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The Reds! 요즘 4800만이 모두 붉은 악마가 되었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붉은색 계통의 옷에 손길이 가는 것을 보니, 나도 영락없는 ‘홍의민족’이다.

이럴 때는 그냥 즐기고 동참하는 것으로 족하건만, 무언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기를 쓰는 것은 ‘도대체 세상에 도움에 되지 않는’ 경제학자의 속물 근성 때문이다.

15년 전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웠던 넥타이부대를 보면서 느꼈던 그 뜨거운 감격을 붉은 악마들의 함성 속에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가벼워진 것인가.

15년 전과 지금의 함성 사이에는 분명히 중대한 차이점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언지 가물가물하기만 하니, 내가 너무 뜨거워진 것인가.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엇이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은 기대감과 함께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내가 안식년을 맞아 영국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집 아이가 머리를 부딪쳐 솔방울만한 혹이 생겼다. 때마침 토요일 오후라 동네 병원이 문을 닫아서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X선 사진 찍고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는 지극히 간단한(?) 진료절차를 마치기까지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의사와 간호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열정적인 홍의민족답게 항의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썰렁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우리집 아이보다 상태가 훨씬 심각해 보이는 환자들도 군소리 없이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필히 ‘내가 누군지 알아? 원장 나오라 그래!’라며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대중의 호응이 있었을 것이다. 상당히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종합병원 응급실 가서 4시간 기다리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4시간의 기다림이라는 결과가 같을 때, 군소리 없이 앉아 있는 영국민과 거칠게 항의하는 한국민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단연코 한국민에 기대를 건다. 항의하지 않으면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변화가 있더라도, 그것은 위로부터의 변화일 뿐이다. 영국의 대처리즘은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대중은 변화의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었다.

15년 전의 넥타이부대나 지금의 붉은 악마는 결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정제되지 않은 집단적 에너지이다.

그 어떤 기존의 질서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미래의 새로운 질서는 예정되지 않았다. 한국민 특유의 집단적 에너지는 얼마든지 왜곡·악용될 수 있다. 이것이 두렵다.

15년 전의 넥타이부대에게는 독재 ‘타도’라는 목표가 있었다. 지금의 붉은 악마들은 무엇을 ‘타도’하고 있는가, 또는 무엇을 ‘건설’하고 있는가.

에너지는 충만하되 목표는 없는 이 상황을 그 누군가는 ‘노마크 찬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한편, 붉은 악마에게 목표를 부여해야 한다는 이 조바심이야말로 그들의 에너지를 속박하는 기성세대의 낡은 굴레 아닐까. 모르겠다. 그래서 기대되고 또 두렵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2002/07/02 00:00 2002/07/02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677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