 싸다.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야유까지 했다. 6명의 노조 간부가 구속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생존권을 포기할 수 없다

지난 5월 29일 21시간의 한강대교 고공시위를 벌이고 구속된 창수, 준수의 엄마 윤민례 씨(지회 사무국장)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우리 아이들은 이 다음에도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의 말은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아이의 전화 목소리에도 한없이 초조해 하던 여성노동자들을 집단 단식농성으로까지 몰고 갔다. 지나가는 이들은 “여자들이 참 독하고 미쳤다”고 했다. 고공시위에, 아이들 며칠씩 떼어놓고 집단 단식까지. 그러나 노조를 탄압하고 생존권을 빼앗는 자본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이 나라에서 자랄 아이를 위해 시그네틱스 노동자는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

“구속된 동지를 석방하라! 노조탄압 중단하라!”

“부당해고, 고소고발, 가압류 철회하라!”

“파주이전 수용하라!”

현상 회복에도 못 미치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시그네틱스 노조원들의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임은옥 금속노조 시그네틱스지회 교육선전 국장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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