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근무 앞둔 민주노총의 고민


“일주일에 닷새만 일하자!” 듣기만 해도 흥분되는 주5일 근무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얘기처럼 어떤 직장인들은 벌써 금요일 저녁부터 떠난다는데, 도대체 언제 내 직장 문을 쿵쿵 두드리며 반갑게 찾아올까? 주5일 근무제 도입 문제가 흘러온 과정, 쟁점, 전망을 짚어본다.

연간 2000시간 아래로 노동시간 줄여야

내 기억엔 2000년 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춘곤증에 나른하던 직장인들 귀에 주5일 근무라는 단어가 솔깃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연초부터 주5일근무 도입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잡은 민주노총은 5월말 총파업을 앞두고 토론회, 집회시위, 여론조사 등 갖가지 사업을 펼쳐 큰 사회쟁점으로 만들어나갔다. 총파업 배수진을 친 주5일 요구가 여론의 큰 호응을 받자 결국 대통령이 주5일 근무제 도입 긍정 검토를 지시하고 당시 노동부 장관이 연내 국회통과 방침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평범한 사람들은 한평생 살면서 20대부터 50대까지 인생 황금기에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며 늙어간다. 그런데 황금기를 직장생활로 보내는 노동자들 사는 게 말이 아니다. 행복한 가정생활과 인생을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것인데, 현실은 가정이 마치 직장생활을 위한 하숙집처럼 돼버렸다. 재충전을 위한 여가생활은커녕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부모형제들은 별일 없는지 사람으로 최소한 해야 할 도리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더구나 만성 피로에 시달려 언제 과로로 쓰러지거나 산재사고를 당할지 모른다.

이게 모두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 통계로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연간 2500시간 안팎으로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길게 일하는 ‘일중독자’들이다. 최소한 외국 수준으로 연간 2000시간 밑으로 줄여야만 인생 황금기가 고단하기만 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법정 노동시간을 줄여 전체 노동자들의 기준 노동시간을 바꾸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 만점이다. 즉 현행 주44시간인 법정 노동시간을 주40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물론 법을 바꾸기 전이라도 회사에서 노사합의로 할 수 있다. 이미 96년부터 금속사업장 다수가 주42시간제를 도입해 격주로 주5일 근무를 해오고 있다. 외환위기가 터진 뒤에는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민주노총이 요구한 ‘주40시간 노동제’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뜻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결국 하루 8시간씩 닷새를 일하는 꼴이 되므로 주5일 근무제로 고쳐 요구했고 여론화하는 데는 한결 쉬웠다.

하지만 주5일 근무제가 단순히 일주일에 닷새만 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줄여 1년에 2500시간에 이르는 ‘일중독’에서 벗어나자는 데 근본 취지가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재계의 터무니없는 ‘무늬만 주5일근무’

하지만 대통령 지시로 노사정위원회로 넘어간 주5일 근무 도입논의는 해를 두 번이나 넘기면서 변죽만 울릴 뿐 아직 속시원한 결론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복잡하다면 한없이 복잡한 논의내용은 사실은 단순하다. 바로 재계의 ‘작전’ 때문이다.

오랫동안 재계는 주5일 근무를 도입하면 경제가 금방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주장하며 ‘시기상조론’을 펴왔다. 하지만 2000년 말부터 작전을 바꿨다. 그 논리는 다양하지만 핵심은 주5일 근무 도입에 드는 비용을 노동자들이 부담하라는 것과 재계의 노동시장 유연화 요구도 들어달라는 것이다.

우선 재계와 정부는 준비기간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생각해 2010년까지 단계별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계 주장대로 하면 전체 노동자의 85.5%인 1100만 명의 300인 미만 업체 중소영세 노동자는 최소 5년 안에 주5일 근무 혜택을 볼 수 없게 되고, 전체 노동자의 45%인 590만 명의 10인 미만 업체 노동자는 2010년에 가서도 혜택을 볼까 말까 하는 처지가 된다.

현행 월차 12일, 연차 10일+1년에 1일 추가 제도를 연월차 휴가를 통합해 15∼20일로 왕창 줄이고 공휴일이나 다른 휴일도 줄이자고 한다. 다른 휴일휴가를 줄여 토요일에 쉬는 이른바 전윤철 부총리의 ‘노동시간은 줄이지 않는 주5일 근무제’ 도입론이다.

또 현재 유급인 생리휴가와 주휴를 무급으로 돌리고 초과근로 할증률도 내리는 등 임금을 깎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6개월∼1년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해 바쁠 때는 일주일에 64시간, 연간으로 따지면 2704시간까지는 법 테두리 안에서 일을 시킬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는 조삼모사식으로 근무하는 날을 바꾸는 식이라면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번 기회에 임금을 깎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고 비정규직을 더 늘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재계의 목표를 수월하게 이루기 위한 기회로 삼으려 하는 것인가. 최소한 연간 2000시간 밑으로 노동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개선하자는 근본취지 자체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정부도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됐건 ‘정부입법안’이 됐건 재계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무늬만 주5일 근무제일 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주5일 근무제가 될 수 없다. 이런 까닭으로 대선을 의식한 정부가 올해 4월 들어 바짝 서두른 ‘주5일 근무제 노사정 합의’를 노동계가 나서서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몇 년에 걸쳐 애써 도입하게 된 중요한 개혁법안들이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의 농간 때문에 무늬만의 개혁법안으로 전락해버리는 일을 종종 겪는데, 주5일 근무제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독약 아닌 보약 되는 주5일 근무제를

노동자들의 투쟁뿐 아니라 경제발전이나 시대흐름으로 볼 때도 주5일 근무제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시간문제이다. 남은 것은 취지에 맞게 도입하는 일이다. 민주노총은 2000년까지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사회쟁점으로 만들어내는 1단계 활동을 벌여왔다면, 지금은 2단계 활동으로 ‘중소영세 비정규직 희생 없는’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 근무제 도입 투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은 국회에서 노동관계법을 바꾸는 문제인데, 항상 겪듯이 정치세력이 없는 운동은 문제는 제기할 수 있어도 그 뒷일을 감당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있는 힘껏 재계에게는 보약이 되고 노동자에게는 독약이 되는 휴일휴가 축소·임금삭감·탄력근로제 조항들을 도매금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막아내면서, 올바른 주5일 근무제 도입 문제를 대선 쟁점으로 만들어 현재 논의되는 내용에서 개악조항들을 뺀 법개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울러 법개정 이전에도 사업장별 노사협상을 거쳐 올바른 주5일

근무제를 실제로 적극 도입해나가야 한다. 은행과 KBS에 이어 제2금융권도 주5일 근무를 도입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는 조삼모사식 주5일이 되지 않도록 힘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업종의 특성을 감안한다 해도 전체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법개정 내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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