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복지단체에서 주말 보내는 우리시대 직장인들


“직장 다니면서 계속 반복되는 생활에 내 자신이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한달에 한 번 정도면 참가할 수 있겠다 싶어 사람들과 나오기 시작했죠.”

한 기업체 해외영업부에서 일하고 있는 4년차 직장인 임민아 씨(27세). ‘참우리’의 사람들과 매월 일요일 한 차례 강남구 세곡동에 있는 ‘참빛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참빛의 집(원장 김종님)’은 저소득 가정과 무의탁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다.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꾸준히 자원활동을 벌이고 있는 ‘참우리’는 스무 해 가까이 나이를 먹은 봉사활동단체로, 직장인들이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80년 ‘직장인 자원봉사대’로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설립되어 그 이듬해부터 ‘참우리’라는 이름으로 200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참빛의 집’ 곳곳에는 그들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강남이라고 하면 언뜻 번듯한 시설로 오해하기 쉽지만 풀밭에 즐비한 비닐하우스 중 하나인 ‘참빛의 집’의 하수도, 출입문 공사는 물론 화장실, 빨래터 공사까지 온갖 ‘노가다’를 도맡아 해왔다. 지난 6월 16일 오전 ‘참빛의 집’을 찾은 참우리 회원들은 오자마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묵은 빨래를 하느라 분주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쉬면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직장인들의 ‘꿈’ 아닌가.

“개인적으로 나는 참우리를 통해 복잡한 일상에 대한 반성도 할 수 있고 봉사활동을 하며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어 즐겁습니다.”

참우리의 회원 나운 씨(35세)는 후원만 해오다가 발벗고 나선 사람들 중의 한 명. 임민아 씨 역시 “이런 활동으로 인해 자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벌어들인 만큼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노숙자와 함께 하는 주말여행

주말을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물론 당사자다. 꿀 같은 단잠으로, 텔레비전이 유혹하는 대로 ‘주말을 ○○○방송국과 함께’ 보내는 게 우리 사회 직장인들의 여가활용 현주소라고 말하는 건 생급스럽지 않다. 이에 무난한 디자이너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가오는 휴일 역시 반복적인 ‘지루한 휴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녹색연합 내 직장인 모임인 ‘녹색바람’의 이석봉 씨(31세)는 주말이면 열 명 남짓한 회원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찾거나 환경현안과 관련된 현장에 직접 나가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이하 경실련)의 경우 도시개혁운동과 관련된 도시대학이나 민족통일화해아카데미 등을 통해 직장인들을 비롯한 시민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이밖에도 대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은 주말에 회원모임을 마련해두고 있다. 직장인들이 주를 이루는 참여연대 회원모임 청년마을(촌장 유정근) 사람들 역시 노숙자 문제를 고민하는 ‘노둣돌’,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느티나무’ 등 다양한 주말 참여활동을 벌이고 있다.

청년마을 회원 이윤정 씨(32세)는 6년차 공무원이다. 그는 “비슷한 성향과 생각들을 가진 또래들이 모이다보니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된다”며 “모임을 통해 팍팍했던 직장생활까지도 한결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고 참여의 변을 대신한다.

그는 원래 답사모임 회원이지만 사회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온 터라 이 모임에까지 나오게 되었단다. 청년마을 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또 다른 사회경험을 하고 있었다. 두 사회를 넘나드는 걸 즐기는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특히 이번 6월 한달 동안 ‘노숙인 인권공동실천단’의 일원으로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직장 안에서보다 직장 밖에서 더 바쁜 것 같았다. 그들은 ‘전국실직노숙자대책 종교시민단체협의회’와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 남산공원, 종묘 등지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활동을 하고 있다. 오는 6월 22일에는 일일노숙 체험행사를 할 예정이다.

“전문가도 아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몫이 크지는 않아요. 하지만 전국을 통틀어 300명이라는 터무니없는 통계로 노숙인들에 대한 예산을 마련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실질적인 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해서 제시하려고요.”

청년마을 촌장 유정근 씨(31세)는 월드컵 기간 동안 노숙인들을 한데 묶어 지방으로 ‘특별연수’를 보낼 계획이라는 정부의 노숙자 보호대책과 이에 항의하는 단체들의 소동을 지켜보면서 이 단체들과 손잡게 되었다고 한다. 사서 고생한다는 소리도 들을 법한데 그는 “직장생활 하다보면 자기 일에 대한 성취감은 있지만 정작 보람을 느끼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참여연대로 찾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년마을 사람들은 지난해 성북구 안암동의 장애아동 복지시설인 ‘상락원’에 나가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다른 곳에 비해 시설이 좋은 편이고 도움의 손길이 많아 더 아래로 찾아가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그래서 올해 들어서 오기 시작한 곳이 마침 ‘참빛의 집’이었다. 덕분에 이날 ‘참빛의 집’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청년마을 여성회원들과 마당에서 쌓인 빨래를 짜서 줄에 너는 장정들로 북적였다.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는 주5일 근무제의 여파가 과연 시민단체까지 다다를 수 있을까. “주5일 근무제로 인해 특별히 더 여유로운 것 같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시간보다는 마음가짐 아닐까요?”

주5일을 근무하는 외국계 회사의 이병우 씨(32세)는 환경운동연합의 직장인 모임인 ‘하호모임’에서 동물보호운동을 벌여왔다.

“주5일 근무자가 저밖에 없어 많은 일들을 떠안은 것은 사실이죠(웃음)”라면서도 “자기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로그래머인 5년차 직장인 김수경 씨(30세) 역시 “근무시간이 단축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레저활동에 눈을 돌릴 것 같아요. 하지만 시민단체활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는 거죠”라며 “시민단체활동이나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나운 씨도 “자발적 자세”가 중요한 것이라고 답했다.

느닷없이 ‘황금 같은 하루’가 주어질 때 어쩔 줄 몰라하며 ‘놀아보세’도 좋지만 남다른 휴일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동참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의무적으로 ‘출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것 또한 쉽게 지치겠죠. 한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서로 친해지면서 다양한 활동계획을 세우는 게 참 즐거워요”라고 말하는 나운 씨. 복지시설이나 시민단체에서 만난 ‘동지’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벌일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지금까지는 주로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꾸려 자원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앞으로 주5일 근무제가 사회적으로 정착되면 시민단체들은 그들을 좀더 다른 차원에서 조직화할 생각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연합, 직장인 참여 환경프로그램 마련할 터

환경운동연합의 김숙영 간사는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짜여진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단체활동에 더욱 직접적으로 참가하라고 부탁하기는 좀 힘들었어요. 직장에서도 피곤할 텐데, 굳이 시민단체까지 와서 뭔가 하라고 말하는 게 사실 미안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향후 주5일 근무가 시작되어 시민단체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겠다는 회원이나 일반직장인들이 늘어날 경우 그들을 위한 세미나 개최 등 다양한 환경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 말한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쬔 일요일 오전 ‘참빛의 집’ 일을 거들기 위해 찾아온 직장인들은 거창한 일을 하려는 것도, 그들이 하는 일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한달에 한 번 ‘내’가 아닌 ‘우리’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다시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자칫 소비형 여가로만 휘둘릴 수 있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주5일 근무제 디자인을 미리미리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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