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로까지 격상되었던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요즘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엔론 사태로부터 시작된 미국 거대기업들의 분식회계 사건들이 주가 폭락은 물론이고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미국 기업들의 신뢰성 위기를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 모순된 감정이 자리잡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한편으로는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우리를 그렇게 욕하더니, 니네 수준도 고작 그거냐’라고 고소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도 이 지경인데, 그보다 훨씬 더 개판인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개혁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하구나’ 하는 암담한 심정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투명성(transparency)과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는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기업조직·경제구조·사회체제의 성과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도 결정적 요인도 아니니, 다 없던 걸로 하고 다시 생각해 보자’라고. 이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천박한 수준의 경제학자로서는 이런 거대담론에 끼여들 능력이 없다.

더구나, ‘미국 거 말고 우리 걸로 한번 해보자’는 말이 지극히 혁명적인 발상일 수도 있고 동시에 시대착오적인 수구의 입장일 수도 있는 한국적 특수성 하에서는, 먼 미래에 실현하고자 하는 선험적 원칙만으로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자기위안의 논리를 열심히 되뇌기도 한다.

투명성과 책임성. 현실적으로 이 원칙들은 미국의 금융자본이 지적재산권을 등록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는 비판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해서, 투명하지도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존속·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은 인류 공동의 재산이기도 하다.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것이냐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이냐는 문제는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 분노하고 항의하고 요구하는 사람만이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현대건설 신화의 주인공이자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던 이명박 씨. 서울시장 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신문 가십난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 이것은 투명성과 책임성의 첫걸음이다.

서울지방국세청장을 퇴직하자마자 삼성전자 사외이사와 국세심판원 비상임 심판관을 겸임했던 황재성 씨, 삼성그룹 이재용 씨 세금문제가 국세심판원에 제기되면서 당연히 시비가 일었고, 결국 심판관직을 사임하였다. 이해상충의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 이것은 투명성과 책임성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식물 대통령으로 만든 용감한 형제인 김홍업·홍걸 씨. 서민들이 금 모으기 할 때 재벌의 돈을 받았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아닌 돈은 결국 남의 돈을 훔친 것이다. 성과와 보상을 일치시키는 것, 이것은 투명성과 책임성의 목표이다.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투명성과 책임성이라는 불완전한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김상조 한성대 교수 ·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2002/08/10 00:00 200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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