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란 내가 만든 것은 아니고,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짓을 상속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이 말은 맞는 것 같다. 요즘 생각하면 지극히 온당하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함부로 꿈꾸기 어려운 자리에 오르내리는, 이 시대 이 국가의 인물들을 보노라면 그렇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국적이란 그렇게 절대적인 가치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만 따지면, 본인만 한국 국적을 가지고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으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 그 전의 국적은 물론 가족의 국적 따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공무원법에 공무원의 국적이 한국이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 오히려 외국인도 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한때 개정 전의 외무공무원법에는 특별한 규정이 있었다. 외무공무원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도 이전에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있으면 임용될 수 없는 게 원칙이었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 부모, 자녀가 외국 국적이어도 장관의 승인 없이는 임용될 수 없었다. 국가의 이익을 고려한 취지에서였겠지만, 지금은 모두 폐지됐다. 하물며 국무총리 아들의 국적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것도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하겠다는데.

국적이란, 국적법이 정하는 요건만 전제로 하면 아주 간단한 법적 개념이다. 그러나 국민이 감정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복잡 미묘한 사회적 개념이 돼버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역감정을 타파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하면서, 유독 국가적 이익을 위해서는 인류 평화의 문제를 제쳐두어도 좋은가? 국가 권력의 지배력은 우리가 받아내야 하는 당연한 것이고, 국가의 이익은 결국 개개인 모두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국가대표 축구팀이 다른 나라 팀을 이기기만 한다면,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 절세의 영웅으로 모셔도 씁쓰레한 표정조차 내비치기를 삼가야 하는가 보다. 대한민국이 국제 무대에서 강국이 되기 위해 우리말보다 영어에 더 신경을 써야 하나 보다. 이런 문제들은 도무지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달에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물론 그런 복잡한 것이 아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법적으로 문제될 것 없는 국무총리 아들의 국적을 두고 왜 자격 시비를 하는가. 주소나 거소뿐만 아니라 국적도 다국적 시대요, 필요하면 개인이 얼마든지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고위공직자 가족의 국적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법적 요건 이외의 요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도덕성이 그중 하나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기회를 얻기 원한다. 적법한 기회만 오면, 미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하고 병역은 면제되기를 바란다. 같은 값이면 미국 국적의 잠재적 가능성을 유지하려는 욕심도, 아무래도 여러 가지 이점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 고위공직자들은 그렇게도 하나같이 국적과 병역과 재산 문제를 아킬레스건처럼 지니고 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이 사회에서의 유리한 지위를 고스란히 이용했기 때문이다. 어느 때건 그 사회적 계급에서 주어진 기회는 모조리 챙기고, 뜻밖에 공직을 맡게 되면 허겁지겁 도덕의 갑옷을 찾아 걸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보통의 시민들은 그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된 것이 아니란 걸 깨우친다. 그래도 우리는 가끔 인사청문회 때문에 지도자, 지식인, 가진 자들의 도덕적 허위와 거짓과 가식의 수준을 감상하는 기회를 보상으로 얻는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차병직 변호사 · 참여연대 협동처장
2002/08/10 00:00 200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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