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서 벤처로..돈다발에서 주식으로


지금 우리는 소위 ‘게이트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적’을 지니고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른바 ‘5대 게이트’로 일컬어지고 있는 진승현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 등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5대 게이트는 한결같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지닌 권세가와 관료, 그리고 벤처 기업인이 합작으로 벌인 비리사건에 그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국가기관이 비리에 동원되기도 하고, 심지어 대통령의 친인척 인사들이 깊숙이 연루되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단순한 형사사건의 범주를 넘어 게이트가 된 이들 사건의 중심에 누가 서 있는지에 관해서도 현 단계에서는 명확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과거의 게이트와 비교하여 5대 게이트의 경우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권력기관이나 금감원이 로비대상

과거의 비리사건에는 재벌회사가 로비의 주체로 등장했으나 5대 게이트에서는 벤처회사와 권력기관의 공직자들이 로비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회사가 로비의 주체로 등장한 배경에는 현정부 하에서 벤처회사 육성정책의 부작용이 자리하고 있다. 벤처기업 지정제는 벤처기업으로 지정되기 위한 치열한 로비를 촉발시킨 결과를 낳고 말았다. 또 다른 관치경제의 폐해인 셈이다.

개발독재시대의 재벌이나 김대중 정부의 벤처기업이 과거와 현재의 비리사건의 주체로 등장한 데에는 금융과 세제상의 수혜를 토대로 성장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패턴이 바뀐 것일 뿐 정경유착의 양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는 점을 감안할 때 로비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일부의 시각이긴 하지만, 로비 주체가 대기업이 아니라 벤처회사로 바뀐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어 공식적으로 자금을 모으는 일이 힘들어졌기 때문에 벤처회사가 로비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기업이 로비의 주체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점이 전제될 때 가능한 평가이다. 따라서 벤처회사가 로비 주체로 등장했다는 것은 로비 주체의 다양화와 함께 로비 주체의 범주확대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일로 여겨야 할 것이다.

현금 또는 수표가 아닌 펀드 가입이나 전환사채(CB) 발행, 주식공여 등 유가증권 형태의 이권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정현준, 이용호, 윤태식, 최규선 게이트에서 주식이 공통적인 로비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과거에는 로비 대상이 주로 정부기관이나 정치인들이었다. 이번의 게이트들에서 드러난 로비 대상은 주로 경제비리를 감독하고 통제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금융감독기관이나 권력기관(청와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등이어서 우리들에게 더욱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각종 비리와 부패사건들에 대한 처방과 대책을 제시하면서 이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기관들은 부패를 위한 로비 대상에서 제외되리라는 점을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었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5대 게이트를 통해 이러한 전제는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부패통제를 위해서는 이들 기관들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한다.

대통령이 반부패 선언해도 권력형비리는 계속된다

김영삼정부에서 발생한 수서비리사건이나 한보비리사건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로비자금은 시중은행이나 제2금융권을 통해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5대 게이트에서는 불법 로비자금이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인 신용금고, 사설펀드, 종금사를 통한 불법 대출 또는 자금유용과 횡령, 주가조작의 방법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로비자금 조성방법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금융개혁 차원에서 정부가 푼 각종 규제조치가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신용금고의 경우 전에는 경영권이 바뀌면 감독기관이 자금조달 내용과 경영자의 자질 등을 따지는 경영권이전 심사제가 존재했었지만 이 조치가 1997∼1998년에 규제완화 차원에서 없어졌다. 사이비 벤처금융인이 금고를 사금고로 악용하는 사례가 속출했던 것은 규제완화로 사전검증 절차가 마련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가 작용했다. 여기에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의 다양한 끈이 동원되었다. 특히 전 국정원 직원, 전직 장관 등 권력기관 인사들을 회사의 임원으로 흡수(cooptation)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는 매우 일사불란한 로비 전개를 가능케 했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이번 게이트에 연루된 것은 바로 이러한 벤처기업인들의 로비 전개방식에 기인한다. 이러한 측면은 검찰이나 금융감독기관, 청와대 등 사정기관이나 권력기관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조장하였고 이는 다시 결과적으로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활동의 공간을 키워왔다고 하겠다.

인사정보의 사전 유출, 검찰과 경찰의 수사정보 유출, 대통령의 일정(동정)관련 정보 유출, 보물 발굴사업 정보 유출 등이 로비의 자료로 이용되었다. 이는 부패의 원천이 정부의 사업으로부터 국가기관의 정보로 이동(shift)하고 있음을 확인케 하는 대목이다. 예컨대 검찰조사 결과 최규선 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수행비서인 청와대 직원을 수시로 만나 대통령의 일정과 근황 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비의 효과로서 기대되는 것은 한결같이 이권개입을 통한 부의 축적이었다. 과거 로비의 효과가 사업결정 과정의 신속성을 담보한다거나 정책결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하는 것에 모아졌다면, 이번의 게이트에서는 불법적인 자금조성(진승현, 정현준), 불법적인 방식으로 벤처기술 납품을 통한 부의 축적(윤태식), 주가조작을 통한 불법자금 축적(이용호), 대통령의 아들 등을 동원한 이권개입(최규선) 등 매우 구체적인 차원에서 로비의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7월 20일 “이제 권력형비리는 척결되었다”고 언급하였고 2002년 1월 14일 연두회견을 통해서 “정부와 사회 각 분야의 부패척결에 불퇴전의 결의를 갖고 임하겠다”고 각오를 다진 바 있다. 그러나 연이어 터진 게이트 안에는 권력기관의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을 국민들은 보았다. 그리고 권력형비리가 척결되었다고 선언했던 대통령의 자녀들이 여전히 비리의 게임에 열중인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었다.

이러한 게이트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국민들의 생각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일상의 생활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부패사건은 ‘폭로(고발) →수사→처벌→대책마련’의 반복적 경로를 과거에도 여지없이 거쳐왔고 또 앞으로도 거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과거를 용서하되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부패 캘린더(calendar of corruption) 달기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것이다.

강성남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2002/07/02 00:00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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