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진 주5일 근무제에 관한 논의는 사실 1960년대 이래 산업화 과정에서 뿌리내린 살인적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됐다. 비민주적인 정치권력 집단과 이기적인 경제 집단들은 저임금, 장시간의 비인간적 노동조건을 수단으로 삼아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노라고 민중을 40년 이상 속여왔다.

그러다가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 바람이 거세게 일어 전노협이 태어나고(91년) 이어 민주노총이 창립되면서(95년) 이를 계기로 노동시간 단축이 사회적인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노동시간 단축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철학은 물론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이어 1996년부터는 한국노총, 민주노총 모두 주40시간제를 단체협약에 반영하도록 사용자에게 요구하였고 이런 요구가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진 사업장도 더러 나타났다.

마침내 1997년에는 노동시간 단축, 즉 주44시간제를 주40시간제로, 주 5.5일제를 주5일제로 바꾸자는 것이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등장할 정도로 분위기가 성숙되었다. IMF구제금융 직후인 1998년 2월 설치된 노사정위원회는 근로시간단축위원회를 두기로 합의하였고, 마침내 2000년 10월 주5일 근무제(주40시간제, 8시간×5일, 연간 2000시간 이내)를 하루빨리 도입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2001년에는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노사정위에서 이 문제를 계속 논의했고 2002년 7월 도입을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통한 사회적 효율 향상이라는 대의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2002년 7월부터 전사회적 주5일제를 입법화하려는 시간표는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2002년 5월 24일 열린 노·사·정 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월드컵대회 이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무엇이 노·사·정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는가? 첫째, 주5일 근무제의 필요성과 도입 시기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노동계는 즉각 실시하자는 쪽이었으나 재계는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다. 둘째, 노동계는 노동시간이 단축될 경우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고 두려워한 반면 재계는 오히려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 여겨 꺼렸다. 셋째, 임금 보전 문제와 관련해 노동계는 수당이나 휴가 축소 등 노동조건 악화를 반대하였고 재계는 휴가, 즉 비노동 일수가 지나치게 늘어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넷째,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시 노동 유연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 부정적이었고 재계는 노동자가 많은 여가를 즐길 경우 근로윤리가 해이해질 것이라 두려워하였다. 다섯째, 실시방식과 관련, 한쪽에서는 사회 전체에 일괄적으로 하자는 의견이었고 다른 쪽에서는 기업·업종별 협약으로 하거나 단계적으로 하자는 의견이었다.

물론 이런 의견 차이는 반드시 노동과 자본의 양쪽으로만 갈라진 것이 아니었고 때로는 노동계 내부에도 있었다. 예컨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대기업 노조와 중소기업 노조,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사이에도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바라보는 노사간 태도의 차이다. 노동자가 삶의 질 향상이라면 자본은 경쟁력 향상이란 잣대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은 얼핏 주5일제가 노사 합의에 따라 무난히 이루어질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비용상승론과 시기상조론

주5일제 논의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는 지금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재계의 비용상승론과 시기상조론은 늘 있어왔던 논리다. 그들이 시기상조론을 들고 나올 때, 그렇다면 과연 언제가 적절한 때인지 말한 적이 있던가? 혹시 그런 적이 있더라도 일단 미루어 놓고 보자는 식이었지, 그때가 올 때까지 차분하고 진지하게 준비한 적이 있는가? 발등의 불만 끄려고 했지 차근차근 만들어나간 적이 없다. 반면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날밤을 새워서라도 만들어내는 것이 한국 자본의 특성 아닌가?

재계의 이런 행태를 익히 알기에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같은 상급 단체는 물론, 그 산하의 산별노조나 연맹들이 이 문제를 앞세워 단체교섭이나 파업에 들어갔고 대량실업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요구를 한데 묶어 취업자와 실업자의 연대를 꾀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 결과는 보잘것없지만 이 싸움이 결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나아가 주5일제가 실시될 경우 사회의 다른 분야에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예컨대 관광, 문화, 여가, 교육 산업이 팽창할 전망인 반면 빠듯한 생계비를 보충하기 위해 주말에 부업을 갖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런 경향들이 낮은 임금수준을 더 낮출 수도 있고, 어렵사리 얻은 여유 시간을 또다시 자본의 소비로 탕진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노동계나 노동자는 이 시간을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노동자와 농민의 생활조합 만들기, 유기농법으로 텃밭 가꾸어 채소 자급자족하기, 노동자 테마 여행, 독서토론회나 글쓰기, 새롭고 의미 있는 것 학습하기, 지역적으로 분산된 다른 노조 동지들 만나기, 미조직 노동자의 생활체험 나누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주5일 근무제의 정치적인 파장 또한 적지 않다. 이미 정부는 국회에서 이 문제를 법제화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되지 않으면 의원 입법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이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의 노동자들이 이런 수기를 썼다고 한다. 첫번째 사람이 말한다. “나는 아침 6시만 되면 회사로 출근해서 하루종일 일하고 또 저녁 내내 일하고 집에 새벽 1시경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자다가 다시 새벽 6시가 되면 회사로 간다. 매일 이렇게 돌아간다. 이런 생활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두번째 사람은 여성이다.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일을 하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우리 작업조원들에게 부담을 지울까봐 미안해서 휴식 때까지 억지로 참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마침내 나는 방광염에 걸리고 말았다.” 세번째로 한 남성은 더욱 절망적인 그림을 그린다. “나는 점심 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곁다리로 일을 하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일을 하면서 곁다리로 밥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중독, 자기에 대한 테러

일본 이야기지만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니 우리는 일본보다 더 하다. 일본은 연간 1800시간 일하는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지만 우리는 연간 2400시간 이상 일한다.

그런데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육체적 피로와 산업재해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시간주권과 삶의 자율성을 빼앗아 간다. 오로지 일만 하다가 ‘볼일 다 보게’ 만든다. 만일 그 일에서 좋은 성과가 난다면 그 노동자는 임금이든 승진이든 일정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보상의 달콤한 맛은 그로 하여금 일에 더 미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중독이 사악한 것은, 이것이 당사자로 하여금 결코 대안적 삶의 추구를 위한 시간(여유)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5일 근무제 요구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실용적 차원을 넘어 자기에 대한 테러로서의 노동중독에 대한 거부, 나아가 (소외된) 노동 거부로 나아가는 비상탈출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바로 이런 점이 주5일 근무제 요구의 본질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단순히 일을 더 적게 하고 돈을 더 많이 벌자는 요구가 아닌 것이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 노사관계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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