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정책은 계속되어야 한다
2002/2002년 08월 :
2002/08/10 00:00
서해교전 이후 한반도 평화전략
서해교전 이후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두 번 경악했다. 우선은 제1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확전을 부추기고, 전쟁을 하자고 한다. 일부 보수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적과 아의 냉전적 이분법으로 모든 것을 본다. 교류협력을 중단하자고 한다. 전시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들은 긴장과 화해협력이라는 ‘과도기의 이중성’에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두번째는 다수의 무관심이다. 이제 교전사태가 발생해도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늘 그래왔듯이 다수는 남북관계의 담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소수의 광기와 다수의 무관심이 한반도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한반도의 현재 국면적 성격은 어떤가? 두 가지 위기가 있다. 서해를 둘러싼 분쟁이 작은 위기라면, 남북한과 미국의 삼각관계의 불안정성은 한반도의 운명이 달린 큰 위기다. 먼저 이번 서해사태를 평가해 보자.
서해교전, 벼랑끝 전술일까?
서해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발성과 의도성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태에서 북한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 이른바 보수적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늘 북한의 협상력 강화를 위한 도발의 가능성을 말한다. 물론 과거에 북한의 ‘벼랑끝 전술’의 사례는 많다. 1993년 핵안전협정(NPT) 탈퇴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국면은 과거와 다르다. 부시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 규정했고, 핵의혹 국가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벼랑끝 전술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국면이다. 북한의 정책 결정과정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서해사태 이후 북한 역시 더이상의 긴장고조를 원치 않음을 분명히 했다. 남북한의 민간차원에서 상호방문은 예정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7월말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ARF)에 백남순 외무상을 파견하는 등 대화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해에서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해상경계선에 대한 남북한의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합의는 남북기본합의서 11조에 ‘불가침 경계선은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와 불가침 부속합의서 10조에서 ‘남과 북이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이다.
일부에서는 북방한계선(NLL)을 우리의 영해라고 한다. 북한이 묵시적으로 NLL을 인정한 사례를 든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조항도 들먹인다. 그러나 NLL이 한국전쟁 이후 남측의 우월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한 실효적 관할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남북한이 합의한 해상경계선은 아니다. 그래서 1996년 당시 국방장관이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발언했던 것이나, 미국 국무부가 ‘공해’라고 표현했던 것은 NLL의 일방성 때문이었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해상경계선 문제의 협의를 통해 분쟁 수역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 군당국이 해상에서의 불가침 문제를 포함한 군사적 충돌 재발 방지를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둘째, 남북한 어민들의 꽃게잡이 경쟁도 한몫을 했다. 왜 1999년 6월에 이어 올해 6월인가? 금어기를 앞둔 상황에서 어장확보를 둘러싼 남북한의 생존경쟁이 최고조에 달할 때, 충돌의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동어로구역 설정 및 공동조업 방안을 비롯한 경제적 해결방안이 필요하다. 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전환시키기 위한 남북한 어업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포용정책을 둘러싼 논란
서해사태 이후 야당은 포용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든다. 북한체제는 변화하지 않는데, 남쪽만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도 있고, 퍼주기라는 이데올로기적 비난도 있다. 그래서 포용정책이 ‘상호주의’ 접근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포용정책이 최선의 정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북 접근방안이다. 왜 그런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북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포용(engagement policy), 무시(benign neglect), 봉쇄(containme nt policy)가 그것이다. 봉쇄정책의 부정적 효과는 이미 냉전시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적대적 상호 의존관계에서 체제 불안감을 갖고 있는 북한에게 정치·군사·외교적 압박은 긴장과 대립의 악순환만 가져올 뿐이다. 무시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협상의 이니셔티브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든, 혹은 북한체제의 회의감(skep ticism)에 바탕을 둔 공세적 무시(hawkish neglect)이든 소극적 자세로 한반도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이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평화는 필수적 생존조건이다.
포용정책에 대한 논란은 다분히 국내정치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퍼주기론이다. 김대중정부의 인도적 대북지원 규모가 김영삼정부 시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포용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냉전시대의 ‘허공에 주먹질’ 같은 소모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남북관계 교착에 대해 외국사람처럼 팔짱을 끼고 ‘두고 보자’ 할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접근을 통한 위기의 예방을 생각해낼 때이다.
한반도 위기와 평화의 리더십
서해사태 이후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위기다. 많은 사람들은 2003년 한반도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2003년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의 시한이고, 경수로 1기가 완공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의 미사일 협상은 진전될 가능성이 없다. 미국이 미사일 협상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네바 합의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경수로 공사는 진척률 15%라고 하지만, 거의 초보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과거 핵사찰을 거론하고 있다. 쟁점 현안에 대한 협상 전망이 어두운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위기는 다가오는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근본주의적 대북인식을 고집하고 있다.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협상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7월 중순에 예정되어 있던 특사파견을 서해사태 이후 유보했다. 부시행정부 내 근본주의자들이 한반도 문제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어떤가? 김대중정부는 임기 말이다. 야당은 민족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 오직 정쟁만이 있을 뿐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체제위협 의식을 기반으로 움츠리고 있다. 남북회담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여전히 전략적 변화를 모색중이다.
한반도는 이제 탈냉전 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평화적 리더십의 부재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화세력의 연대를 통해 냉전의 광기를 제어해야 한다. 서해사태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가 냉전적 대결의 시대로 복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미 시작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예방하고, 진정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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