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배희 한국가정법률 상담소장


“전원일기에서 최불암과 김혜자가 황혼이혼을 했다. 김혜자가 여생만이라도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위자료로 부부가 그동안 모은 재산의 절반을 받았고 막내아들 금동이는 김혜자가 키우기로 했다. 이혼한 지 1년 만에 김혜자는 이웃 동네 박씨 할아버지와 재혼한다. 금동이는 엄마의 재혼을 축하하며 자기 이름을 최금동에서 박금동으로 바꾼다.”

이혼도, 재혼도 흔한 일이 돼버렸지만 이러한 상상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쉽지 않다. 최금동은 김금동이 될 수도 없고 박금동이 되기는 더 어렵다. 한국 사회는 누구와 가족을 이루고 사느냐가 아니라 오직 혈연으로 성(姓)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금동이에게는 어떤 선택권도 없다. 이와 같은 호주제의 모순을 고발하고 친양자제도(재혼한 여성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식의 성을 새 남편의 성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을 자유기고가 진중권 씨와 웹진 시비걸기 편집장 지승호 씨가 만났다.

지승호: 호주제 폐지, 친양자제 도입 등 가족법 개정은 언제쯤 이뤄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곽배희: 그건 국회의원한테 물어야 되는데. 친양자제도는 올해 안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제 폐지도 목표는 올해 안이었습니다. 우리 상담소가 46년 동안 가족법 개정운동을 해왔는데 호주제 폐지는 처음부터 들어 있었어요. 크게 3차레에 걸쳐 가족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그때마다 호주제가 빠졌지요. 올해는 진짜로 이루자고 여성계가 힘을 모았지만 어려울 것처럼 보여요.

지승호: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의 70∼80%는 찬성한다고 하는데.

곽배희: 첫째는 국민이 100%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더 중요한 것은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국회의원들이….

진중권: 로비를 당하는군요?(웃음)

곽배희: 그게 아니고. 반대하는 일부 세력을 극복하지 못한 국회에서 계속 호주제 폐지를 미루고 있다고 봐야 돼요.

지승호: 표를 의식하는 게 아닌가? 소장님도 유림들에게 집중포화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변화는 없나요?

곽배희: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우리가 국회의원들로부터 농반 진반으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여자들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많이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서도 도와준 다음에는 표로 연결 안 되더라고. 유림이나 씨족협회는 버스를 몇 대씩 동원해 국회로 찾아온대요. 우리더러 그렇게 하라고 하더군요. 뭔가 시끄러워져야 주목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드러눕고 데모하는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진중권: 결혼관계에서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가장 먼저 뭘 척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곽배희: 대표적인 게 호주제죠. 아시다시피 사회는 양성평등으로 나가고 있어요. 법이나 관습도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는데 남성들의 남성 중심적 사고 같은 것들이 부부 사이에 마찰을 일으키잖아요. 크게 보면 그 바탕에서 부정과 폭력도 많아졌지요. 세 쌍 중 한 쌍이라는 높은 이혼율의 결정적 동기는 여성들이 요구하는 이혼이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왜 여성들이 이혼을 요구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죠.

지승호: 이혼율도 높아지고 있지만 가족간의 만족도도 떨어지고 있지요.

곽배희: 남편에 대한 아내의 만족도가 떨어진 게 절대 다수죠. 평등하게 살기를 원하는 아내와 여전히 남성중심적 가정이기를 갈망하는 남편과의 갈등이에요. 60∼70년대에는 마음속으로는 거부 반응이 있었을지 모르나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았어요 80년대에 들어오면서 급격한 사회변화에 여성들이 편승하게 되고 90년대에 들어오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죠. 남편들은 혼란스러워지죠. 상담소에 들어오는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는 월급 제대로 가져가고 바람 피우지 않고 때리지도 않는다. 남편으로서 굉장히 모범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내는 괴로워하고 이혼을 요구하면서 집을 나갔다. 나는 원인을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저희가 부인에게 물어보면 “바람 안 피우고 월급 갖다 주고 때리지 않는 것이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냐. 나는 인간적으로 평등하게 살지 못했다. 우리 집의 모든 것은 남편과 시집 중심으로 진행됐다”고 말합니다. 이건 어떤 한 여성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60∼70년대 이혼사유는 생활비 안 주고 때리고 바람 피우고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거였지만 지금의 20∼30대는 그렇지 않아요. 성격 차이, 대화 단절, 무시와 모욕 이런 것들이죠. 물론 법원에 갈 때는 그런 것들을 증명하기 어려워 폭행이나 부정으로 갈 때가 많지만요.

이야기가 호주제에서 이혼으로, 다시 간통죄로 흘러갔다. 곽배희 소장은 여성계에서도 폐지 목소리가 높은 간통죄에 관해선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지승호: 여성 역시 간통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 왜 간통죄 폐지를 반대하십니까?

곽배희: 우리 사회에는 가정을 유지하려는 남성들이 더 많지만 그러면서도 남성들은 성적으로 너무 무질서하고 부도덕해요. 부정이 생활화되어 있는 거죠. 간통죄가 여성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 가정을 지키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간통죄가 없으면 남편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여성들을 많이 봤어요. 똑똑하고 자기 앞길을 잘 개척할 수 있는 여성들은 폐지를 주장하지만 저는 30여 년 동안 가정문제를 다뤄온 입장에서 간통제를 폐지하자고 얘기 못 하겠어요.

진중권: 간통죄는 봉건적인 축첩제를 막기 위한 제도가 아닙니까. 요즘의 외도와는 다른 것 아닌가요.

곽배희: 차라리 예전에는 드러내 놓고 하니까 파악이라도 하죠. 요즘은 음성적으로 부정을 저질러요. 축첩제의 경우에는 본처의 영역이라도 있었어요. 제가 상담자로서 냉정을 잃어버릴 때가 언제냐 하면, 부정을 저지른 남편 10명 중 8명은 부인과 사귀는 여자가 싸울 때 부인을 때린다는 거예요.

진중권: 도덕적인 문제를 법으로 처벌한다는 게 무리 아닌가요.

곽배희: 무리죠. 그렇지만 어떤 논리를 들이대도 1부1처제가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간통죄 조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외국처럼 이혼할 때 위자료 제대로 받고 자녀부양력 갖게 되면 그때는 폐지돼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지승호: 성희롱이나 강간은 입증하기 힘든 범죄이므로 원칙적으로 피해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꽃뱀’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헤어지고 나서 복수심에 없는 일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곽배희: 꽃뱀 있죠. 사회에 어두운 면 있죠. 이제까지 제비족들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꽃뱀을 문제삼아 다수 여성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법에 이의를 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여성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단호하게 처벌해야죠. 남성들도 법 집행과정에서 실수가 없나요. 그렇지만 그걸 가지고 지나치게 남성들을 옹호하는 게 아니냐고 따지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런데 꼭 성희롱이나 간통은 그런 눈으로 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지승호: 설득력을 갖추려면 좀더 고민을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했을 때, 여성의 주장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일 게 아니라 상황을 살피고 나서 이 여자의 말이 진짜가 아닐 수 있겠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곽배희: 그 부분에는 100번 동의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신중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여성이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흥분해서 문제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저도 느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중심 사회이고 성 문제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 보니 여성들에게 가혹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신중하게 대처해야죠.

진중권: 짓궂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가정을 지켜온 여자가 있는데 남편에게 아무 문제도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이혼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곽배희: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웃음). 만일 그 여성이 남편보다 더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면 정당하게 이혼하고, 그 후 사랑하는 남자하고 살든지 말든지 결정하는 거죠. 가정을 유지하면서 비밀리에 남자를 만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혼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아요.

지승호: 주부대상 아침방송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출연하시죠? 엄앵란 씨가 주부들에게 무조건 참으라는 식으로 말해 여성계에서 곱게 보지 않는다던데요.

곽배희: 그분 탓할 게 없어요. 시청률이 높은 걸 어떡해요?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맥빠질 때가 많아요.

진중권: 저는 연속극만 봐도 짜증이 나더라구요. 왜냐면 시어머니, 시아버지 나오는데 그게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곽배희: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나오면 예외 없이 상담이 들어옵니다. 왜 당신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가족을 대하지 않냐고 부부싸움을 하는 거죠. 그만큼 우리 부부관계가 허약합니다. 3세대 혹은 4세대가 같이 살면서 단란하고 문제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불륜을 저지른 후 다 가정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요.

지승호: 가족문화를 가르치는 사회프로그램이 절실하고 이런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은 사람에게 결혼을 불허하는 제도라도 있었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 있죠?

곽배희: 네. 결혼자격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자연스럽게 부모나 남편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저절로 가정이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서로 배려하고 관심 가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결혼 안 하는 거에요.

지승호: 농담이지만, 결혼하고 싶은데 학습능력이 떨어지면 어쩌죠?

곽배희: 부부 5쌍과 함께 1박2일 동안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어요. 10명이 꼭 같이 결혼 후에도 결혼 전 교육을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는 너무나 모르고 결혼을 했다고 말이에요. 계속 학습시켜야 해요. 결혼 전에도 후에도.

진중권: 여기 오려고 길가는 사람에게 가정법률상담소가 어디냐 물어보니 이혼하러 가는 거냐며 이혼하지 말라고 말리더라구요. 길도 안 가르쳐 주면서. 가정법률상담소에서 하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곽배희: (웃으며) 여기는 이혼을 하는 곳이 아니에요. 부부간의 문제해결을 도와주는 곳이죠. 이혼을 하더라도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외국은 이혼하고 나서도 친구처럼 지낸다고 하죠? 우리는 이혼하는 과정이 너무나 비인간적입니다. 가정폭력에 대해 교육도 합니다. 적어도 예방은 하는 곳인데 남성들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네요. 도대체 남자들은 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죠? 저는 남자들이 참 안됐어요. 그래서 이 변화하는 세상에 어떻게 살겠어요.

지승호.진중권: 남자들은 여자만 잘 바꾸는 것 같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곽배희 호주제 폐지는 인간답게 살자는 운동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자는 운동이죠. 지금까지 남성에게만 주어진 짐을 나눠지자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변화된 환경에서 자녀들을 위해 친양자제도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합니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2/08/10 00:00 200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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