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섬뜩하다. 남북한 간에 사건이 생기면 이 땅에선 냉전논리와 호전적인 극우논리가 판을 친다. 서해교전이 발발하자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언론들은 사설과 지면을 통해 ‘전쟁 불사’까지 들먹인다. 남북한 강경 매파들, 이들을 부추기는 보수언론들. 그들의 불장난을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얼마나 더 가슴을 졸여야 하는 걸까. 정말 전쟁을 해도 좋다는 것인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언론이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며, 처방을 요구하느냐는 국민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일부 언론은, 특히 대북관련 의제에 있어 일관되게 보수 강경 논조를 펼쳐왔다. 그런 가운데 과장이나 ‘아니면 말고’식의 미확인 사실이 증폭되고, 사실과 의견이 혼재된 채 왜곡과 편파 보도를 낳았다. 여기에 다른 의견이나 주장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무책임한 언론들의 일방통행식 보도

이러한, 이들 언론의 대북보도는 국민들에게 집단 최면을 강요하며 남북간 대결과 반목을 조장했다. 기존 언론들 중 다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이 늘어나고, 인터넷 매체의 등장으로 보수언론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언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조선 중앙 동아나 일부 방송사의 보도 행태는 변함이 없다. 민주사회의 조건은 언론시장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언론상황을 놓고 우리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 상황을 바꾸려면 기존 언론을 개혁하는 운동도 중요하고, 대안매체의 육성도 필요하다. 그리고 기존 미디어에 대한 일반 시청자나 독자의 개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기존 미디어에 시청자나 독자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액세스권(미디어 접근이용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액세스권이란 거대 자본이 소유한 미디어에 시청자나 독자가 자기와 관계가 있는 보도에 대한 반론권과 자신의 의견 표명을 위한 일정 부분의 지면과 시간의 이용을 보장받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서해교전 사건에 대한 일방통행식의 언론보도에 답답함을 느끼는 독자나 시청자에게 기존 미디어의 지면이나 화면이 할애된다면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액세스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 KBS <열린채널> 시청자제작프로그램과 『한겨레』의 ‘왜냐면’ 토론 지면이다. 특히 KBS <열린채널>은 시청자단체들과 언론운동단체들의 요구로 지난 2000년 방송법에 ‘월 100분 이상 의무편성’을 규정해 다음해 5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30분에 주당 30분간(요즘은 편성시간이 자주 바뀐다) 편성되고 있다. 재미있는 방송이 넘쳐나는 주말 오후 시간에 방송사가 홍보도 안 해주는 이 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열린채널>은 의욕적인 출발과 달리 방송사와 시청자의 무관심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로그램 시작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이 열악한 제작 여건을 무릅쓰고 접근한 결과 한달에 1편꼴(120분 중 30분)로 방송되고 있고, 그나마 요즘은 일반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의 편성 신청이 늘어가는 추세다.

지금까지 <열린채널>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을 보면, ‘호주제 폐지’(여성연합), ‘신문개혁’(언개연), ‘농가부채’(전농),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제’(부천외국인노동자집), ‘퍼블릭액세스프로그램’(민언련), ‘여성노동자 해고’(여성민우회), ‘상가임대차보호법’(참여연대), ‘집시법 개악 문제’(인권운동사랑방) 등이다. 방송된 주제에서 알 수 있듯 시민단체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들을 의제로 설정하여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들이다.

<열린채널>의 빛바랜 액세스 취지

<열린채널>은 단체나 일반인이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KBS에 편성을 신청하면 KBS 시청자위원회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운영협의회(이하 열린채널운영협)에서 결정한다. 그리고 방송된 프로그램에 대해 방송발전기금으로 제작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케이블이나 위성을 통해 방송되는 외국의 액세스 프로그램과는 달리 공중파로 전국에 송출되는 프로그램이란 점에서 방송법의 방송심의 규정뿐 아니라 시청자위원회가 별도로 제정한 운영지침의 내용제한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 그런데 그동안 <열린채널>의 편성 심의와 운영과정을 놓고 적잖은 논란이 있어 왔다.

지난 5월에는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다룬 진보넷의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이마리오 감독 제작) 프로그램에 대해 열린채널운영협의회가 편성불가 판정을 내렸다. 제작자와 진보넷, 한국독립영화협회, 민언련, 언론인권센터, 문화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KBS 앞에서 편성불가 결정에 항의 시위를 벌였고, 방송위원회와 KBS, KBS 시청자위원회에 <열린채널>의 선정 심의과정과 불합리한 운영 사항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프로그램에 대해 열린채널운영협이 편성불가 결정을 한 이유는 제목이 너무 과격하고, 일부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으나 제작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작자는 수정 요구 중 일부는 수용하고, 제작 의도와 배치되는 요구는 법적 소견 등을 첨부하여 부당함을 설명했다고 한다. 시민단체들은 열린채널운영협의 편성 불가 결정이 경직된 잣대로 프로그램을 심의하면서 <열린채널>의 액세스 취지를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채널>은 방송에서 소외된 소수자나 일반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제작자와 KBS는 시청자참여(제작)프로그램 법 해석을 둘러싼 이견(법적 책임 소재) 때문에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왔다. 제작자는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의 법적 책임이 제작자에게 있어 KBS나 열린채널운영협이 과도하게 프로그램 선정 심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방송위원회를 비롯한 KBS나 열린채널운영협은 <열린채널>은 편성권자인 KBS에게도 일정 정도 책임이 있어 선정 심의절차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은 관련 방송 법규를 손질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의 법적 책임 소재가 제작자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고, KBS는 송출만 하도록 규정하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국회만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현재의 조건에서 <열린채널>의 운영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열린채널> 운영 개선을 위한 요구사항은 KB S 관계자와 이해당사자가 다수 참여하고 있는 열린채널운영협의 구성을 개선하여 시청자단체와 시민단체 추천 위원 수를 늘여줄 것과 방송법에 규정된 방송심의 규정 이외에 KBS 시청자위원회가 운영지침에 별도로 정한 심의기준은 이중 규제이므로 폐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시청자들의 제작 활성화를 위해 까다롭고 복잡한 방송 신청과 접수 절차를 간소화시켜 달라는 것 등이다.

이런 내용의 의견서를 지난 5월과 6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시민사회단체협의회(26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 이름으로 방송위원회와 KBS, KBS 시청자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상태이다. 한편, 진보넷은 ‘주민등록증 찢어라’에 재심을 신청해 놓았고, 재심에서도 방송불가 결정이 내려지면 법정까지 갈 계획이다.

진보넷 제작 프로그램의 <열린채널> 방송편성 불가는 시민사회에 있어 개별 단체의 문제로 여길 사안이 아니다. 이는 법으로까지 규정한 액세스 공간에서조차 우리 스스로 할말을 하지 못하도록 길들여질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흔히 시민단체에선 언론이 시민단체가 설정하는 의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게이트키핑 권한을 언론사의 기자나 간부들이 갖고 있는 환경에서 시민단체에게 이는 딜레마일 수 있다. 따라서 시민이나 시민단체들은 기존 미디어에 액세스 공간을 요구하고 그것을 활용하려는 미디어운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험대에 서 있는 KBS <열린채널>의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권영준 본지 편집위원
2002/08/10 00:00 200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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