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심적 사고에서 해방된다
2002/2002년 07월 :
2002/07/02 00:00
주5일근무 본격실시 앞둔 직장인들 의식변화
사람은 제도를 만들고 제도는 사람을 만든다.
주5일 근무제는 직장인들의 생활패턴을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의식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에도 일부 기업들은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5일근무가 정착되었고, 증권사 등은 업무성격상 주5일근무를 실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주일 중 반나절, 시간상으로 하면 기껏 4시간 남짓의 작업시간 단축인데 그로 인한 변화는 단순한 시간적 여유 확보 그 이상이다.
달라진 주말에 대한 개념
대우엔지니어링에 근무하는 신도선 씨(27세). 그는 매일 5시 반이면 눈을 뜬다. 오전 7시에 영어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시간을 맞출 수 없다. 주5일 근무를 하는 그로선 주말반을 이용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새벽별을 보는 이유가 궁금하다.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업무나 기타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일 만한 일은 하지 않아요. 토요일 일요일만큼은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그외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6일 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에게 있어 일요일은 단순히 직장생활을 통해 쌓인 피로를 풀고 월요일 출근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5일 근무제는 주말에 대한 개념자체를 바꿔놨다.
“회사에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기 전 일요일은 거의 잠으로 때웠죠. 무슨 일인가 하고 싶어도 다음날 출근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봐 망설이곤 했어요.”
현대증권 홍보팀의 이병삼 과장(41세)의 말이다.
회사가 주5일 근무를 시작한 후부터 이 과장은 주말을 대부분 가족들과 보낸다고 한다. 교외에 나가거나 가까운 놀이공원을 찾기도 한다. 당연히 가족과의 소통이 많아지고 아이들과도 친해졌다.
일중심에서 가족중심으로
(주)대교에서 근무하는 신정우 씨(30세) 역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은 가족과 보낸다. 아직 아이가 없는 그는 부인과 단둘이서 1박2일의 여행을 가곤 한다.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아내와 주말마다 여행을 갈 수는 없었겠죠. 아내 역시 5일 근무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맞아 이틀간의 여행을 할 수 있는 거죠.”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대부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가족들과 1박2일의 여행을 가는 경우도 많았고, 근교나 놀이공원을 찾는 경우도 많다. 이는 일과 직장 중심적인 사고를 가져왔던 직장인들의 무게중심이 차츰 가정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벌인 실태조사 결과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될 경우 절반 이상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직장인들에게 있어 가정은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해소하고 업무를 위해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장소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주5일 근무제의 시행은 직장의 보조적 기능만을 수행해 왔던 가정을 또 다른 생활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이러한 일과 가족 사이의 위상변화는 주5일 근무제뿐 아니라 IMF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도 관련이 깊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외환위기 때 실직한 박경완 씨(자영업, 53세)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평생직장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게 마련이고 따라서 자기가 몸담은 직장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며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일 중심적 사고가 급속히 해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생이 변하는 주5일 노동
시인 박노해는 몇 해 전 민주노총과의 인터뷰에서 “삶은 프로젝트(목표)가 아니라, 프로세스(과정)이다.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5일 근무를 하는 직장인들 중에는 차츰 박노해와 같은 인식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직장 내에서의 성공, 내 집 마련 등 일정한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다그치기보다는 현재의 생활을 소중히 여기고, 그곳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주말동안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하거나 자신만의 취미를 살린 다양한 여가활동을 하면서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평생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참고 쌓아놓기보다는 현재를 즐기면서 살려고 노력해요. 주5일 근무를 하면서 바뀐 것은 주말이 아니라 제 삶이에요.”
한 30대 직장여성의 말은 주5일근무제의 도입이 직장인들의 삶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몇 시간의 휴식시간이 아닌 새로운 생활,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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