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권력부패의 사슬이 문민정부를 망치고 국민의 정부를 망쳤을 뿐만 아니라 어렵게 이어온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을 송두리째 망쳐버리고 있다. 정치권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정치지도자의 알 만한 자식들이 저지르는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억제하기 어렵다.

옛말에 부자 3대를 못 넘긴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벌체제가 형성된 이후 재벌 2세의 방탕한 생활이 문제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부자나 재벌보다 더한 것이 정치인 2세의 타락과 방종이다. 부자와 재벌의 처신이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 돈 가지고 장난친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 2세가 주무르고 있는 저 엄청난 권력이 어디 제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97년 6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김현철은 기업인들로부터 66억 원을 받아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 특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징역 2년을 받았다. 비록 그가 구속 5개월 만인 11월에 보석으로 풀려나왔고 징역이 확정된 다음에는 8·15특사로 잔형 집행을 면제받는 등 대통령의 아들로서 받을 만한 특혜는 다 받았지만, 그가 문민정부 후반기에 끼친 악영향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02년 7월, 김대중 대통령의 둘째아들 김홍업이 기업인들로부터 48억 원을 받아 역시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 특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아직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재판절차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을 미리 말할 수는 없다. 그도 김현철처럼 보석으로 풀려나와 적당히 시간이 흐른 다음 사면복권 되는 과정을 밟을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김홍업의 보석이나 사면복권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가 갖게 되는 관심은 우리의 짧은 민주화 과정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방식도 같고 혐의도 같다. 국정원과 그 전신인 안기부 인사가 개입한 것도 같고, 하다 못해 즐겨 다니던 술집까지도 같다. 옛날 정통좌파의 정치평론가는 프랑스의 치열한 혁명과정을 지켜보면서 역사는 두 번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 번은 희극으로 또 한 번은 비극으로 말이다.

그렇다. 김현철이가 국정을 농단할 때만 해도 민주화 과정에서 한번쯤 있을 수 있는 희극으로 보아 넘길 수 있었다. 그 아버지 되는 사람도 약간은 희극적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김홍업이 김현철의 뒤를 따라가면서 희극은 비극으로 돌변해버렸다. 5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김홍업 때문에 그 아버지 김대중 대통령도 ‘식물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구속되고 그의 아버지의 권력이 식물화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더욱이나 나쁜 것은 대통령이나 김홍업이 97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김현철의 국정농단 사건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김현철 사건의 충격은 국민들에게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 상황을 아는 김홍업이 재벌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파렴치한 일이고, 그것을 차단하지 못한 대통령과 권력기구는 무능한 것이다. 이것은 청와대 참모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하게 대통령의 철학과 지도력 문제이다.

얼마 전에 김현철이 8·8재보선에 출마를 준비하다포기한 일이 있다. 명예회복하기 위해서 출마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니 김홍업이도 다음 정권 때 오늘의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선거에 출마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아들이라는 것들의 후안무치가 정도를 넘었다.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 교수
2002/08/10 00:00 200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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